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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민수기ㅣ2025년

[생명의 삶] 민수기 31장 25절-54절 _ 2025. 5. 31(토)

by LogosLab Steward 2025. 5. 31.

❖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배포]를 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5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26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수령들과 더불어 이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계수하고 
26 “You and Eleazar the priest and the heads of the fathers’ households of the congregation take a count of the booty that was captured, both of man and of animal; 

27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27 and divide the booty between the warriors who went out to battle and all the congregation. 

28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28 “Levy a tax for the Lord from the men of war who went out to battle, one in five hundred of the persons and of the cattle and of the donkeys and of the sheep; 

29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가져다가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29 take it from their half and give it to Eleazar the priest, as an offering to the Lord. 

30
또 이스라엘 자손이 받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 오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 
30 “From the sons of Israel’s half, you shall take one drawn out of every fifty of the persons, of the cattle, of the donkeys and of the sheep, from all the animals, and give them to the Levites who keep charge of the tabernacle of the Lord.” 

31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31 Moses and Eleazar the priest did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32
그 탈취물 곧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외에 양이 육십칠만 오천 마리요 
32 Now the booty that remained from the spoil which the men of war had plundered was 675,000 sheep, 

33
소가 칠만 이천 마리요 
33 and 72,000 cattle, 

34
나귀가 육만 천 마리요 
34 and 61,000 donkeys, 

35
사람은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서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도합 삼만 이천 명이니 
35 and of human beings, of the women who had not known man intimately, all the persons were 32,000. 

36
그 절반 곧 전쟁에 나갔던 자들의 소유가 양이 삼십삼만 칠천오백 마리라 
36 The half, the portion of those who went out to war, was as follows: the number of sheep was 337,500, 

37
여호와께 공물로 드린 양이 육백칠십오요 
37 and the Lord’s levy of the sheep was 675; 

38
소가 삼만 육천 마리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공물로 드린 것이 칠십이 마리요 
38 and the cattle were 36,000, from which the Lord’s levy was 72; 

39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공물로 드린 것이 육십일 마리요 
39 and the donkeys were 30,500, from which the Lord’s levy was 61; 

40
사람이 만 육천 명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공물로 드린 자가 삼십이 명이니 
40 and the human beings were 16,000, from whom the Lord’s levy was 32 persons. 

41
여호와께 거제의 공물로 드린 것을 모세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41 Moses gave the levy which was the Lord’s offering to Eleazar the priest,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42
모세가 전쟁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절반 
42 As for the sons of Israel’s half, which Moses separated from the men who had gone to war— 

43
곧 회중이 받은 절반은 양이 삼십삼만 칠천오백 마리요 
43 now the congregation’s half was 337,500 sheep, 

44
소가 삼만 육천 마리요 
44 and 36,000 cattle, 

45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요 
45 and 30,500 donkeys, 

46
사람이 만 육천 명이라 
46 and the human beings were 16,000— 

47
이스라엘 자손의 그 절반에서 모세가 사람이나 짐승의 오십분의 일을 취하여 여호와의 장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47 and from the sons of Israel’s half, Moses took one drawn out of every fifty, both of man and of animals, and gave them to the Levites, who kept charge of the tabernacle of the Lord,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48
군대의 지휘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48 Then the officers who were over the thousands of the army, the captains of thousands and the captains of hundreds, approached Moses, 

49
모세에게 말하되 당신의 종들이 이끈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49 and they said to Moses, “Your servants have taken a census of men of war who are in our charge, and no man of us is missing. 

50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50 “So we have brought as an offering to the Lord what each man found, articles of gold, armlets and bracelets, signet rings, earrings and necklaces, to make atonement for ourselves before the Lord.” 

51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그들에게서 그 금으로 만든 모든 패물을 취한즉 
51 Moses and Eleazar the priest took the gold from them, all kinds of wrought articles. 

52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만 육천칠백오십 세겔이니 
52 All the gold of the offering which they offered up to the Lord, from the captains of thousands and the captains of hundreds, was 16,750 shekels. 

53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니라 
53 The men of war had taken booty, every man for himself. 

54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서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드려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더라
54 So Moses and Eleazar the priest took the gold from the captains of thousands and of hundreds, and brought it to the tent of meeting as a memorial for the sons of Israel before the Lord.

