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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시편ㅣ2025년

[생명의 삶] 시편 77편 10절-20절 _ 2025. 6. 19(목)

by LogosLab Steward 2025. 6. 19.

❖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배포]를 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10 Then I said, “It is my grief, That the right hand of the Most High has changed.” 

11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1 I shall remember the deeds of the Lord; Surely I will remember Your wonders of old. 

12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12 I will meditate on all Your work And muse on Your deeds. 

13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13 Your way, O God, is holy; What god is great like our God? 

14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4 You are the God who works wonders; You have made known Your strength among the peoples. 

15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 (셀라)
15 You have by Your power redeemed Your people, The sons of Jacob and Joseph. Selah. 

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6 The waters saw You, O God; The waters saw You, they were in anguish; The deeps also trembled. 

17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17 The clouds poured out water; The skies gave forth a sound; Your arrows flashed here and there. 

18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18 The sound of Your thunder was in the whirlwind; The lightnings lit up the world; The earth trembled and shook. 

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19 Your way was in the sea And Your paths in the mighty waters, And Your footprints may not be known. 

20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20 You led Your people like a flock By the hand of Moses and Aaron. 

 


📖 본문 배경

❖ 개요

 

시편 77편은 아삽의 시로, 한 신자가 깊은 영적 침체의 터널을 지나며 다시금 하나님의 구원과 위대하심을 회복하는 내면의 여정을 그린 시편입니다. 앞선 1–9절에서는 시인의 부르짖음, 불안, 기억의 아픔, 신앙의 질문들이 정직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10절부터 시인은 전환점에 이르러, 하나님의 옛 행적과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묵상하며, 다시금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이 전환은 단순한 감정의 전환이 아니라, 기억과 묵상의 신앙적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인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백성을 인도하시고 기이한 일을 행하셨는지를 떠올리며, 그 은혜를 조용히 읊조리고 되뇌입니다. 이로써 마음의 방향이 현실의 절망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로 향하게 됩니다.


❖ 역사적 배경

 

10–20절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회고적 찬송입니다. 특별히 16–20절은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묘사하며, 당시의 자연 현상—구름, 물, 번개, 땅의 진동 등—을 통해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자연을 통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19절), 백성은 여전히 인도받았고(20절),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초월적인 통치를 상징합니다. 아삽은 이 역사적 사건을 개인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신앙의 기억의 근거로 소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문화적 배경

 

이스라엘에서 ‘기억’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믿음을 새롭게 하는 종교적·공동체적 행위였습니다. 율법과 예배, 절기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기억함으로써 백성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묵상’(12절) 역시 고대 히브리인의 신앙 실천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기도 외에, 마음 깊이 읊조리며 되새기는 내면의 기도와 기억의 행위는 종교적 사색과 회복의 핵심이었습니다.


❖ 신학적 배경

 

이 본문은 신정론적 전환의 한 예로서 매우 중요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과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된 하나님을 붙듭니다. 이는 신앙이 감정이나 환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말씀과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행적을 기준으로 유지되고 회복된다는 신학적 진리를 제시합니다.

 

‘지존자의 오른손’(10절), ‘기이한 일’(14절), ‘주의 팔’(15절)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묘사하는 은유로, 구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구속사적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또한 “발자취를 알 수 없으나 인도하셨다”(19–20절)는 표현은 하나님의 은혜가 비가시적일지라도 확실하다는 진리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 본문 요약

시편 77편의 전반부(1–9절)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고통과 의심, 혼란을 경험한 시인의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10절부터 시인의 고백은 급격히 전환됩니다. 절망의 감정에 머물던 그는, 믿음의 방향을 하나님께 다시 고정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현재의 고통에 함몰되지 않고, 과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데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나의 잘못이라”(10절)라는 고백은 단순한 자책이 아닙니다. 자신의 관점과 감정이 흔들렸음을 인정하는 신앙의 회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여전히 신실하시다는 전제를 붙들고, 이전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잘못된 시선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그는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하나님의 능력의 때를 다시 바라봅니다.

 

이제 시인은 과거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합니다(11절). “기억하리이다”라는 반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신앙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신중한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들, 초자연적인 구원의 역사를 되새기며, 시인은 점점 깊은 묵상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고’, ‘낮은 소리로 되뇌인다’고 표현합니다(12절). 이는 히브리적 묵상의 전형적인 표현으로, 내면에서 믿음을 천천히 되살리는 경건한 행동입니다.

