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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40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42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의 표적들을, 소안 들에서 그의 징조들을 나타내사
44 그들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그들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45 쇠파리 떼를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46 그들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셨고 그들이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47 그들의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그들의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48 그들의 가축을 우박에, 그들의 양 떼를 번갯불에 넘기셨으며
49 그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와 분노와 고난 곧 재앙의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50 그는 진노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으며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53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54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 본문 배경
❖ 개요
오늘 본문(40–55절)은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애굽에서 행하신 구원의 기적들을 나열하면서, 그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전하라는 목적 아래 쓰였습니다. 이 구간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반역했는지를 서술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놀라운 구속 사건들을 강조함으로써 기억의 신학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 역사적 배경
이 본문은 크게 두 부분의 역사적 배경을 포함합니다. 하나는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역했던 사건들(출 16장, 민 14장 등), 또 하나는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열 가지 재앙의 사건들(출 7–12장)입니다. 특히 본문은 애굽 땅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 곧 물이 피로 변하고(44절), 개구리와 파리, 메뚜기 재앙(45–46절), 우박과 불벼락(47–48절), 장자의 죽음(51절) 등 출애굽기의 핵심 장면들을 요약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회고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잊지 말고 순종하라는 목적을 갖습니다.
❖ 문화적 배경
고대 근동 사회에서 역사의 기록은 단순한 연대기라기보다는 종교적 교훈과 결합된 형태로 전달되었습니다. 시편 78편은 그러한 전통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가져야 할 역사적 책임과 신앙적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의 구속을 민족적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출애굽과 광야 사건은 예배, 절기, 율법의 뿌리가 되는 중심 축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후대 공동체에게 그 민족적·영적 기원을 잊지 말고, 다시 그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부름이기도 합니다.
❖ 신학적 배경
시편 78:40–55은 ‘기억’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속과 인간의 반역,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가 교차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던 이유를 바로 “그의 긍휼하심”으로 설명합니다(이전 절들과 연결). 본문 후반부에서는 애굽의 재앙들을 나열하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얼마나 강력하고 의도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일방적 사랑과 구속의 계획을 강조하며, 복음의 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의 예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이 시편의 외침은, 결국 예수 안에서 완전히 나타날 새로운 출애굽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습니다.
📖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과거를 회고하며, 그들이 겪은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와 인간의 완고한 반역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시인은 마치 역사의 증인처럼, 이스라엘이 걸어온 광야의 여정과 그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죄악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먼저, 시인은 광야에서의 반역을 회상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시험했는지를 말합니다(40–41절). 단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거역하고 그분의 권능을 제한하려 했던 교만한 태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기억 상실에서 비롯된 믿음의 단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구원의 날을 잊어버림으로써, 그들은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들의 길로 나아갔습니다(42절).
이후 시인은 그 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일깨우듯,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재앙의 역사를 회상합니다(43–51절). 이 장면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그리고 그의 능력이 얼마나 명백하고도 압도적이었는지를 증거하는 회고입니다. 애굽의 물이 피로 변한 사건, 파리떼와 개구리의 재앙, 메뚜기 떼의 습격, 곡식과 가축을 파괴한 우박과 서리, 하나님의 분노가 응축된 환난의 날들, 그리고 마침내 장자를 치신 마지막 재앙까지 — 그 모든 이적과 재앙은 하나님의 손이 얼마나 능력 있고 분명한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끝난 자리에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자비가 펼쳐집니다(52–55절). 하나님은 양 떼처럼 연약한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그들을 두려움 없이 바다를 건너게 하시며, 결국 약속하신 땅, 거룩한 경계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을 유업으로 분배하시며, 백성으로 하여금 그 기업을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시인은 한편으론 인간의 반복된 반역과 망각을 고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모든 반역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강하게 부각시킵니다. 본문은 결국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간은 잊고 돌아서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완고함이 짙어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강하게 빛을 발합니다. 이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붙들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 붙잡는 말씀
42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한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깊은 영적 문제를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바로 ‘기억 상실’입니다.