 


📖 본문배경

❖ 개요

 

민수기 31:25–54는 미디안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전리품의 분배와 정리,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에 관한 율법적 지침을 다룹니다. 본문은 단순한 전리품 계산이나 재산 분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쟁의 결과마저도 철저히 거룩한 원칙과 공동체의 질서 안에서 관리하도록 명하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과 참여하지 않은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승리에 함께 참여하며, 각자의 몫을 받는 동시에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한 특별한 몫과 속죄의 헌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합니다. 이 장면은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학적 진리를 공동체 전체가 고백하고, 순종으로 반응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역사적 배경

 

민수기 31장은 앞선 민 25장에서 시작된 ‘브올 사건’의 심판이 어떻게 실제로 실행되고, 그 결과가 공동체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지는지를 상세히 보여주는 후속 장면입니다. 이 전쟁은 단순히 민족 간의 충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거룩함을 훼손한 죄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었습니다. 전투(1–12절), 정결 절차(13–24절)에 이어, 25절 이후는 승리의 열매를 어떻게 분배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돌릴 것인가를 규정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단순한 전쟁 보고가 아닌,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임재하시며, 공동체가 그분의 뜻에 따라 어떻게 질서와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실천적인 율법 적용입니다.


❖ 문화적 배경

 

고대 근동에서 전쟁 후 전리품은 보통 전쟁에 참여한 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습니다. 왕과 지휘관이 최우선적으로 취하고, 나머지를 병사들이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외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참여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도록 하셨고,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에게는 특별한 몫을 지정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단지 군사 공동체가 아니라, 예배 공동체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구별입니다. 또한 자발적으로 금속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50절)은 고대 문화 속 ‘감사제’ 혹은 ‘승전예물’과 유사하지만,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의 틀 안에서 진행됩니다.


❖ 신학적 배경

 

본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공의, 그리고 공동체의 거룩함을 향한 요구를 매우 실천적인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전리품은 단지 인간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승리의 열매이므로,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따라서 제사장 엘르아살을 중심으로 한 분배 규례는 하나님의 율법과 질서를 기반으로 하며,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군사들은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금, 귀금속 등을 예물로 드림으로써, 단순한 물질적 분배를 넘어 영적인 감사를 표현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통해 단순히 적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한 뜻을 회복하며, 영광을 오롯이 하나님께 돌렸다는 영적 고백의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본문요약

❖ 25–27절 │ 전리품 분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셔서, 전쟁에서 얻은 사람과 짐승 등의 전리품을 군사들과 회중 전체로 나누라고 명령하십니다. 전리품은 단순히 승전의 보상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며 그 열매를 함께 누리는 은혜의 분배로 규정됩니다.


❖ 28–30절 │ 하나님의 몫,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한 몫

 

하나님은 군사들에게서 취한 전리품 중 일정 부분을 여호와께 드리도록 명하십니다. 이는 전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에게는 오백 분의 일, 레위인들에게는 오십 분의 일의 몫이 각각 주어집니다. 이 절차는 전리품 자체를 정결한 예물로 여겨 하나님의 성막 사역을 섬기는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드리는 원칙을 보여줍니다.


❖ 31–47절 │ 분배의 실행과 공동체의 균등한 참여

 

모세와 엘르아살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분배를 실행합니다. 군사들에게는 전쟁에서 직접 얻은 몫을, 남은 회중에게는 나머지 절반을 나누어 주며, 그 중 일정 비율을 레위인들에게도 할당합니다. 이 과정은 단지 경제적 분배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영적 승리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모든 분배는 세밀하게 계산되어 공정하게 이뤄졌으며,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의 원칙이 공동체의 삶 속에 실현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 48–50절 │ 자발적인 헌물: 전쟁의 감사와 회개의 고백

 

군대 지휘관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전쟁에서 아무도 잃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를 담아 금 패물—팔찌, 손목고리,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이는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 전쟁 중 자신들이 범했을 수 있는 죄에 대한 속죄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결과가 하나님께 달려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 51–54절 │ 성막에 드려지는 거룩한 예물

 

제사장 엘르아살은 그 예물을 받아 여호와 앞에 올려 드리고, 그것은 회막 안에서 기념물로 보관됩니다. 이는 이 전쟁의 승리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일임을 후대에까지 기억하게 하기 위한 ‘거룩한 표지’입니다. 공동체는 전쟁의 승리조차 예배와 연결된 사건으로 해석하며, 삶의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마무리합니다.

