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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_ 2025. 4. 20(주일)

by LogosLab Steward 2025. 4. 20.

❖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분],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및 배포]를 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5년 4월 20일(주일)

📖 본문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 베드로전서 1장 3–7절 [개역개정]

 

📖 부활주일 설교 _ "부활 예수! 나의 산 소망!"

ㅣ서론ㅣ

할렐루야!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함께 이렇게 고백하며 인사해볼까요?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산 소망이십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단순히 2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살아 계셔서 소망을 주시는 현재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크고 작은 시험과 어려움이 가득한 시대와 현실입니다.

지치고 흔들릴 때, 기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을 때 너무나도 힘들죠. 

무엇을 해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지 인간적으로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렇다면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한 어린아이의 순수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유치부 아이들에게 플라스틱 계란을 나눠주며 말했습니다.

“다음 주가 부활주일이니 나눠 주는 계란 안에 ‘생명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을 넣어와 보렴.”

 

아이들은 각자 한 주간 들뜬 마음으로 준비한 것들을 넣어왔습니다.

예쁜 꽃, 싹 틔운 콩, 나비 모형 등 하나씩 순수하고 생명을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계란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고, 선생님은 당황하며 물었습니다.

 

“이건 누구의 계란일까? 실수로 빈 채로 가져온 거니?”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거예요. 실수 아니에요. 예수님의 무덤은 열렸을 때 비어 있었잖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 텅 빈 계란은 오히려 가장 완전한 부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비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예수님을 향한 아이의 믿음이, 마음이, 고백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절망을 지나 소망으로 나아가는 부활의 자리, 바로 그 공간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베드로전서 1장 3-7절은

바로 이 ‘텅 빈 무덤 속 풍성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 소망’,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는 ‘하늘의 유업’,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오늘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너희는 거듭났고, 너희 안에는 죽지 않는 소망이 있다!”

 

혹시 최근 마음이 공허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동안 열심히 기도해왔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어 지치셨나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낙심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이 부활의 말씀이 바로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들게 될 이 소망은 죽은 소망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역사하는, 산 소망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낙심한 마음에는 다시 용기를,

지친 몸과 영혼에는 새 힘을,

흔들리는 믿음에는 확신과 기쁨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실제로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말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산 소망이 다른 이의 소망이 아닌,

여러분 자신의 고백이 되기를,

그 소망을 통해 기적이 상식이 되는 귀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ㅣ본론ㅣ

 

1. 산 소망, 부활로 시작된 새 생명

먼저 본문 3절의 말씀을 다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베드로전서 1:3ㅣ개역한글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러분, 지금 이 감격적인 선언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산 소망이 있다!”고 외치고 있는 이 사람은 바로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왜 중요할까요?

왜 베드로라는 사람의 이름을 주목해야 할까요?

 

우리는 베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던 사람입니다.

물 위를 걷기도 했고,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 들었던 열정적인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쓰러졌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그는 무서움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믿음에 실패하고, 눈물로 후회했던 사람,

바로 그가 오늘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거듭났고, 산 소망이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교리적인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철저히 무너졌던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의 고백이자 간증입니다.

깨어진 마음, 낙심한 심령, 삶의 의미를 잃었던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났고,

그 만남 안에서 새로워졌으며,

산 소망을 붙잡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산 소망’은 무엇일까요?

왜 단순히 ‘소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망’이라고 했을까요?

 

성경 원어의 뉘앙스를 보면,

이 ‘산 소망’은 죽어 있는 희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작동하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능동적인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소망은 흔들립니다. 추상적이고, 불확실하며, 쉽게 깨집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무너지고,

때로는 기대가 실망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에서 시작된 이 소망은 다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생명에서 나오는 소망,

그래서 죽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지금도 역사하는 소망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혹시 기도할 힘조차 없고,

희망보다는 체념이, 기대보다는 지침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의 선언입니다.

 

“내가 너를 거듭나게 하였고, 네 안에 산 소망을 두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망은

눈물 속에서도 살아 있고,

실패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게 하며,

절망의 땅에서도 우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베드로가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 소망입니다.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삶을 다시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이 산 소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이 소망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까요?

우리가 이 소망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우리는 무엇을 붙들게 될까요?

이제 다음 말씀 속에서 그 대답을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2. 무너지지 않는 약속, 하늘에 간직된 유업

사랑하는 여러분, ‘산 소망’은 단지 오늘 하루 마음을 위로하는 ‘좋은 느낌’이 아닙니다.

이 소망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까지 이끄는 강한 능력입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본문 4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4ㅣ개역한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여기서 기업이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천국의 상속,

곧 하늘의 상급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기업을 베드로는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

 

세상의 것은 다 사라집니다.

좋은 집도, 명예도, 성공도 결국은 낡고, 변하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은

시간도, 죄도, 이 세상의 타락도 침범할 수 없는 ‘완전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어디에 있습니까? 4절 후반부에 보시면,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간직하다’는 말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킨다, 보호한다, 안전하게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기업은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믿음을 지킬 때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더 많지요.

그리고 종종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 믿음이 부족한 것 같아요.”

“기도하려 해도 기도가 잘 안 되요.”

“정말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걸까요?”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시선을 열어줍니다.

“네가 하나님을 놓쳤다고 느낄 때에도,

하나님은 너를 단 한 번도 놓지 않으셨다.”

 

“너의 손은 느슨해졌어도, 하나님의 손은 너를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는 종종 “내가 잘해야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 기업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감정이나 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에 달려 있습니다.

 

이 기업은 단지 “천국으로 가는 티켓”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고난 중에도, 낙심 중에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근거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황은 흔들릴 수 있어도,

하늘의 약속은 절대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기업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의 버팀목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믿음의 자리에 머무르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토록 확실한 기업이 있고, 하나님께서 지키고 계신데…

왜 우리는 여전히 흔들릴까요?