이 시편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기억’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손길, 그 능력의 손을 잊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다시 죄에 빠지고 불순종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그의 손’은 단순히 한 사건이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적 역사하심 전체를 대표하는 표현입니다. 출애굽의 밤, 홍해를 가르시던 순간, 만나를 내리시던 아침, 반석에서 물을 터뜨리시던 그때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직접 돌보셨습니다. 그 모든 사건들은 단순한 구원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감사도 사라지고
기억하지 않으면, 믿음도 약해지며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받은 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울던 밤, 예상치 못한 은혜로 살림이 이어지던 날,
그 모든 날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우리는 자기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기억하라. 그분의 손을. 그 구원의 날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 그 손을.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할 때, 미래에 대한 신뢰도 새로워지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믿음의 첫걸음이며, 그 기억이 곧 ‘순종’의 근거가 됩니다.
📖 단어 연구
❖ 배반하다 (מָרוּ / maru)
✦ 뜻과 의미
‘마루’는 히브리어 동사 ‘מָרָה’(마라)의 형태로, 거역하다, 반역하다, 불순종하다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권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대적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40절에서 “그들이 광야에서 그를 거역하며”는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인 반역을 나타냅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불순종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뜨린 대표적인 행위를 상징합니다.
✦ 신학적 의미
‘마루’는 성경 전반에서 언약적 불성실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도 이 단어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른 길을 택한 이스라엘의 영적 고집을 강조할 때 쓰입니다(민 20:24). 이는 곧 인간의 죄성과 자기중심성을 보여주며,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참된 회개와 순종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 기억하다(זָכַר / zakar)
✦ 뜻과 의미
히브리어 ‘자카르’는 기억하다, 되새기다, 언급하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머리로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반응하는 기억을 말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42절 “그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고”는 단순한 건망이 아닌, 고의적인 망각과 무관심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들과 그분의 성품에 대한 의도적 무시로서, 곧 하나님을 삶에서 지워버리는 행위입니다.
✦ 신학적 의미
‘기억하다’는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건들(출애굽, 언약, 심판)**을 신실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이 곧 현재의 삶과 순종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시고(창 8:1), 백성도 마땅히 그분의 행사를 기억해야 합니다(신 6:12). 기억은 곧 믿음의 뿌리입니다.
❖ 손 (יָד / yad)
✦ 뜻과 의미
히브리어 ‘야드’는 문자적으로 손, 힘, 권세, 주권을 의미합니다. 매우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문맥에 따라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권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42절에서 “그의 손”은 단지 신체 부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모든 구원의 능력을 총칭합니다. 이 손은 이집트에서의 구원, 홍해의 기적, 광야의 공급 등 하나님의 능동적인 역사하심을 드러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창조, 보호, 심판, 구속의 도구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구원의 손(시 118:16)이며, 주의 손은 나를 붙드신다는 고백(시 139:10)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 그리고 권능을 신뢰하라는 믿음의 상징입니다.
❖ 이적 (אוֹת / ’ot)
✦ 뜻과 의미
‘오트’는 히브리어로 표적, 기적, 징조를 뜻합니다. 단순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표시(sign)**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43절 “그가 애굽에서 그의 이적을”이라는 표현에서 ‘이적’은 단지 마술이나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계시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로와 애굽을 향한 심판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낸 사인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에서의 ‘이적’은 항상 하나님 중심적이며, 목적이 분명합니다.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음을 견고히 하는 통로입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기적은 ‘표적’(σημεῖον, sēmeion)으로 불리며,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요 2:11).
❖ 넘기시다 / 건네주시다 (נָתַן / natan)
✦ 뜻과 의미
‘나탄’은 히브리어 동사로 주다, 넘기다, 위임하다, 배치하다의 뜻을 가집니다. 성경 전체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48절 “그들의 가축은 우박에 그들의 짐승은 번갯불에 넘기셨도다”에서 ‘넘기셨도다’는 단순히 주었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내어주신 것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 행위이자,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시겠다는 경고입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께서 ‘넘기신다’는 것은 구속사적으로 심판과 유기, 혹은 은혜의 위탁을 의미합니다. 롬 1:24에서도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그들의 정욕대로 내어버려 두셨다고 표현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단어는 은혜의 통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시 115:16).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어떤 일이 맡겨질 때, 그것은 반드시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 절별 주해
❖ 40절 │ 반복된 반역의 현실
“그들이 광야에서 그를 거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하였도다”
이 구절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를 반복적으로 시험한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지적하는 시인의 깊은 탄식입니다. 여기서 ‘거역하며’(히. מָרָה, 마라)는 단순한 반항을 넘어, 하나님의 권위 자체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대적하는 적극적인 저항의 태도입니다. 이 단어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을 때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사건과 연결됩니다(출 15:23–24).