 

13절에 이르러 시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라는 말은 단지 감정의 회복을 넘어,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는 변함없이 거룩하며, 하나님과 비교될 존재는 없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점점 하나님 중심의 신학적 고백으로 정돈되어 가고 있습니다.

 

14–15절은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열방 가운데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분명히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끄셨던 그 구원 사건을 되새기며, 시인은 지금의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다시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붙들게 됩니다.

 

16절부터 19절까지는 시적인 표현으로 출애굽 당시의 하나님의 현현을 묘사합니다. 물들이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 떨며(16절),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울리며, 번개와 우레가 세계를 진동시킵니다(17–18절).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도구로 삼아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신 구원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길’이 있었지만, ‘그 발자취는 알 수 없었다’(19절)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때로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분은 여전히 가장 곧은 길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진리가 이 절 속에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20절은 이 모든 묵상의 결론처럼 주어집니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당신의 사람들을 목자처럼 부드럽고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의 고백입니다. 시인은 절망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하나님이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역사 속에서, 자연 속에서, 지도자의 손을 통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 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본문은 신자의 믿음이 현실 속 절망을 어떻게 돌파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여정입니다. 기억을 통한 회복, 묵상을 통한 전환,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학적 확신은 오늘날 믿음이 흔들리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회복의 경로를 제시합니다.

 

 


📖 붙잡는 말씀

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이 한 구절은 시편 77편 전체, 아니 어쩌면 우리의 신앙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주는 깊은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고 계셨고, 가장 곧은 길로 인도하셨지만,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이해를 넘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신비를 말합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다’는 표현은 출애굽기의 홍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히브리 문화에서 혼돈과 두려움, 인간의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 가운데 하나님의 길이 있었고, 큰 물 위에 곧은 길이 놓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으며, 그 길은 언제나 곧고 안전합니다. 다만, 그 발자취는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지 못하고, 종종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신지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감지되지 않아도 실제이며, 불가시적이지만 확실합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명확하게 앞서가시지만, 어떤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 ‘길을 여신’ 후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백성은 건넜고,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여전히 그분의 길이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해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가장 안전한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발자취가 없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감정이 메말랐다고 해서 믿음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씀은 제가 인생의 전환점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전혀 일하고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깊이 일하시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발자취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분의 손길은 분명히 제 삶을 이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 말씀은 이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바다 위에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혼란스럽고, 길이 끊긴 것처럼 보여도, 그 큰 물 가운데 주의 곧은 길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중입니다.

 


📖 단어 연구

❖ 지존자 (עֶלְיוֹן / 엘리욘)

 

✦ 뜻과 의미

엘리욘(עֶלְיוֹן)은 ‘가장 높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통치권을 강조할 때 사용되며, 인간이나 피조물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절대적 지위와 위치를 나타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10절에서 시인은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라고 고백합니다. ‘지존자’는 자신보다 훨씬 높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지칭하며, 지금까지 자신의 시야와 판단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인정하는 회개의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 신학적 의미

‘엘리욘’은 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처음 등장하며(창 14:18–20), 하나님이 모든 나라 위에 계신 절대자이심을 나타냅니다. 시편에서는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높으심과 그로 인한 경외의 태도를 강조하며, 하나님께 대한 순복과 경외의 신앙 태도를 불러일으킵니다. 시인은 절망의 밤을 지나며, 다시 하나님의 ‘높으심’을 인정하며 신앙의 전환을 시작합니다.


❖ 기억하다 (זָכַר / 자카르)

 

✦ 뜻과 의미

자카르(זָכַר)는 ‘기억하다’, ‘상기하다’, ‘언급하다’는 의미를 갖는 일반적인 히브리어 동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회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언약에 대한 신실한 되새김과 신앙적 행동으로의 연결을 포함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11절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신앙의 위기 속에서 자신을 회복시키는 행위로서의 기억이며, 현재의 고통을 하나님의 과거 행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에서 ‘기억하다’는 단어는 하나님이 인간의 상태를 ‘기억하시고’ 행동에 옮기시는 맥락에서도 자주 쓰입니다(출 2:24). 반대로 인간이 하나님의 율례나 구속사를 ‘기억할 때’는 회개와 믿음의 회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됩니다. 본문은 기억을 통해 믿음을 재구성하고, 현실의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붙드는 신학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 기이한 일 (פֶּלֶא / 페레)

 

✦ 뜻과 의미

페레(פֶּלֶא)는 ‘기이함’,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 ‘초자연적 이적’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 인간의 능력과 이해를 넘는 초월적 사건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14절에서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며, 시인은 하나님께서 민족들 가운데 드러내신 역사적 구원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특히 출애굽과 홍해 사건 같은 초자연적 간섭을 지칭합니다.

