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 [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분],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
개역개정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1 And He began to speak to them in parables: “A man planted a vineyard and put a wall around it, and dug a vat under the wine press and built a tower, and rented it out to vine-growers and went on a journey.
2 “At the harvest time he sent a slave to the vine-growers, in order to receive some of the produce of the vineyard from the vine-growers.
3 “They took him, and beat him and sent him away empty-handed.
4 “Again he sent them another slave, and they wounded him in the head, and treated him shamefully.
5 “And he sent another, and that one they killed; and so with many others, beating some and killing others.
6 “He had one more to send, a beloved son; he sent him last of all to them, saying, ‘They will respect my son.’
7 “But those vine-growers said to one another,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8 “They took him, and killed him and threw him out of the vineyard.
9 “What will the owner of the vineyard do? He will come and destroy the vine-growers, and will give the vineyard to others.
10 “Have you not even read this Scripture:
‘The stone which the builders rejected,
This became the chief corner stone;
11 This came about from the Lord,
And it is marvelous in our eyes’?”
12 And they were seeking to seize Him, and yet they feared the people, for they understood that He spoke the parable against them. And so they left Him and went away.
📖 들어가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고난주간의 첫 날, 주님께서 들려주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 앞에 조용히 머뭅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나 깊고 절절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거부했고,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 고통의 역사가, 오늘 저의 마음 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하소서.
주님,
저는 주님의 은혜를 받은 포도원지기이지만,
그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주님의 소리를 무시하며 살 때가 많았습니다.
당신의 것이라고 알면서도, 마치 내 삶의 주인이 나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보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더 앞선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거듭된 기회와 인내,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들을 보내시는 그 사랑을 깊이 느낍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지 못했던 저의 무딘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열매 없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 회개의 열매, 순종의 열매임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제 안의 뿌리 깊은 교만과 무관심이 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제 마음 중심에 다시 새겨지게 하소서.
오늘도 말씀 앞에 무릎 꿇으며,
주님께서 찾으시는 열매 맺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배경
1. 역사적 배경
마가복음 12장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 곧 ‘고난주간’에 해당하는 시점에 기록된 장면입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며, 시기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직후이며(막 11:1-11),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막 11:15-18) 이후입니다.
이 당시 유대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유대 백성은 정치적 억압과 무거운 세금,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 속에서 메시아적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종교·정치·사회·경제적 중심지로서 유대 민족의 정체성과 권력이 집약된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에서 연이은 논쟁을 통해 유대 지도자들—곧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막 11:27)—과 정면으로 맞섭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도전을 받고 있음을 감지하며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이 비유는 바로 그 갈등의 한가운데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2. 문화적 배경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포도원 비유는 구약의 이사야 5장 1-7절의 ‘포도원의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가꾸신 포도원으로 묘사되며, 이 포도원을 돌보는 농부들은 하나님의 뜻을 맡은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원은 매우 친숙한 문화적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소작농 제도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지주는 포도원을 세우고 타지로 떠나 있는 동안, 소작농들에게 경작과 수확을 맡기고 정해진 시기에 열매를 받는 계약 구조였습니다. 본문의 비유에서도 지주는 멀리 떠난 주인이며, 농부들은 이 포도원의 관리자인 셈입니다.
비유 속 종들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 위해 보냄받은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구약 역사 내내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에 의해 거절당하고, 핍박당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아들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결정적 상징입니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적 교훈을 넘어서, 유대 역사의 전체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인내와 심판을 동시에 드러내십니다. 청중은 누구보다도 이 상징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 비유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3. 신학적 배경
신학적으로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은 중심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Ⅰ.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선지자들을 반복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박해하고 거절했습니다. 그 절정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사건, 곧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Ⅱ.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심판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아들을 보내지만, 그들은 아들을 죽이고 유산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자기 입으로 예언하신 것이며, 동시에 종교 지도자들의 계획을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Ⅲ.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는 말씀(시 118:22)은, 예수님께서 거절당했지만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는 반석이자 중심이 되시는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구속사는 사람의 손에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드러냅니다.
Ⅳ.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주인
포도원은 악한 농부들에게서 빼앗겨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이제 유대인들만이 아닌 이방인들까지 포함된 새로운 공동체로 확장될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이 본문은 단지 한 편의 비유를 넘어서, 유대 사회의 위선을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구속사의 전환점을 예고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드러내는 깊이 있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복음을 거절하거나 거스르는 죄에 대한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본문입니다.
