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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시편ㅣ2025년

[생명의 삶] 시편 78편 32절-39절 _ 2025. 6. 22(주일)

by LogosLab Steward 2025. 6. 22.

❖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배포]를 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

32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 
34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 본문 배경

❖ 개요

 

시편 78편은 아삽의 마스길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역사를 회고하며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 그리고 인간의 반복되는 불순종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시입니다. 전체 시편은 72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9절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역사 회고는 에브라임 지파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구속 역사, 그리고 광야에서의 반역, 가나안 정복, 다윗의 세움으로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중 오늘 본문의 32–39절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며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살아남았던 사건들을 요약합니다. 인간의 거짓된 회개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교차되어 나타나며,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깊이 묵상하게 하는 중심 구간입니다.


❖ 역사적 배경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의 방황기에 해당합니다(출애굽기–민수기).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여러 차례 하나님께 불평하고 반역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출 16장, 민 11장), 물이 없음에 대한 불평(출 17장, 민 20장), 금송아지 사건(출 32장) 등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도 나타난 불순종의 역사입니다.

특히 본문은 민수기 11장에서 “고기 달라”고 울부짖었던 사건과,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푸신 내용을 요약하여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 문화적 배경

 

이스라엘의 고대 근동 문화에서 왕과 신의 관계, 혹은 신탁을 통한 인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고대 근동 민족들 사이에서도 전쟁과 질병, 기근 등의 고난을 신의 분노로 여겼고, 그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사와 회개, 금식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언약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사는 삶이 요구되었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저버릴 때마다 하나님의 진노와 은혜가 교차하여 나타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민족적 정체성을 출애굽 사건광야 생활에서 비롯된 구속사 중심의 역사 인식으로 형성했기에, 이 기억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하는 신앙의 거울이었습니다.


❖ 신학적 배경

 

이 본문은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성품이 대조되는 강한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순종, 거짓된 회개, 거짓 마음이라는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이, 다른 한편으로는 긍휼, 용서, 오래 참으심이라는 하나님의 자비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34–39절).

이 구조는 죄와 은혜의 대조, 심판과 용서의 순환, 거짓된 외적 회개와 내적 진실의 부재 등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구속사적 흐름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를 알고 계시지만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진노를 돌이키셨다”고 말씀합니다(38절). 이 말씀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날 하나님의 용서와 대속의 은혜를 예고하는 구약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 본문 요약

시편 78편 32–39절은 인간의 고집스러운 불순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극명하게 대조하며 보여줍니다. 앞선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크신 기적과 심판, 그리고 은혜의 역사들이 언급된 데 이어, 이 본문은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다시금 고발하듯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재앙 앞에서도 여전히 죄를 거듭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32절). 믿음의 반응을 기대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거듭 무시되었고, 백성의 삶은 그 불순종의 대가로 점차 소멸되어갔습니다. 결국, 그들은 날마다 두려움과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고(33절),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질 때에야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입니다(34절). 그러나 이들의 회개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떠밀린 형식적 태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반석이시라, 구속자이시라 고백했지만(35절), 마음은 그분을 향해 굳게 서지 않았고, 언약을 지키려는 충성도 없었습니다(36–37절). 이처럼 위기 앞에서만 드러나는 신앙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진노로 전멸시키지 않으시고, 참으시며 인자하심으로 그들을 대하십니다(38절). 이는 하나님의 성품이 단순한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질이 바람과 같고 허무하다는 것을 아시기에(39절), 그들을 철저히 심판하기보다 자비로 감싸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돌아서고 있는가? 위기에서만 드리는 형식적 신앙은 아닌가? 반복되는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진실하고 온전한 회개와 순종으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일깨워 줍니다.

 


📖 붙잡는 말씀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이 한 구절은 시편 78편 전체의 분위기를 뒤집는 결정적인 반전의 선언입니다. 앞선 절들에서 이스라엘의 반복된 불순종과 형식적 회개, 하나님의 심판적 개입이 연속해서 그려졌다면,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성품이 단지 공의와 징계에 머물지 않음을 선명히 드러냅니다.

 

“그러나(וְהוּא)”라는 히브리어 접속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비를 선택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심(רַחוּם)”으로 죄악을 ‘덮어 주시며’(כִּפֵּר), 이것은 단순히 눈감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리우고 덮으시며 보호하시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라는 표현은, 단 한 번도 아닌 수없이 반복되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참으시며 그 진노를 억제하신다는 놀라운 신적 자제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기준이었다면 수없이 반복된 불순종은 더 이상 기회조차 없었겠지만, 하나님은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 사건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께 입술로는 고백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멀리 떠나 있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진노로 심판하시기보다, 자비로 붙드시며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는 분명합니다.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 앞에 머물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더 이상 ‘형식적인 신앙’이 아닌 ‘진심의 회개’로 나아오라는 부르심입니다.