 


📖 붙잡는 말씀

50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은 전쟁의 승리를 경험한 뒤, 각자가 받은 금 패물 -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 등을 모아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립니다. 그런데 이 헌금은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나 승리의 전리품 나눔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위한 속죄”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 돌아온 것은 우리의 힘이나 용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 말은 곧, “우리는 하나님의 앞에 설 자격이 없고, 살아남은 것조차 은혜입니다. 그러니 이 헌금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대속하고자 드리는 속죄의 고백입니다”라는 깊은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전쟁은 분명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고, 결과도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쉽게 교만해질 수 있고, 전리품 앞에서 탐욕이나 자기 중심적 태도를 갖기 쉽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지휘관들이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생존이 은혜였음을 고백하고 속죄 헌금을 드렸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장면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성공이나 성취의 순간에도 “이것은 하나님이 내 생명을 지켜주신 결과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세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 쥐어진 무엇이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속죄의 마음으로, 겸손의 마음으로 다시 올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살아 있게 하심이 은혜입니다. 내 생명, 내 재물, 내 시간 모두가 주님의 것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흘러넘치기를 소망합니다.

 


📖 단어 연구

❖ 헌금 (תְּרוּמָה / 트루마)

 

뜻과 의미

‘트루마(תְּרוּמָה)’는 ‘들어 올림’, ‘봉헌’, ‘예물’, ‘특별히 구별된 헌금’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입니다. 어원은 히브리어 동사 ‘루ם(רוּם, 높이다)’에서 유래하며, 어떤 것을 위로 들어 올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내포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부나 기증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이 담긴 예배적 행위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50절에서 장군들이 말하길, “각 사람이 받은 금 패물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가져왔나이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헌금’은 전리품 중에서 금 패물—즉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 등—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전쟁에서 보호받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속죄의 표현이며,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드린 ‘속죄의 예물’입니다.

 

신학적 의미

‘트루마’는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하심에 대한 신앙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자, 구별된 삶의 태도입니다. 신약에서는 고린도후서 9:7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즉, 헌금은 단지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감사’의 문제이며, 마음의 중심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 속죄 (כָּפַר / 카파르)

 

뜻과 의미

‘카파르(כָּפַר)’는 ‘덮다, 속죄하다, 화목하게 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명사 ‘코페르(כֹּפֶר)’는 ‘속죄제물’, ‘속전’을 뜻합니다. 죄를 덮어 가리우고 하나님의 진노를 중지시키는 제사 행위에 주로 사용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50절에서 장군들은 자신들이 드리는 금 패물의 헌금을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다”고 밝힙니다. 이는 전쟁 중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죽음을 면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생명을 대신해 드리는 속전적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가 정결해지기 위한 신앙적 행위입니다.

 

신학적 의미

‘카파르’는 구약의 모든 속죄 개념의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 속죄일(Yom Kippur)은 대제사장이 백성 전체의 죄를 위해 피를 뿌려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의식입니다. 이 개념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성되며(히 9:1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덮으신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단어는 구속의 핵심이며, 죄에서 구원받은 자의 삶이 은혜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헌신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 패물 (כְּלִי / 켈리)

 

뜻과 의미

‘켈리(כְּלִי)’는 ‘그릇, 도구, 기구, 무기, 장식품’ 등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명사입니다. 용도에 따라 일상 기구부터 예배 도구, 심지어 무기나 장신구까지 포함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50절에서 사용된 ‘금 패물’(כְּלִי זָהָב)은 전쟁에서 얻은 금으로 만든 장신구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전리품이며, 이를 여호와께 드리는 것은 자기 중심적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고백입니다.