📖 본문요약
1-2절 │ 포도원과 종의 비유, 하나님의 은혜와 기대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을 시작하시며,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과 망대를 세운 뒤 농부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다고 하십니다. 이어 때가 되자 소출을 받기 위해 종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이사야 5장 1-7절의 포도원 비유를 연상케 하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은혜의 조건을 갖추어 주시고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구속사적 맥락이 깔려 있습니다. ‘때가 이르매’란 표현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반복되었음을 시사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되 방임하지 않으시며, 열매 맺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부름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응답과 책임이 따릅니다.
3-5절 │ 종을 거절한 농부들, 거절당한 하나님의 부르심
농부들은 보냄 받은 종들을 때리고, 상해를 입히며, 죽이기까지 합니다. 주인은 또 다른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동일하게 거절하고 폭력을 더합니다. 여기서 종들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반복적으로 거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폭력의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내하며 그 백성을 기다리셨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완고함과 악함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시지만, 인간의 거절은 죄로 누적되어 결국 심판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심판의 유예이지, 거절의 면죄부가 아닙니다.
6-8절 │ 아들까지 죽인 자들, 하나님의 마지막 선물의 거절
마침내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는 기대와 함께 아들을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사건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아들이 상속자임을 알고, 그를 죽이고 유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예언하는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탐욕과 종교 권력의 결탁으로 인해 일어난 일임을 드러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제거하는 것은 단순한 반대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자기 뜻대로 찢어놓으려는 죄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죄악 한복판에서 ‘머릿돌’로 거부당하셨습니다.
9절 │ 심판의 선언과 포도원의 주인 교체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며,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유대 지도자들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옮겨갈 것이라는 예언이며, 이방인과 새 언약 백성(교회)에게 그 사명이 이전될 것을 보여줍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자들에게 임하며, 그로 인해 복음은 새로운 통로를 통해 흘러가게 됩니다.
➡ 하나님은 그분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를 버리시며, 새로운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십니다. 사명은 특권이지만, 동시에 거절될 수도 있는 위탁입니다.
10-11절 │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다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23절을 인용하시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거절당하였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구속사의 중심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판단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며, 인간이 무가치하게 여긴 것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 우리가 버린 것, 무시한 것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판단과 기대를 넘어서, 구원의 유일한 토대가 되십니다.
12절 │ 거절당한 진리, 도전받은 권위
이 비유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을 가리킨 말씀임을 알고 예수를 죽이려 하나, 무리를 두려워하여 물러갑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거절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종교 시스템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 진리는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이에게는 구원이 임하며, 진리를 제거하려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2장 1-12절은 단순한 교훈적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 전체를 요약한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 종들은 선지자,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며, 그들의 거절은 결국 십자가의 길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거절조차도 구원의 시작으로 삼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절당하셨지만,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비유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나라를 위탁받은 청지기로서의 삶을 다시금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 붙잡는 말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 막 12:10–1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포도원 비유를 마무리하시며 인용하신 시편 118편의 구절입니다. 본문 전체를 관통하는 결정적인 선언이자,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강력하게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여겨 버린 그분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되셨다는 이 반전의 선언은, 복음의 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과 위로를 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버림받은 듯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실패와 좌절, 오해와 상처,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쓰임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버림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사람의 판단과 무가치함을 전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와 낮아짐을 새로운 건축의 기초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낮아지고 깨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버려진 돌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서는 머릿돌로 다시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놀라운 반전이며, 그 일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기에 더욱 신비롭고 감사한 일입니다.
❖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를 붙들어야 합니다.
❖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하나님은 지금도 무너진 자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의 손길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이 말씀은 고난의 길을 걷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고난주간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버림받은 돌, 그러나 머릿돌이 되신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 우리의 삶도, 주님의 은혜로 인해 결국 “우리 눈에 놀랍도다”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핵심단어 연구
1. 포도원 (ἀμπελών, ampelōn)
▣ 뜻과 의미
헬라어 ampelōn은 “포도밭” 또는 “포도원이 있는 땅”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농업적 장소를 넘어서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자주 등장합니다(사 5:1-7, 시 80:8-16).
▣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은 비유로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새를 주고 타국에 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포도원은 명백히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며,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은혜의 환경을 나타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농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계층(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을 지칭합니다.
▣ 신학적 의미
포도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겨진 은혜의 자리이자 책임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실 뿐 아니라, 그에 따른 순종과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포도원을 맡은 자들이 자기 유익만을 위해 그 자리를 악용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2. 농부들 (γεωργός, geōrgos)
▣ 뜻과 의미
Geōrgos는 “땅을 경작하는 자”라는 뜻으로, 농부 혹은 포도원 일꾼을 가리킵니다. 헬라어 구성상 gē(땅)와 ergon (일, 일하다)에서 유래된 복합어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이 농부들은 포도원의 주인이 아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는 관리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명을 잊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심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 박은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상징합니다.