 


📖 단어 연구

❖ 거짓 (כָּזָב / 카자브)

 

✦ 뜻과 의미

히브리어 “카자브(כָּזָב)“는 ‘거짓’, ‘사기’, ‘헛된 것’을 뜻하며, 진실하지 않음 또는 믿을 수 없음이라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하지 못함이나,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를 묘사할 때도 사용됩니다. 때로는 인간의 말이나 태도가 믿을 수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데 쓰이며, 신뢰를 배신하는 의미가 내포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편 78:36절에서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라는 구절 속 ‘거짓’은, 겉으로는 회개하거나 순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스라엘의 위선을 드러냅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 신학적 의미

‘거짓’은 성경 전반에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파괴하는 핵심 죄악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예레미야서와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나 실상은 헛된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긴 모습을 ‘거짓’으로 표현합니다(렘 7:4, 호 6:4). 신약에서는 위선과 외식이 거짓의 또 다른 형태로 다뤄지며(마 23:28),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리 가운데 행할 것을 강조합니다(요 8:32).


❖ 긍휼 (רַחוּם / 라훔)

 

✦ 뜻과 의미

히브리어 “라훔(רַחוּם)“은 ‘불쌍히 여기다’, ‘동정심을 품다’, ‘극률을 베풀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같은 어근을 가진 “레헴(רֶחֶם)“은 ‘모태’ 또는 ‘자궁’을 의미하는데, 이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갖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사랑과 보호의 감정을 연상시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편 78:38절은 “오직 그는 긍휼하심으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멸시키지 않으시고, 긍휼로 덮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지 감정을 누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 성품에 따라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긍휼은 인간의 죄와 반역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출 34:6). 긍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죄인을 향한 회복과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긍휼의 표현으로 나타납니다(엡 2:4–5). 그리고 이 긍휼을 받은 자는 또 다른 이에게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야 한다고 권면합니다(눅 6:36).


❖ 진노 (אַף / 아프)

 

✦ 뜻과 의미

히브리어 “아프(אַף)”는 원래 ‘코’, ‘얼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지만, 감정의 격렬한 표현으로 확장되어 ‘분노’, ‘진노’의 뜻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히브리 문화권에서는 분노할 때 코를 벌름거리는 모습에서 유래하여, ‘코가 뜨거워진다’는 표현이 진노의 의미로 발전하였습니다. ‘진노하다’는 동사형은 ‘하라(חָרָה)’로, 이는 감정적 분노뿐 아니라 정의롭고 거룩한 분노까지 포괄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편 78:49절에서 하나님은 “맹렬한 진노와 분노와 격노와 재앙 곧 재앙의 사자들을 그들에게 내려 보내셨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죄악과 반복된 불순종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가 불붙는 장면입니다. 감정적 폭발이 아니라, 거룩함으로 인해 반드시 죄를 벌하시는 공의로운 행동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죄에 대한 공의로운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며(롬 1:18),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아짐으로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이 열렸음을 강조합니다(롬 5:9).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노를 대신 감당하신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존재입니다.


❖ 아첨 (פָּתָה / 파타)

 

✦ 뜻과 의미

히브리어 “파타(פָּתָה)”는 본래 ‘유혹하다’, ‘부드럽게 하다’, ‘속이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사람을 달콤한 말이나 태도로 설득하거나 속이는 행위를 지칭할 때 사용되며, 종종 타인을 향한 진실되지 못한 태도를 드러낼 때 쓰입니다. 언어적인 교묘함을 통해 상대의 신뢰를 얻으려는 속셈이 담긴 개념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편 78:36절에서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겉으로는 회개와 순종의 태도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진심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높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겉치레일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아첨은 진실을 가장한 위선의 표현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에서 ‘아첨’은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잠언에서는 “아첨하는 입술은 멸망을 이끈다”(잠 26:28)고 경고하며, 신약에서도 ‘외식’과 ‘위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죄로 언급됩니다(마 23:27–28).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삼상 16:7), 아첨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가장하고 자신을 높이려는 위선의 행위로 간주됩니다.