 

신학적 의미

‘켈리’는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거룩하게도, 세속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패물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예배적 도구가 되며, 성막의 기구로도 쓰였습니다(출 25장). 신약의 관점에서는 우리 몸이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는 선언처럼, 삶의 모든 도구와 재물도 하나님의 거룩한 용도에 따라 구별되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 전리품 (שָׁלָל / 샬랄)

 

뜻과 의미

‘샬랄(שָׁלָל)’은 ‘약탈물, 전리품, 전쟁의 소득’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입니다. 이는 전쟁에서 적에게서 얻은 물질적인 소득을 가리키며, 고대 전쟁의 필수 결과물이었습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본장에서는 전리품이 구체적으로 금, 은, 동, 철, 주석, 납, 각종 옷과 가축, 심지어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언급됩니다(32–53절).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전리품조차도 임의로 나누거나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규례에 따라 나누고 일부는 거룩하게 바치도록 하십니다. 이는 전리품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인식 아래 사용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신학적 의미

‘샬랄’은 인간의 탐욕을 드러낼 수 있는 시험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며 물질의 영적 방향성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모든 것은 다시 하나님께 돌려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 명령하다 (צָוָה / 차와)

 

뜻과 의미

‘차와(צָוָה)’는 ‘명령하다, 지시하다, 지켜 행하게 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입니다. 이는 권위 있는 위치에서 의무를 부여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율법과 예배 규례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26절에서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과 함께 전리품을 사람과 짐승을 나누되”라는 표현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구체적인 분배 지침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명령하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 공동체에 철저히 적용하는 행위입니다.

 

신학적 의미

‘차와’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단지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거룩함을 유지하는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이 제자도와 교회의 본질적 사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 절별 주해

❖ 25–27절 │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분배의 질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사람과 짐승의 수에 따라 정확히 계산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와 군사들에게 각각 절반씩 나누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장면은 전쟁의 승리가 전적으로 여호와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무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얻은 전리품이기에, 그 분배조차 하나님의 뜻과 명령 안에서 질서 있게 이뤄져야 했습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공평과 정의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28–30절 │ 헌신의 몫, 하나님의 몫

 

전리품 가운데 군인들에게 돌아간 절반 중에서 하나님께 드릴 몫을 뽑아 레위인에게 주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비율입니다. 군인들에게서 뽑는 몫은 오백 분의 일이지만(28절), 회중에게서 뽑는 몫은 오십 분의 일이었습니다(30절). 이는 단순한 수치 계산을 넘어, 직접 전쟁에 참여했던 자들과 후방에 있었던 자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명령은 곧 ‘모든 승리의 영광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고백하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이 같은 ‘헌신의 불균형’을 통하여 ‘은혜의 균형’이 드러납니다.


❖ 31–33절 │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질서

 

모세와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분배와 헌신의 명령을 정확히 실행합니다. 단순한 분배 작업이 아니라,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아래에서의 분배는 공동체 내부의 불평등이나 불만을 줄이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공동체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은 특히 오늘날 교회 내 리더십이 감정이나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에 따라 행해야 함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 34–47절 │ 전리품의 구체적 집계와 하나님의 세밀하심

 

이 절들은 전리품의 상세한 수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통계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하신 돌보심과 통치의 원리를 반영합니다. 소, 양, 나귀, 사람의 수까지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은 회중과 군사들에게 동일하게 나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거대한 승리 자체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뉘고 관리되는지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곧 질서, 정직, 그리고 신실한 나눔—을 보여주는 구약적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 48–50절 │ 자발적 헌신, 속죄의 고백

 

군대 지휘관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고 보고하면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금으로 된 장식품을 헌물로 드리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들의 고백은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속죄를 위한 헌신입니다. 승리를 경험한 자들이 스스로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들과 부하들의 생존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예배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속죄’는 단지 죄에 대한 용서 요청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결코 설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내면의 자백입니다.


❖ 51–54절 │ 헌물의 수용과 공동체의 예배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백성의 자발적 헌물을 받아 회막으로 가져가며, 이를 기념물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고 기록됩니다(54절). 이는 단지 당시의 헌신을 보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감사가 구체적 행위로 드러나고, 후대에까지 기억될 수 있는 은혜의 표지로 남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공동체는 ‘기억해야 할 감사’와 ‘기념되어야 할 은혜’를 잊지 않고 물질과 행위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머무는 장소에 드리는 예배의 자리로 연결시켜야 함을 보여줍니다.