 

✦ 신학적 의미

페레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이적과 구원 행위—특히 출애굽, 만나와 홍해, 여리고 성 붕괴 등—에 사용되어 하나님의 신성한 개입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기이한 일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 그리고 언약 백성을 향한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는 표징이며, 오늘날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하게 하는 기억의 근거가 됩니다.


❖ 바다 (יָם / 얌)

 

✦ 뜻과 의미

얌(יָם)은 ‘바다’, ‘대양’을 의미하며, 히브리인들에게는 단순한 물의 공간이 아닌 혼돈과 두려움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다는 창조 이전의 혼돈(창 1:2)을 상징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난 듯한 위협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인은 19절에서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을 것 같은 혼돈의 한복판에도 하나님의 길이 있다는 놀라운 고백을 드러냅니다. 이는 출애굽 당시 홍해 가운데 길을 여셨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가리킵니다.

 

✦ 신학적 의미

바다는 요나서, 시편, 그리고 묵시문학에서도 하나님과 맞서는 세상의 혼란, 악의 상징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바다 위에서도 주권자이시며, 그의 길은 바다 한가운데 곧게 나 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믿게 하는 신앙의 핵심 진리입니다.


❖ 발자취 (עָקֵב / 아케브)

 

✦ 뜻과 의미

아케브(עָקֵב)는 ‘뒤꿈치’, ‘발자국’, ‘흔적’을 뜻하는 단어로, 추적 가능하거나 누군가 지나간 흔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부재의 형태로 등장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19절)는 고백은, 하나님이 분명히 일하고 계셨지만, 인간의 눈에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이는 신앙의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시적 고백이며, 동시에 비가시적 신실함에 대한 신뢰를 나타냅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행위는 늘 명확하거나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때론 하나님의 침묵이나 부재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분은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십니다. ‘발자취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방식을 인정하는 신학적 겸손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믿음과 일맥상통합니다.

 


📖 절별 주해

❖ 10절 │ 잘못된 해석에서 벗어나는 전환점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이 구절은 시인의 내면의 반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절입니다. 앞서 1–9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에 대해 절망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모든 절망이 자신의 시선과 해석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잘못이라”는 말은 회개와 신앙의 자각이 결합된 표현입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는 하나님께서 전능한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구원의 시기를 의미하며, 시인은 하나님을 다시 믿기로 결단합니다. 회복은 감정이 아니라 관점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 11절 │ 구원의 기억이 신앙을 일으킨다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이 구절은 회복의 방법으로서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다시금 의도적으로 되새깁니다. ‘기억하다’는 단어는 히브리 성경에서 신앙의 재정렬 행위로 자주 사용되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회상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입니다. 특히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은 출애굽, 홍해 사건, 광야에서의 인도 등 초자연적 구원의 순간들을 지칭합니다.


❖ 12절 │ 묵상은 내면의 예배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묵상과 속삭임의 형식으로 되새깁니다. 이는 히브리 신앙의 대표적인 경건 실천으로, 입술로 읊조리며 마음으로 되뇌는 ‘하가’(הגה)의 영적 리듬입니다. 이 절은 기도와 묵상이 말없는 침묵 속에서도 신앙의 회복을 가져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억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묵상을 통해 신앙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행위가 됩니다.


❖ 13절 │ 하나님의 도는 거룩하며 독보적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시인은 하나님의 길이 ‘거룩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단지 윤리적 순결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이 인간의 이해와 비교를 초월한다는 초월성과 구별성을 말합니다. ‘거룩한 도’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식, 구원의 경로, 인도하심의 패턴을 의미하며, 이는 완전하고 오직 그분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길입니다. 마지막 수사의 문장,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는 시편 전체를 통해 반복되는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고백하는 신앙의 절정입니다.