❖ 마음 (לֵבָב / 레바브)

 

✦ 뜻과 의미

히브리어 “레바브(לֵבָב)”는 ‘마음’, ‘심장’을 의미하는 단어로, 인간 존재의 중심부, 즉 감정, 지성, 의지, 영성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기관으로서의 ‘심장’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결정짓는 핵심 내면을 의미합니다. 동의어로는 “레브(לֵב)”도 사용되며, 거의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편 78:8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을 정하지 아니하고”라고 묘사되며, 이는 그들의 내면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여전히 흔들리고 이기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신앙의 방향성이 없거나, 세속적 이익에 휘둘리는 신앙의 이중성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37절에서도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반복되며, 하나님 앞에서의 내면의 부패와 불성실함이 드러납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 전체에서 ‘마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위치이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외적인 행위보다 중심인 마음을 보십니다(삼상 16:7).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십니다. 신약에서는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강조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 12:2)는 권면은 전인격적 회개와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외적인 순종이 아닌, 내면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순종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 속이다 (כָּזַב / 카자브)

 

✦ 뜻과 의미

히브리어 “카자브(כָּזַב)”는 ‘거짓말하다’, ‘속이다’, ‘믿을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는 타인을 기만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가리키며, 말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 전체에서 나타나는 위선을 포함합니다. 이 단어는 종종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신실하지 못한 태도를 취할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시편 78:36–3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첨하며 그의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은 그에게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충실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표현됩니다. 여기서 ‘거짓을 말하였다(카자브)’는 것은 단순한 말의 오류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진실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향한 태도가 불성실하다는 심각한 영적 상태를 지적합니다. 거짓은 언약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은 거짓을 매우 심각한 죄로 다루며, ‘거짓의 아비’로 사탄이 묘사될 정도로(요 8:44), 진리이신 하나님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계 14:5)로 살아가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진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 14:6).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은 진실하고 정직한 태도로 살아야 하며, 거짓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위협이 됩니다.


📖 절별 주해

❖ 32절 │ 징계 속에서도 돌이키지 않는 완고함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절은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완고함을 고발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등 이전에 베푸신 수많은 기적과 또한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구체적인 심판 사건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때마다 징계하시고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이러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전히 죄를 짓고"라는 표현은 그들의 죄가 단순한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반역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불신앙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즉, 머리로는 알았으나 마음으로 믿지 않았던 그들의 불신앙적 태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 33절 │ 인생의 덧없음과 영적 무감각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가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방식 중 하나는 인생의 의미를 박탈하는 것이었습니다. "헛되이 가게 하시며"는 마치 목적 없이 떠도는 삶처럼,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넘어,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누려야 할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상실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는 외부의 위협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내적인 불안과 미래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징계는 단순히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영적으로 공허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지를 깨닫게 하여 회개로 이끌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 34절 │ 죽음을 앞두고 찾는 회개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은 징계가 극에 달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죽이실 때"라는 표현은 그들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회개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회개라기보다는, 절박한 위기 앞에서 생존을 위한 반응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통과 시련이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꺾고, 자신을 의지하던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완전한 회개일지라도 이를 통해 그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 35절 │ 기억하는 신앙의 회복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견고한 피난처이자 변함없는 보호자이심을 의미하는 '반석'이시며, 자신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속량하고 구원하시는 '구속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지, 자신들의 삶의 진정한 기초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기억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진정한 신앙 회복의 시작이 바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올바로 '기억'하고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함을 강조합니다.


❖ 36절 │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분리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회복은 안타깝게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절은 그들의 회개가 외형적인 고백에 그쳤음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아첨하며"는 진심 없이 겉으로만 존경하는 척하거나 환심을 사려는 태도를, "거짓을 말하였으니"는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처럼 꾸미는 위선을 지적합니다. 이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진정한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진정한 회개는 외적인 행위나 고백을 넘어선 내면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함을 분명히 합니다.


❖ 37절 │ 변하지 않는 마음, 불성실한 언약

“그들의 마음은 그에게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절은 36절의 내용을 보충하며, 이스라엘의 외식적인 신앙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힙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에게 정함이 없으며"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굳건히 고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즉, 상황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도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를 반복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순히 지식적인 동의나 형식적인 의례를 넘어, 마음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실함언약에 대한 충성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들의 불성실함이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반복적으로 불러온 핵심적인 이유가 됩니다.


❖ 38절 │ 하나님의 인자와 용서의 결정

“오직 그는 긍휼하심으로 죄악을 덮어주시어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노를 다 쏟지 아니하셨으니”

 

이 절은 앞선 인간의 불순종과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을 드러내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오직 그는"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덮어주시는 긍휼을 베푸셨는데, 이는 죄를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없애버리는 속죄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들이 마땅히 멸망해야 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지 아니하시고",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모든 분노를 다 쏟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보다 더 크고 깊은 무한한 자비와 인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철저히 심판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본성인 사랑과 긍휼 때문에 진노를 절제하십니다.