▣ 신학적 의미
농부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에 맞는 자리와 사명을 맡기시되, 그것이 자신의 소유인 양 여기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자’이지 ‘소유자’가 아닙니다. 신실한 청지기 정신은 오늘날 모든 신자에게 주어지는 부르심이자 책임입니다(고전 4:1-2).
3. 종들 (δοῦλος, doulos)
▣ 뜻과 의미
Doulos는 노예 또는 종을 뜻하며, 헬라 문화권에서는 절대적 종속 상태에 있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자주 예언자, 사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에서는 포도원 주인이 소출을 받기 위해 보낸 여러 종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반복적으로 구타당하고 모욕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구약 시대부터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박해받았던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시대마다 자신의 뜻을 전하는 ‘종들’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완악함은 그 종들을 거부하고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죄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이 종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합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4. 아들 (υἱός, huios)
▣ 뜻과 의미
Huios는 “아들”을 뜻하며, 유산을 잇는 자, 주인의 뜻을 대표하는 자로서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반복해서 등장하며, 이는 단순한 육적인 출생을 넘어서 하나님의 본질과 권위를 함께 지닌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농부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진 ‘아들’은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실 것을 예언하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 신학적 의미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보냄을 받은 ‘아들’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거부는 단지 지도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죄에 빠진 인간 본성의 문제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까지 내려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갈라지게 됩니다.
5. 모퉁이의 머릿돌 (κεφαλὴν γωνίας, kephalēn gōnias)
▣ 뜻과 의미
헬라어 kephalēn은 ‘머리’ 또는 ‘머릿돌’, gōnias는 ‘구석, 모퉁이’를 의미합니다. 이는 건축의 중심축이 되는 돌로, 건물의 구조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유대 전통에서도 성전 건축 시 모퉁이 돌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께서 시편 118편을 인용하시며 자신이 “버림받았으나 머릿돌이 된 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정점이라는 의미입니다. 건축자(지도자들)는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구속사의 핵심으로 세우셨습니다.
▣ 신학적 의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 곧 교회의 기초이자 중심입니다(엡 2:20).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버림받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거절당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 반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바로 그 머릿돌 위에 서는 것입니다.
📖 절별주해
1절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포도원: 준비된 은혜의 공간
❖ 해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로 시작되는 이 비유는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돌보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주인은 울타리를 두르고, 즙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우는 등 포도원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율법과 성전, 지도자와 예언자들을 통해 철저하게 돌보셨음을 나타냅니다.
농부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다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위임하셨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 신뢰는 책임을 동반한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곧 시험의 장이 됩니다.
❖ 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잘 준비된 포도원’ 같은 삶의 여건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유산, 교회의 공동체, 복음의 진리, 그리고 말씀과 성령—all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관리하며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관리자의 자리에서 소유자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는지, 하나님의 것을 내 뜻대로 이용하려 하지 않았는지 겸손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5절 │ 하나님의 반복된 요청과 인간의 완악함
❖ 해설
때가 되자 주인은 종들을 보내어 소출을 받으려 합니다. 종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 종들을 때리고, 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비유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겪었던 고난과 거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핍박당했고(렘 20:2), 이사야는 전승에 따르면 톱에 켜 죽임당했다고 전해집니다(히 11:37).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 핍박받는 현실은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다른 종을 보내시고… 더 많은 사람을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 적용
우리도 삶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경 말씀, 양심, 성도의 권면, 설교 등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무시했는가, 핑계를 댔는가, 아니면 순종했는가? 하나님의 인내가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회가 있을 때 듣고 돌이키는 순종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6-8절 │ 아들을 향한 배척과 십자가의 그림자
❖ 해설
이제 주인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마가복음 1장 11절에서 세례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과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어, 아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합니다.
농부들은 이 아들을 “상속자”로 알아보고, “죽이자, 그러면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범죄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동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요 11:48-50).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인다는 장면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미리 보여줍니다(히 13:12).
❖ 적용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참으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 아들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복음은 나에게 여전히 ‘존대받는 아들’인가, 아니면 익숙해서 무시되고 있는가?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책임을 가집니다.