‘슬프시게 하였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는 구절로, 하나님께서 단순히 율법적 기준을 들이대시는 존재가 아니라, 언약 백성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반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광야’와 ‘사막’이라는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 인생이 하나님의 공급과 인도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없이 불평하고 불순종했던 환경을 상기시킵니다.
이 구절은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모르거나 잊은 백성이 어떻게 반복적으로 같은 죄를 되풀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단순히 인간의 행동 때문에 생긴 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택한 백성의 배신 앞에서 느끼는 고통입니다.
❖ 41절 │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모독
“거듭 하나님을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하게 하였도다”
‘거듭’이라는 단어는 이스라엘의 죄가 단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임을 나타냅니다. ‘시험하다’(히. נָסָה, 나싸)는 출애굽 사건에서 마사와 므리바와 같은 장소들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요구하며 “우리 중에 여호와가 계신가 아닌가?”(출 17:7)라고 질문했던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이것은 신뢰가 아닌 의심, 감사가 아닌 평가의 자세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언약의 주체로서, 완전히 구별된 존재로 묘사하는 칭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를 그냥 넘기실 수 없고, 동시에 그 거룩하심으로 인해 백성에게 반드시 정의와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다’는 것은 단순한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언약 관계 자체를 훼손한 심각한 불경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여기서 백성들이 단순히 행위로만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믿음의 결핍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죄를 범했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앙을 흉내내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을 의심하는 현대 신자들에게도 주는 경고입니다.
❖ 42절 │ 은혜의 손길을 잊다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기억하지 아니하며’가 두 번 반복되는 이 구조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의도적 무시, 즉 ‘영적 건망증’을 지적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이 단지 감정의 문제나 순간적인 유혹이 아니라,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근본적인 신앙 붕괴의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권능의 손’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큰 기적을 행하시며 그 백성을 구출하신 일련의 사건들을 요약하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6장과 15장에서도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구속의 능력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구원의 날’조차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과거를 잊은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외면하는 자세입니다. 결국 감사는 기억에서 나오고, 불순종은 잊음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깊이 새기게 하는 구절입니다.
❖ 43–51절 │ 이집트의 재앙을 망각한 백성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의 표적들과 소안 들에서 그의 이적들을 나타내사…”
43절부터 51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 일부를 선별하여 회고합니다. ‘소안’은 애굽 북동부에 위치한 고센 지방의 정치 중심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기적들은 단순한 기상 이변이나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능력을 명백히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이 재앙들 — 물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와 파리 떼, 우박과 메뚜기, 장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 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기 위해 민족 전체를 흔드신 사건입니다. 특히 51절의 ‘애굽에서 모든 장자를 치셨으며’는 그 절정으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드러낸 대목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단지 경험으로 소비했을 뿐, 신앙으로 연결하지 못했다는 비극을 드러냅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 안에 반복됩니다.
❖ 52–53절 │ 인도하시는 목자
“그가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재앙의 심판이 끝나고, 시인은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노래합니다. ‘양 같이 인도하셨다’는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가장 부드럽게 묘사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이는 시편 23편의 목자 이미지와도 긴밀히 연결되며, 하나님은 단순한 구출자가 아닌 동행자이자 보호자이심을 보여줍니다.
‘떼로 인도하시고’는 단체로 행진하며 보호받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이 구절은 단지 ‘물리적 이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생 전체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동행을 말합니다. 더구나 그 인도는 ‘두려움 없이’, ‘적들을 삼키는 바다의 덮음’을 경험하며 이루어졌기에 더욱 위대한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함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본질입니다.
❖ 54–55절 │ 약속의 땅, 선물로 받은 기업
“그들을 그의 거룩한 영역, 그의 오른손이 얻으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은 단순히 애굽에서 백성을 구출하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거룩한 영역’(히. 나헬라)은 하나님이 거처 삼으신 장소이며, ‘오른손이 얻으신 산’은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신 역사적 사건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이유는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들의 지파대로 기업을 분배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구원이 단지 영적인 경험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터전과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은혜의 최종 장면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욕심을 따르는 불순종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은혜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붙들게 합니다.
📖 묵상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쉽게 잊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 속에서도 시인은 결국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기억하라!'