📖 묵상

전쟁은 끝났습니다. 일주일 간의 정결예식과 피로와 긴장의 순간이 지나고,
마침내 백성들은 진영으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숨을 고르고, 숫자를 세고, 전리품을 나누며 일상을 정리합니다.

이 장면은 한 편의 기록으로만 남겨질 수 있지만 본문 속에는 숫자와 물품을 넘어선 깊은 영적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군대 지휘관들의 자발적인 헌신이 돋보입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 감격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자신들이 얻은 금 패물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드리며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감사 이상의 것입니다.

그들의 드림은 자신들의 생존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었다는 믿음의 표현이자, 은혜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전쟁터 한복판에서 돌아온 자들, 수많은 칼과 창이 오가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승리에 취하거나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는 금과 보석이 아니라 ‘생명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본 적이 있을까?

눈에 띄는 기적이나 축복이 없더라도

사실 우리가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 숨을 쉴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 아닐까요?

무사히 넘긴 사고, 가까스로 지나온 고난,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았던 순간들…

그 모든 순간을 지나온 후, 우리는 그저 안도하며 끝나지 않았는지요.

은혜는 그저 마음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고, 드려지고, 헌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잊지 않으려면,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은혜로 다가오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이 지켜주신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은 무엇이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헌신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감동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은혜로 살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은혜로 드려야 합니다.

 


📖 말씀 _ "헌신은 남는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서론 │ 헌신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님을 위해 헌신합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자리에서도 헌신은 늘 귀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 헌신, 정말 무엇을 향한 마음인가요?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결과 때문은 아닐까요? 혹은, 하나님보다 ‘나를 위한 신앙’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본문은 미디안과의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분배와 헌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는 전쟁의 무게, 생존에 대한 감사,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속죄하고자 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군사들은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살아남았고, 그들의 손에는 수많은 전리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 전리품을 단지 노획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헌신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신은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살아남은 감사에서 시작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헌신의 무게를 다시 묵상해보고, ‘왜 드려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 헌신은 계산이 아닌 깨달음입니다.

 

1. 전리품의 질서: 하나님 앞에서의 공평한 분배 (25–31절)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 백성은 수많은 전리품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분배는 단순한 전쟁의 수익 정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에 따라 질서 있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군사들과 나머지 회중 사이에 공평하게 나누도록 지시하셨고, 반드시 하나님의 몫이 먼저 구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당시의 일반적인 전쟁 관습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승리한 자가 전리품의 대부분을 독식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철저히 공동체 중심으로, 그리고 당신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명령 속에는 ‘승리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영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군사들의 수고나 전략 이전에, 하나님께서 싸우셨고 이기게 하셨다는 고백이 담긴 분배 구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의 사회 질서 속에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 질서는 유효합니다. 우리가 얻게 되는 모든 성취, 수익, 결과물은 내가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에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나누는 삶이 참된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가정과 교회,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질서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내 시간, 내 수입, 내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왔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참된 겸손과 감사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공평한 분배는 단지 나눔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실천하는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몫: 삶의 모든 영역을 드리는 헌신 (32–41절)

 

본문은 전리품 중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몫을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금이나 은, 가축의 숫자를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 곧 여종들과 같은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몫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개념으로, 물질만이 아닌 삶의 전반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영적 상징성을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종종 ‘헌신’이라 하면 물질을 드리는 것으로 한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헌신은 훨씬 더 깊고, 전인적인 삶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재능, 시간, 관계, 일상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며 그분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에만 하나님을 섬기고, 나머지 날들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7일 내내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이 진정한 헌신의 삶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드림’의 행위가 아니라, ‘드릴 수밖에 없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드려야 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왜 드려야 하는지를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드림은 은혜의 응답이며, 드릴수록 자유로워지고, 드림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앙은 계산이 아니라 감격에서 시작되며, 그 감격이 삶 전체를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3. 속죄의 헌물: 생존에 대한 감사와 회개의 고백 (48–50절)

 

군대 지휘관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린 헌물의 동기는 실로 놀랍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단순한 승전 기념이 아니라 ‘속죄’를 위한 헌물을 드립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라는 고백은 깊은 회개와 동시에 감사의 고백입니다.