❖ 39절 │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그는 그들이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향해 긍휼을 베푸신 궁극적인 이유는 인간의 본질적인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육체이며"는 인간이 피조물로서 지닌 유한성, 연약함, 죄악에 쉽게 노출되는 본성을 상징합니다. 또한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은 인간 생명의 덧없음, 일시적임,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취약성을 강조합니다. 바람이 왔다 사라지듯이 인간의 삶 역시 잠깐이며,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와 부족함을 기억하시기에, 그들의 반복적인 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진노를 쏟아붓지 않으시고 자비와 인내로 대하십니다. 이 구절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이해와 긍휼, 그리고 인격적인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사람은 참 쉽게 잊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던 날의 기쁨도, 절망 가운데서 건지심을 경험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집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모습 가운데 있던 안타까운 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길을 봤음에도, 그분의 마음을 오해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백성들. 그들의 모습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불평과 원망, 반복되는 죄, 그리고 금세 식어버리는 마음.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입니다. 분노로 다스리시지 않고, 자주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말합니다. 매번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도, 하나님은 그 완고한 마음을 꺾으려 드시기보다 다시 기다리고, 다시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그들이 육체뿐임을 기억하심이니,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 같음이라.” 위로하십니다. 이 구절은 참 부드럽고도 먹먹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존재인지, 어떤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흔들리는 존재인지 아십니다. 그래서 완전히 밀어내지 않으십니다. 대신, 품으십니다.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잘못했기에 등을 돌리시는 분이 아니라, 잘못했기에 더 간절히 품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혹시 요즘, 마음속에 죄책감이 가득하신가요? 기도해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침묵 속에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 앞에 잠시 멈춰 서보세요.

하나님의 분노보다 더 크신 그 긍휼 앞에, 우리의 마음을 다시 내려놓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말씀 _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서론 │ 하나님을 아프게 한 사람들, 바로 우리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전능하시기에 고통도, 슬픔도 느끼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마음이 상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반복된 불순종과 형식적인 회개, 진심 없는 외침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도 이렇게 슬퍼하셔야 했을까요?
왜 전능하신 분이 우리로 인해 아파하셔야 할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단순한 ‘계약’으로 보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사랑을 너무 쉽게 잊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고, 구원을 체험하고도 돌아섰으며, 은혜를 누리고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닫았습니다.


오늘 시편 78편의 중반부는 바로 그들의 영적 냉소, 그리고 하나님의 상한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 역시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씀 앞에서 솔직히 물어야 할 시간입니다.


본론ㅣ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잊고 흔들리고 사랑받는 우리

 

1.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2–33절)

 

“이 모든 일을 보고도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 가운데 보내게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출애굽의 강력한 손, 광야의 만나,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러나 그들의 불신앙은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반복되어도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적을 봐도 믿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자기 욕심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시간을 ‘헛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채, 의미 없는 반복 속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작 마음이 변하지 않은 적이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 역시 헛된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 형식적인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34–37절)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마음이 그에게 정함이 없고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술수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정직함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입술의 회개’였을 뿐, 삶의 방향은 여전히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간구는 하나님께 아첨으로 들렸고, 거짓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만 간절하게 기도하고, 평안하면 하나님을 잊는 습관적인 패턴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이 아니라, 그 눈물 뒤에 담긴 마음을 보십니다.

눈물은 누구나 흘릴 수 있지만, 진짜 회개는 삶을 바꾸는 결정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38–39절)

 

“오직 그는 긍휼하심으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가장 감동적인 구절이 이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형식적인 회개, 거짓된 태도, 반복된 불순종을 다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진노를 거두셨고, 긍휼로 덮으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허약함과 일시적 존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얼마나 자주 잊는 존재인지를 아시기에, 진노보다 긍휼을 선택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우리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자비와 은혜로 대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붙들고, 여전히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결론 │ 가장 위대한 인내, 가장 깊은 사랑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기록하고 있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하였기에 슬퍼하셨고, 슬퍼하셨기에 진노하셨고, 진노하셨음에도 결국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

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요?

 

회개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결단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기억하십시오.

그 인내는 회개의 자리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초대입니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그분의 사랑 앞에 머무르십시오.

 

우리의 거듭된 불순종에도 여전히 자비를 택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오늘도 그 사랑 안에서 회개하며, 다시 믿음으로 걸어가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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