❖ 14절 │ 기이한 일로 드러나는 능력의 하나님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공적 명예와 구속사의 개방성을 강조합니다. ‘기이한 일’(페레)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 사건을 의미하며, 출애굽과 같은 대표적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민족들 가운데서도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구약적 계시가 열방을 향한 선교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15절 │ 팔로 행하신 구원의 역사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 (셀라)”

 

‘주의 팔’은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구원 행위를 상징합니다. 히브리 시에서 ‘팔’은 하나님의 권능과 개입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속량하셨나이다’는 말은 죄와 억압, 포로됨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구속신학의 중심 단어입니다. 이 절은 ‘셀라’라는 멈춤의 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단순한 보호가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방의 사건임을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 16절 │ 자연조차 하나님 앞에 떤다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이 구절은 출애굽 사건의 한복판, 홍해를 가르신 장면을 시적인 이미지로 재현합니다. ‘물들이 주를 보았다’는 표현은 자연 만물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반응한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여기서 ‘깊음’은 고대 근동에서 혼돈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떨고 있는 피조물로 그려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단지 민족의 수호신이 아닌 우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심을 드러냅니다.


❖ 17–18절 │ 창조적 권능이 드러난 구원의 장면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이 두 절은 하나님의 임재가 자연의 현상을 동반하여 나타나는 ‘신현’(theophany)의 묘사입니다. 구름, 우레, 번개, 지진 등은 모두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구원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출 14장, 19장 참조). 특히 ‘화살’은 심판과 보호의 상징을 동시에 가지며, 이 장면은 하나님의 임재가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를 뒤흔드는 실재임을 강조합니다.


❖ 19절 │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인도하시는 하나님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이 구절은 시 전체에서 가장 신학적이고 시적인 절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바다, 곧 혼돈의 한가운데 놓여 있지만, 그 길은 곧고 안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발자취를 알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방식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이 절은 신앙의 본질이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 신뢰의 방향성에 있다는 진리를 상기시켜 줍니다.


❖ 20절 │ 인도하시는 하나님, 목자의 손길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시인은 구원의 역사의 결론을 목자의 이미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양 떼처럼’ 부드럽고 세심하게 인도하셨고, 그 일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실행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초자연적 신현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 속 인간의 손을 통해 실현된다는 복합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그분의 종들을 통해 인도하시는 실재의 하나님이십니다.

 


📖 묵상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합니다. 가장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순간, 오히려 그분의 부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역설적인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더듬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간구하면서도 그분의 침묵 앞에 주저앉곤 합니다. 시편 77편의 시인 역시 이러한 영적 암흑기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밤,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결국 그 절망의 감정 속에서 믿음의 방향을 전환하는 지점을 발견합니다.

 

그 고요하고 혼란스러운 밤 가운데,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옛날 일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오셨던 그때의 장면들. 눈물로 엎드려 기도하던 자리, 응답받은 은혜의 흔적들. 그 기억을 다시 꺼내자, 나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와 함께 흐르고 있었음을 보게 되었지요.

 

시인은 말합니다. “이는 나의 잘못이라.”(10절) 이 고백은 단순한 자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졌던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었는지를 인정하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은 결코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심하며, 절망이라는 안경을 쓰고 현실을 보았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다 위에 길을 내시고, 깊은 물 가운데에서도 곧은 길을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때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손길’은 늘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광야의 백성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누군가의 기도와 위로, 사랑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오늘을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자원입니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고통의 바다에도, 하나님의 길은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더 분명한 분이십니다.

 

기억은, 다시 걷는 길입니다.


📖 말씀 _ "보이지 않아도 걷는 믿음"

서론 │ 어둠 속에서 신앙을 말하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질병, 상실, 좌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올리지만, 때때로 그 응답은 고요한 침묵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속으로 묻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요? 지금도 나를 돌보고 계신가요?”

 

시편 77편은 바로 그 질문을 품은 시인의 절규입니다. 그는 밤새도록 손을 들고 기도하며(2절), 하나님의 위로를 애타게 찾지만(3절), 오히려 더욱 깊은 불안과 근심에 빠집니다. 눈을 붙이지 못하고 괴로움에 말을 잃은 시인은(4절), 지난날의 추억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떠올리기 시작합니다(5–6절).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서, 믿음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특히 10절은 그 전환의 문장입니다.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라는 고백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낙심했던 자신의 해석을 되돌아보는 회개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이 변하셨다’가 아니라,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겸손한 인식이죠.