시인은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기억하지 못한 죄’를 반복해서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놀라운 구원으로 그들을 이끄셨건만, 그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거역했고, 거듭 시험하며, 그분을 슬프게 했습니다(40–41절).
그토록 큰 권능으로 구해주셨던 날, 이집트의 열 재앙과 하나님의 기적들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그들은 마치 한 번도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42–51절).
시인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고발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감사할 줄 모르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불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결코 멈춘 적이 없는데(52–53절), 사람은 그 인도를 너무나 빨리 무시하고, 또다시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돌이켜봅니다.
나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기도하던 시절, 눈물로 응답을 기다리던 밤, 작게나마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던 수많은 순간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오늘 내 삶의 작고 큰 불편함과 고민 속에서, 그 은혜를 까맣게 잊은 채 또다시 원망과 걱정 속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이스라엘의 실패가 나의 거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기억 속에서 하나님이 흐려지지 않도록, 오늘도 의도적으로 그분의 행하신 일을 되새기기를 원합니다.
감사함으로 기억하고, 기억함으로 순종하는 삶, 그것이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 말씀 _ "잊지 말라, 그 손의 능력을"
서론 │ “가장 위험한 망각, 은혜를 잊는 것”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또 수많은 일들을 잊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망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작은 호의는 쉽게 기억하면서도, 내 삶을 통째로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손길은 너무도 쉽게 잊혀지곤 합니다. 신앙생활이 길어질수록, 기도의 응답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은혜를 ‘기억’이 아니라 ‘배경’으로만 여기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시편 78편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온 영적 실패의 역사를 되짚으며, 그 속에 담긴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거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장 깊은 문제를 조명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우상 숭배도, 육체의 욕망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은 것, 은혜를 잊은 마음이었습니다.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억을 ‘삶의 방향성’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기억하지 못한 백성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게 되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또다시 불순종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반드시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는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기억’의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 손의 능력은 여전히 우리 삶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붙드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ㅣ기억을 잃은 자들의 길, 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은혜의 여정
1. 기억상실은 불순종의 시작입니다. (40–42절)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듭 거역했습니다. 40절은 “그들이 광야에서 그를 거역하며 자주 그를 슬프게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이 구절은 단지 반복적인 불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고백입니다.
왜 이들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슬프게 했을까요? 42절이 명확히 말합니다.
“그의 권능의 날과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강력한 손, 그 권능의 날을 잊었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 앞에 믿음 대신 원망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은혜를 잊으면, 현재의 문제만 보입니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심이 들어오고, 그 의심은 불신으로, 불신은 곧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응답을 경험했음에도 다시 무너질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수없이 체험했음에도 쉽게 낙심할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기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43–51절)
시인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열 가지 재앙을 자세히 상기시킵니다. 피, 개구리, 파리, 우박, 메뚜기 등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과 두려움을 안겼던 일들을 다시 펼쳐 보입니다(43–51절).
하지만 이 모든 재앙은 단지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맹렬한 노염 곧 진노와 분노와 환난과 재앙의 천사를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49절)
이 표현은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하는 자를 심판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위한 구원의 통로를 여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이 엄청난 사건들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새겨진 살아 있는 간증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기억할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3. 기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길을 여십니다. (52–55절)
시인은 본문 후반에서, 그런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장면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양 떼처럼 이끄시며, 광야의 밤에 불빛으로 인도하셨고(52–53절),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이셨습니다(54–55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기억하지 않아도, 여전히 은혜를 멈추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도를 진짜로 누리며 살아가는 자는, 바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순종하게 되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믿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불편함에 매여 그분의 손길을 부인할 것인가.
결론 │ “기억은 믿음의 첫걸음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78편은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경고입니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그 실패를 교훈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기억’하는 일, 그 기억이 신앙을 새롭게 하고, 순종을 이끌며, 감사를 회복하게 합니다.
삶이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과거의 은혜를 선명히 떠올려야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다시 붙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 하나님이 내 삶에 행하신 일을 일부러라도 기억해보십시오.
감사노트를 써도 좋고, 기도의 제목들을 돌아보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 위에 다시 믿음의 길을 세워가십시오.
“그의 권능의 날과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42절)
이 구절은 슬픈 고발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기억을 통해 우리를 믿음으로 부르십니다.
그 기억이 회복될 때, 순종도, 감사도, 믿음도 다시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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