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개역개정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이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17 On his arrival, Jesus found that Lazarus had already been in the tomb for four days.
18 Now Bethany was less than two miles from Jerusalem,
19 and many Jews had come to Martha and Mary to comfort them in the loss of their brother.
20 When Martha heard that Jesus was coming, she went out to meet him, but Mary stayed at home.
21 “Lord,” Martha said to Jesus,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22 But I know that even now God will give you whatever you ask.”
23 Jesus said to her, “Your brother will rise again.”
24 Martha answered, “I know he wi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The on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they die;
26 and whoever lives by believing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27 “Yes, Lord,” she replied, “I believe that you are the Messiah, the Son of God, who is to come into the world.”
28 After she had said this, she went back and called her sister Mary aside. “The Teacher is here,” she said, “and is asking for you.”
29 When Mary heard this, she got up quickly and went to him.
30 Now Jesus had not yet entered the village but was still at the place where Martha had met him.
31 When the Jews who had been with Mary in the house, comforting her, noticed how quickly she got up and went out, they followed her, supposing she was going to the tomb to mourn there.
32 When Mary reached the place where Jesus was and saw him, she fell at his feet and said,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33 When Jesus saw her weeping, and the Jews who had come along with her also weeping, he was deeply moved in spirit and troubled.
34 “Where have you laid him?” he asked. “Come and see, Lord,” they replied.
35 Jesus wept.
📌 말씀 요약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고,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며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시며, 단순한 위로가 아닌 죽음을 초월한 생명의 능력을 선포하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을 만나 똑같이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고, 주변 유대인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이를 본 예수님은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시고 비통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한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단순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 절별 주해
🔹 17-19절: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가족과 유대인들
• 나사로는 나흘이 지나도록 무덤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영혼이 죽은 후 3일 동안 시신을 떠돌다가 떠난다고 믿었기에, 나사로의 죽음은 완전히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km(한 오 리) 거리였으며, 많은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습니다. 이는 나사로의 가문이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 애도하는 유대인들이 많았다는 것은, 당시 문화에서 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애도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20-27절: 마르다의 신앙과 예수님의 부활 선언
•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맞이하러 나갑니다. 이는 그녀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그녀는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지만, 시간이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선언하시지만, 마르다는 이를 최후의 날 부활로 이해합니다.
•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시며, 부활이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능력임을 선포하십니다.
•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이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마 16:16)과 동일한 수준의 믿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 28-32절: 마리아의 반응과 예수님 앞에서의 절망
•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오셨음을 알리고,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 마리아도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 발 앞에 엎드려 탄식합니다. 이는 그녀가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께 기대며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마리아와 유대인들은 나사로가 죽은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표현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의 장례 문화에서 공개적으로 애통하며 곡하는 관습과도 연결됩니다.
• 마리아의 말도 마르다와 동일하게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며,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33-35절: 예수님의 깊은 애통과 눈물
•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깊이 비통해하십니다.
• 여기서 “비통히 여기시고(ἐνεβριμήσατο, enebrīmēsato)“라는 헬라어는 **‘격렬하게 흥분하다, 마음 깊이 동요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죄로 인해 인간이 겪어야 하는 죽음과 고통에 대한 강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 즉, 예수님은 단순히 친구를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현실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깊은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ἐδάκρυσεν ὁ Ἰησοῦς, edakrysen ho Iēsous)”
•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이지만, 가장 강력한 감동을 주는 장면입니다.
• 예수님은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직접 체험하시고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초월적으로 해결하는 능력만 가지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십니다.
📌 원어 해석
• 비통히 여기시고 (ἐνεβριμήσατο, enebrīmēsato, 33절)
‘깊이 탄식하며 슬퍼하다’는 의미로,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 눈물을 흘리시더라 (ἐδάκρυσεν, edakrysen, 35절)
조용히 흐르는 개인적인 애도의 눈물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시는 신적 사랑의 표현입니다.
📌 묵상
1️⃣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함께 우십니다.
• 예수님은 단순히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아픔을 공감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이십니다.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외면한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아파하십니다.
2️⃣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 우리는 종종 죽음과 절망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이는 단순히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입니다.
• 예수님을 믿는 자는 육체적으로는 죽을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자가 됩니다.
3️⃣ 우리는 현실을 넘어서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 마르다는 부활을 믿었지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과거에 역사하셨고, 미래에 역사하실 것”은 믿지만, 지금 이 순간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은 잊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계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 주일예배 설교문: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서론: 인간의 슬픔 앞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여러분은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삶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이러한 생각과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슬픔을 깊이 공감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본론: 예수님의 눈물이 의미하는 세 가지 진리
1.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슬픔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곧바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베다니에 도착하셨고, 그때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향해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깊은 아쉬움과 동시에 예수님의 능력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같은 말을 하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의 울음과 함께 온 유대인들의 애통함을 보시고 마음 깊이 비통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은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나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 예수님의 눈물은 죄와 죽음에 대한 깊은 분노이다
본문에서 “비통히 여기시고”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ἐνεβριμήσατο (enebrīmēsato)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격렬한 감정, 즉 분노와 통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그것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며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의 현실을 향한 깊은 분노를 느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원래 죄와 죽음이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인해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이로 인해 모든 인간은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가져온 이 끔찍한 결과를 보시며 가슴 깊이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죄와 죽음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3. 예수님의 눈물은 부활과 생명의 능력을 선포하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부활을 믿었지만, 그것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미래의 부활을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부활과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한 연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예고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나사로처럼 죽음 앞에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예수님을 신뢰하라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슬픔을 아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며, 죄와 죽음의 현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이며, 부활과 생명의 능력을 선포하시는 선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사로의 가족처럼 깊은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함께 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단순히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절망에서 건지시고, 부활과 생명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부활과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부활과 생명을 믿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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