9절 │ 심판과 대속: 하나님 나라의 방향 전환
❖ 해설
“포도원 주인이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는 말씀은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선포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 지도자들에서 ‘이방인과 새 공동체’로 넘어간다는 예고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예언은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기독교의 세계 전파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유대 중심의 구원사가 보편적 복음으로 확장되었고,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 적용
하나님은 아무리 특권을 가진 자라도, 열매가 없으면 주님의 나라에서 제외하십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자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들에게 넘기십니다. 교회의 직분, 사명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하기보다, 계속해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는 자에게 맡겨집니다.
10-11절 │ 거절된 돌, 그러나 머릿돌: 복음의 역설
❖ 해설
예수님은 시편 118:22-23을 인용하며 말씀을 이어갑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라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버려진 돌’은 예수님 자신을, ‘머릿돌’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중심축으로 다시 세워지는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사람에게 무가치하게 여겨진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 적용
우리도 종종 자신이 ‘버림받은 돌’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세상의 시선과 다릅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면, 가장 낮은 자도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시느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가치는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12절 │ 진리를 마주한 이들의 반응: 회개 없는 자의 길
❖ 해설
종교 지도자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를 잡으려 합니다. 이것은 진리를 깨닫고도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마음의 표본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여 행동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평가와 지지를 더 의식한 그들의 태도는, 영적 리더십의 부패를 보여줍니다.
❖ 적용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정직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알면서도 체면과 여론을 따라 행동하는 신앙은 결국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믿음 없는 태도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며, 진리는 회개할 때 생명을 낳습니다.
📖 묵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한 농부의 비유’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인간의 반응,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담아낸 강력한 경고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처음 이 비유를 접했을 때, 포도원을 일구고 철저히 준비한 주인의 정성과 기대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를 배반하는 농부들의 행동은 안타깝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점점 더 악해지고, 급기야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이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죄의 본질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 비유 속 ‘포도원’은 이스라엘 공동체였고, ‘농부’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고, 수없이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포도원에서 열매 맺는 삶이 아니라, 그분의 음성을 거절하거나, 복음을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가슴 아픈 대목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가셨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끝내 거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 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예배 중에,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여전히 ‘상속자를 내쫓는’ 자리에 있지 않은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거절당한 돌이 오히려 머릿돌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견고히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거절을 뚫고 역사합니다. 그 거절당한 예수님을 하나님은 다시 살리시고, 높이시고, 우리 믿음의 기초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와 거절 속에 있어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우리는 다시 세움 받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물어옵니다. “너는 지금 어떤 농부로 살고 있는가?” 열매 없는 삶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주인의 뜻을 내 뜻으로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는 자만이 이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맡은 자로서, 우리는 상속자가 오셨을 때 그분을 존대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뜻을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열매 맺지 못했던 과거가 있더라도, 오늘부터 다시 주인의 뜻을 따라 충성하는 삶을 결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말씀 _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다"
서론 │ 아버지의 마음, 아들의 고통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첫날을 맞아 우리가 마주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눈앞에 두시고 하신 비유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한 편의 비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눈물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고통을 담은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포도원 주인이 종들을 보내고 마지막에는 아들을 보내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셨던 선지자들, 그리고 마침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을 비유의 언어로 담아낸 것이지요.
여러분,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는 일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헌신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상처 입을까 염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우리는 조금이나마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 아버지는 단지 염려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이 죽임당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위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 이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몰아내려 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비유를 들려주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지를, 그 사랑이 거절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난주간의 첫날, 우리는 그 사랑의 이야기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그 사랑을 알고도 무뎌진 마음이 있다면, 오늘 다시 깨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십자가로 향하시는 주님의 발걸음 앞에, 우리도 머물러야 할 때입니다.
본론 │ 아들을 보내신 사랑, 거절한 세상
1. 하나님의 참을 수 없는 사랑 – 다시, 또다시 종을 보내심
예수님의 비유는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주인은 하나님, 농부들은 백성들의 지도자들, 그리고 종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했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비유의 첫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오래 참으심을 목격하게 됩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열매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들을 매질하고, 모욕하고, 죽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또다시 다른 종들을 보냅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불합리하게 보일 정도의 반복입니다. 왜 계속해서 종을 보내는 것일까요? 한두 번 거절당했다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참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선지자들이 핍박받고,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선지자를 보내셨고, 그들의 입을 통해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톱에 잘려 죽고, 예레미야는 웅덩이에 던져졌으며, 세례 요한은 참수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죄악과 완악함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한 걸음 더 다가가십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한 번의 기회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양심의 소리를 통해, 환경을 통해 끊임없이 다가오십니다. 오늘도 그분은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다시 기회를 주겠다.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분의 사랑은 단호하고, 지속되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다음 장면, 아들을 보내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2. 마지막 카드 – 아들을 보내심
포도원 주인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를 존대하리라.” 이 구절은 너무도 깊은 아픔과 사랑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주인의 마지막 수단, 마지막 희망, 마지막 카드가 바로 아들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십자가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정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수백 년 동안 선지자를 보내셨고, 그들의 희생을 보셨으며, 마침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희생시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죄 없으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최종 표현, 하늘 아버지의 가슴이 찢어지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 아들을 존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아들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입니다. 여기서 ‘포도원 밖’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 언덕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던 형장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로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그분의 존재를 두려워했으며, 결국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사랑이 거절당할 때’의 슬픔을 봅니다.