 

우리 역시 영적 침체의 터널을 지날 때, 시인의 이 고백 앞에 멈추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언제나 승리와 확신으로만 채워지는 여정이 아닙니다. 고백과 회개, 기다림과 기억, 흔들림과 다짐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아도 걷게 하시고, 말씀이 들리지 않아도 우리 안에 믿음의 노래를 남겨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흔들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손길을 다시 보게 하는 은혜의 거울이 됩니다.


본론  절망을 넘어선 믿음의 여정: 기억, 확신, 그리고 인도

 

1. 회복은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10–12절)

 

시편 기자는 낙심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로 ‘기억’을 선택합니다. “이는 나의 잘못이라”는 고백은 자신의 낙담이 하나님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과 감정의 오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일하심, 권능, 구원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그 하나님의 손이 멈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손을 신뢰하지 못한 잘못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결단합니다.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리이다.”

여기서 ‘기억하다'는 단지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믿고, 다시 기대하며, 다시 고백하는 적극적인 신앙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시인은 “주의 모든 일을 읊조리며,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12절)라고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묵상'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기원하며, 이는 말씀을 되씹고 곱씹는 신앙의 내면화를 뜻합니다. 즉,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믿음의 영적 숨쉬기와도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질 때, 과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떠올리십시오. 응답받은 기도, 붙잡았던 약속, 지나온 광야 속의 은혜들…

그 기억은 오늘의 믿음을 다시 세우는 기둥이 됩니다. 회복은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되새기는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13–16절)

 

기억을 통해 믿음을 회복한 시인은 하나님의 현재성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이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분의 길은 언제나 정의롭고 선하다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같으리이까?”(13절) 이 질문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여전히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라는 확신의 외침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기이한 일’은 히브리어로 페레이며, 이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개입, 곧 출애굽 때의 구원을 연상케 합니다. 14–15절에선 바로 그 출애굽의 기억,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백성을 ‘속량’하셨던 사건이 다시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배웁니다.

기억은 단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는 통로입니다.

 

시인은 단지 ‘그때’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하나님이 동일하시다’는 믿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여전히 거룩하고, 그 능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상황보다 크시며, 감정보다 진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릴 때일수록 그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합니다.

 

 

3. 보이지 않아도 인도하시는 하나님 (17–20절)

 

시인은 17–19절에서 출애굽 당시의 장엄한 하나님의 임재를 시적으로 묘사합니다.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이 날아가고, 번개가 비추며, 땅이 흔들렸도다…” 이 표현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구절이 있습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19절).

하나님이 바다 가운데 길을 내셨지만, 그분의 발자취는 보이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신앙의 현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분의 손길은 때로 감춰져 있고, 그분의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믿음이란, 그 발자취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 바다를 건널 때, 그분은 여전히 앞서 가십니다. 그리고 20절, 시인은 그 여정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절망의 밤에서도, 믿음의 새벽을 향해 우리를 이끄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사람을 통해,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결론 │ 하나님의 침묵, 믿음의 시험대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신앙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가?

그분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가?

나의 인생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가?

 

시편 77편은 이 모든 질문에 조용하지만 확실한 ‘예’로 응답합니다. 시인은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기억을 선택했고, 하나님의 길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인도하시는 분이시라고. 지금 이 바다 한가운데, 그분의 길이 있고, 그 길은 반드시 은혜로 이어진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보이지 않아도 걷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발자취는 안 보일 수 있어도, 그분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고, 고백하며, 다시 걷는 것입니다.

 

기억은, 다시 걷는 길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믿음으로 걸어가는 우리를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기억을 통해

다시 믿음으로 힘차게 걸어가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저의 삶을 붙잡고 계시며,

지금도 여전히 동행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상황과 환경만을 바라보며 절망과 낙심에 빠져

주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나의 잘못이라” 고백했던 시인의 말처럼,

하나님보다 상황을 더 크게 보고,

느낌을 진리보다 앞세웠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다시 기억하겠습니다.

저의 삶에 기도에 응답하셨던 그 시간들,

눈물 속에서 주신 위로와 약속들,

그리고 넘치도록 부어주셨던 은혜의 장면들을

기억합니다.

 

주님, 간절히 바라기는

그 기억이 오늘을 걷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발자취가 보이지 않아도 주님이 앞서 가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바다 위에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

침묵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제 삶의 인도자이신 주님,

오늘 이 하루도, 주님의 손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령의 손을 통해

저를 믿음의 길로 걸어가게 하소서.

 

모든 것 감사드리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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