 

이 믿음은 어떻게 유지되고, 자라날 수 있을까요?

바로 다음 말씀에서 그 답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3. 금보다 귀한 믿음, 고난 속에서 빛나다

우리 안에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하늘에 간직된 영원한 기업을 향해 우리를 이끌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놀라운 복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믿음의 방향은 분명한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삶은 여전히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려 해도, 관계는 더 꼬이는 것 같고,

예배를 드려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믿음으로 살아보려 할수록, 세상은 더 거세게 밀려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삶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6ㅣ개역한글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난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더 깊은 시련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 고난의 자리에서 뜻밖의 말을 합니다.

“오히려 기뻐하도다.”

 

이건 억지로 웃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통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 기쁨은 ‘고난 너머의 소망’을 볼 수 있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눈,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마음,

연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영혼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이 고난이 단지 견뎌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믿음이 정금처럼 빛나도록 다듬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7절 말씀을 제가 개역개정 버전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7ㅣ개역개정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금은 뜨꺼운 불을 통과해야만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불순물이 태워지고 제거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주어지는 순금이 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고난’이라는 불을 지나며

더 순결하고, 더 깊어지고, 더 살아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생기실 수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꼭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시는 걸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더 쉬운 길도 주실 수 있지 않나요?”

“우리를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왜 그냥 보고 계시는 것일까요?”

 

너무도 당연한 질문입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질문을 품기도 했고, 때로는 그러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방식,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기계적으로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저 시키는대로, 정해진대로 우리를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속에서,

함께 걸어가며,

우리의 믿음을 세워가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나 잘못된 모습에 대해 주시는 ‘벌’이나 ‘징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고난마저도 믿음을 세우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연단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금의 비유를 드렸는데, 금은 원래 그 자체로도 귀한 물질입니다.

금이 원래는 보잘 것 없는 돌이기 때문에 불을 통과해서 갑자기 더 귀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저 감추어져 있던 귀한 모습이 불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 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고난 속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 고난을 이겨내는 자녀를 더 소중히 여기시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그 고난의 여정을 홀로 걷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봅니다.

성공과 실패, 많고 적음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흘리는 눈물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지,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지,

그 믿음을 하나님은 보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고난의 시간 가운데 계신가요?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믿음 조차 흔들리는 시간 가운데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꼭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의 믿음을 연단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하게 빛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신 분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시라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쯤이야,

이 눈물쯤이야… 넉넉히 이기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고난이 아니라,

고난 너머에 계신 주님께로 돌립시다.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은,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믿음의 걸음은,

예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ㅣ결론ㅣ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험과 시련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의 문제로,

어떤 분은 관계의 문제로,

또 어떤 분은 무너진 마음과 꺼져가는 열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살아가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활’이라는 말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소망’이라는 말이

현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너희에게 산 소망이 있다.”

“그 산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살아서 너희를 붙들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망은 미래를 낙관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산 소망은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현실 앞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하고,

다시 일으키고,

다시 걷게 만드는 하늘의 능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다시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눈물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속에서,

흔들리는 믿음 속에서도

우리를 정금처럼 연단하고 계십니다.

 

믿음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산 소망을 따라 걷는 삶은 언제나 연단의 여정입니다.

불확실한 시간을 지나며,

눈물 많은 밤을 지나며,

우리는 점점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자라갑니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

단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하는 능력입니다.

 

부활은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이며,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부활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멀어지고,

가슴으로 믿을 때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 우리의 삶을 움직여야 합니다.

내 삶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내 기도가 아직 응답되지 않았더라도,

내 안에 믿음이 흔들리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주님을 붙듭니다.

왜냐하면 내 소망은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망, 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활절에 여러분 모두가 다시 산 소망을 붙드시기를 원합니다.

다시 일어설 힘을 구하십시오.

다시 걸어갈 용기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한숨을 소망의 노래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여러분의 산 소망이십니다.

 

이번 부활절이,

단지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 다시 살아 있는 소망을 심고,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오늘 저희는 부활의 복음을 다시 듣고,
그 부활로 인해 우리 안에 주어진 산 소망을 붙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무게 앞에 쉽게 지치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고 싶어도 무릎이 꺾이고,
감당하지 못할 문제들 앞에서 믿음마저 흔들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날은 ‘소망’이라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소망을 꿈꾸고 누릴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이 죽은 소망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지금도 살아 있는 산 소망임을 다시 붙잡습니다.

 

주님, 그 소망이 저희를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지금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는 여전히 여러 시험 가운데 있습니다.

몸의 병으로 지쳐 있는 지체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있는 가정도 있으며,

방향을 잃고 막막함에 빠진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이 고백을 우리의 입술로, 마음으로, 믿음으로 올려드립니다.

“나는 여전히 주님을 붙듭니다. 나의 소망은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살아 있는 소망입니다.”

 

주님,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 귀하게 연단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눈물도, 시련도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다시 그 산 소망을 붙듭니다.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다시 주의 손을 의지합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께 다시 우리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주님. 이 부활절이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죽었던 열정이 되살아나며,
무너졌던 믿음이 다시 회복되는 산 소망의 시작점이 되게 하소서.

부활하신 예수님, 저희의 눈물이 그저 흐르기만 하지 않게 하시고,
그 눈물이 믿음의 고백으로 바뀌게 하소서.

 

저희의 한숨이 주를 향한 찬양이 되게 하시고,
지친 발걸음이 다시 복음을 향한 힘찬 걸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와 함께 걷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그 은혜로 다시 살아가겠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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