이 비유는 단지 예수님의 당시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며, 그분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포기할 이유가 넘치지만, 그분은 다시 다가오시고, 다시 말씀하시며,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3. 사람들의 거절 - 하지만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
사람들은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곳은 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새로운 시작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마지막에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일이라.”
사람들이 버린 돌 – 예수님, 그분이 오히려 건물의 가장 중심이 되는 머릿돌이 되셨다는 선언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실패처럼 보였지만, 그 죽음은 부활의 새벽을 열었습니다. 죄의 절정은 은혜의 시작이 되었고, 죽음의 자리는 영원한 생명의 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그 자리, 우리가 실패했다고 여기는 그 상황,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았던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거절의 자리에서 구원을 이루셨고, 이제 우리 각자의 삶에도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십니다. 우리의 죄는 그분의 은혜를 막지 못합니다. 우리의 거절은 그분의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우리가 끝이라 느낄 때, 하나님은 시작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놀라운 복음이 오늘 고난주간의 첫날,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다시 심겨지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결론 │ 거절당하신 예수,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한 마가복음 12장의 포도원 비유는 단순한 이야기나 교훈을 넘어,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애끓는 사랑의 외침입니다. 이 비유는 단호하고도 부드럽게 우리 심령에 묻습니다.
“내 아들을 보냈건만, 너는 그 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 한 번뿐인 최고의 선물,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고난받으셨고, 멸시당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 고난과 죽음은 우연이 아니었고, 실패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을 향한 세상의 반응은 거절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농부들처럼, 우리도 때로는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것을 불편해하며, 십자가의 은혜보다 이 땅의 열매만을 탐하려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거절과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이후, 하나님은 부활이라는 놀라운 새벽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외친 그 자리를, 하나님은 구원의 시작점으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은 거절당했지만, 은혜는 계속된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자주 무너지고 돌아서지만, 하나님은 그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십니다.
고난주간의 첫날인 오늘, 우리 마음속에서 다시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나는 때로 당신을 밀어내고, 내 뜻대로 살며, 당신의 말씀을 무시하고, 당신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거절당하셨던 그 사랑 앞에, 이제는 머리 숙여 감사로 반응하겠습니다.”
이 한 주간,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다시 감격하며, 우리의 믿음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아들을 거절하는 자가 아니라, 그 사랑에 응답하는 자로, 그 사랑을 전하는 자로 고난주간의 걸음을 함께 걸어가며 부활의 그 날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주님, 거절당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품으신 예수님, 오늘도 그 십자가 앞에 무릎 꿇습니다.
이 땅의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는 그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세상 한가운데서 외면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심지어 무심하게 지나쳤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 가운데 드러난 포도원의 비유는 어쩌면 저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성껏 가꾸신 삶이라는 포도밭, 그 안에 나를 두시고, 사명과 은혜를 맡기셨는데, 저는 그 은혜를 당연히 여겼고, 맡겨진 사명을 욕심으로 바꾸었으며, 보내신 주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말들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마지막 설득이자 최고의 사랑이었던 그 아들을,우리는 또다시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주님, 그 십자가 앞에서 오늘, 다시 멈춰 서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눈물의 골짜기에서 흘린 보혈이 내 마음 가장 깊은 상처까지 닿아 다시 새롭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고난주간이 단지 예전처럼 지나가는 일주일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시간,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는 거룩한 회복의 시간이 되게 해주소서.
자주 넘어지고, 쉽게 식어지고, 깊이 감사하지 못하는 저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면 언제나 받아주시는 주님 품 안에 오늘도 머무르고 싶습니다.
하나님, 다시 사랑하겠습니다. 다시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하겠습니다. 거절당하신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의 삶으로, 말로, 눈물로, 순종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 한 주간, 주님의 걸음마다 동행하게 하시고, 고난의 자리에 서신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하시며, 십자가를 지나 부활의 소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을 체험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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