 

전쟁에서의 생존은 단순히 운이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보호와 자비였음을 그들은 인식했습니다. 그 어떤 숫자적 통계보다도, 한 사람의 생존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 하루를 살아있다는 사실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예배와 헌신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 지휘관들의 헌신은 의무나 명령이 아닌, 자발적인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셨다는 깨달음 앞에, 가장 귀한 금 패물들을 기쁨으로 내놓았습니다. 우리의 헌신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음이 은혜라는 자각은 모든 예배와 삶의 태도를 바꾸는 근본적인 신앙의 출발점이 됩니다.

 

 

4. 모든 헌신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51–54절)

 

본문은 이 지휘관들의 헌신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성막에 보관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 앞에 기억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백성들의 헌신을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은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수고도 잊지 않으시며, 진심 어린 헌신은 그분의 임재 안에 보관되어 영원히 기억됩니다. 이것은 모든 예배자에게 큰 위로이자 도전입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의 박수가 없어도, 하늘의 성막에는 우리의 눈물과 섬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헌신, 그 헌금, 그 중보기도, 그 헌신의 자리는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기억하시며, 반드시 그의 때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드려진 제사요, 거룩한 성막에 담겨지는 귀한 향기로운 헌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 헌신은 은혜의 반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종 ‘헌신’이라는 단어를 무겁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쳐야만 할 것 같고,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하는 것 같은 의무감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헌신이 억지로 끌려가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드리는 감격의 반응임을 배웁니다. 헌신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며, 살아있다는 그 자체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모세와 함께한 이스라엘 군 지휘관들은 단지 명령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명을 잃지 않고 돌아온 것을 깊이 자각했기에, 기꺼이 가장 귀한 금 장신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남은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신앙의 고백이자, 회개의 표시, 그리고 다시는 같은 죄로 타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의 충돌, 관계의 깨짐, 병상의 고통, 신앙의 회의… 수많은 전쟁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지쳤고, 넘어졌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속죄의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은 단지 종교적 의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천입니다. 무의미하게 소비되던 시간을 다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바꾸고, 자신만을 위해 쌓아두던 물질을 이웃과 교회를 위한 사랑으로 흘려보내며,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를 내는 것—이 모든 것이 헌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작은 실천들조차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용한 기도, 눈물 어린 예배, 작지만 성실한 헌금을 모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막에 간직하시며 기억하십니다. 세상은 몰라줄지라도, 하늘은 그것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지나온 우리,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켰다. 너는 살아있다. 이제 나에게 돌아오라.”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모든 날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릎 꿇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전쟁의 끝에서 드려진 헌신,

목숨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감격하며 드린 이스라엘의 고백을 통해,

저의 마음도 다시 살피게 됩니다.

 

주님,

저는 얼마나 자주 살아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요.

오늘 하루를 살아낸 것도,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모두가 주님의 은혜였음을 알면서도,

때때로 그 은혜에 무뎌지고,

주님을 향한 헌신마저 계산 속에 넣어두려 했습니다.

 

그저 남는 것으로,

시간이 허락될 때만,

마음이 편할 때만 드리는 얄팍한 헌신이

제 삶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요.

 

주님,

이스라엘의 군 지휘관들이

“우리 각 사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그 한마디 고백으로

주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드렸듯,

저도 오늘, 그들의 고백 앞에 무릎 꿇습니다.

 

주님,

저도 살아남았습니다.

수많은 감정의 전쟁터에서,

사람들과의 갈등, 세상과의 싸움,

그리고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오늘도 헌신할 수 있는 삶을 주셨다면,

저의 삶이, 시간이, 물질이, 마음이

주님을 위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다 드릴 수는 없더라도

진심을 드릴 수는 있게 하소서.

 

주님,

성막 안에 드려진 헌신처럼,

저의 작은 섬김과 드림도

주의 거룩한 기억 안에 간직되길 소망합니다.

사람의 칭찬보다,

세상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미소가 저의 가장 큰 상급이 되게 하소서.

 

헌신은 의무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헌신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내일도,

속죄의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다시 나아가겠습니다.

 

저를 받아주소서.

제 작은 마음도, 깨진 의지도,

다시금 주님 손에 올려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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