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개역개정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14 Now it was the day of preparation for the Passover; it was about the bsixth hour. And he *said to the Jews, “Behold, your King!”
15 So they cried out, “Away with Him, away with Him, crucify Him!” Pilate *said to them, “Shall I crucify your King?” The chief priests answered, “We have no king but Caesar.”
16 So he then handed Him over to them to be crucified.
17 They took Jesus, therefore, and He went out, bbearing His own cross, to the place called the Place of a Skull, which is called in Hebrew, Golgotha.
18 There they crucified Him, and with Him two other men, one on either side, and Jesus in between.
19 Pilate also wrote an inscription and put it on the cross. It was written, “JESUS THE NAZARENE, THE KING OF THE JEWS.”
20 Therefore many of the Jews read this inscription, for the place where Jesus was crucified was near the city; and it was written in Hebrew, Latin and in Greek.
21 So the chief priests of the Jews were saying to Pilate, “Do not write, ‘The King of the Jews’; but that He said, ‘I am King of the Jews.’ ”
22 Pilate answered, “What I have written I have written.”
📖 들어가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겪으신 고통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정치적 계산으로 넘긴 모습을 보며
우리도 때때로 진리보다 자신의 유익을 따라 선택했던 순간들을 돌아봅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누구를 따를 것인지
어떤 믿음을 가질 것인지 다시 한번 결단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신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도 주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령님, 이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배경 및 요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신 장면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때는 유월절의 준비일이었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군중들의 압력과 정치적 계산 속에서 그를 넘겨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칭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명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어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이 문구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로 기록되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한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이 문구를 변경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달라고 요청했으나,
빌라도는 이를 거부하며 “내가 쓸 것을 썼다”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려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신 십자가를 직접 지고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직접 메고 처형장까지 가야 했습니다.
이는 극도의 고통을 동반하는 과정이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한 희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참된 왕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권력과 힘이 아닌, 희생과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통치 아래 살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 붙잡는 말씀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v.19)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도구로 삼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을 세상에 선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달라고 요청했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려 했고, 권력자들은 그분을 제거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예수님의 왕 되심을 공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참된 왕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세상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삶에서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진정한 왕이신가요?
빌라도가 비록 정치적 이유로 명패를 달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시선과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핵심단어 연구
왕 (βασιλεύς, basileus)
▣ 뜻, 의미
‘βασιλεύς(basileus)’는 헬라어로 ‘왕’, ‘군주’,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정치적 지도자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헬라 세계에서는 황제나 신적인 존재를 가리킬 때도 쓰였으며,
유대교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메시아 왕국의 통치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요한복음 19:19에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조롱하는 의미로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나타내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될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 신학적 의미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왕’으로 여러 번 언급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권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시는 영원한 왕입니다.
• 영원한 왕: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 왕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계 19:16).
• 겸손한 왕: 세상의 왕들은 군사력과 권력으로 다스리지만,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마 20:28).
• 십자가의 왕: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왕 되심을 드러내셨으며, 이는 자기희생과 사랑의 통치입니다(요 18:36).
십자가 (σταυρός, stauros)
▣ 뜻, 의미
‘σταυρός(stauros)’는 십자가를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원래는 죄인을 처형하는 형벌 도구였으며, 로마 시대에는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사형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단순한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저주의 나무’(신 21:23)로 여겨졌으며,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만이 나무에 달려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저주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 신학적 의미
• 대속의 십자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사 53:5, 갈 3:13).
• 능력의 십자가: 세상은 십자가를 어리석은 것이라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고전 1:18).
• 부활을 향한 십자가: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부활과 영광의 시작이었습니다(빌 2:8-9).
유대인의 왕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Ἰουδαίων, ho basileus tōn Ioudaiōn)
▣ 뜻, 의미
‘유대인의 왕’(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Ἰουδαίων)은 본래 메시아를 가리키는 칭호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사용한 이 표현은 조롱과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며 십자가 위에 명패를 달았습니다(요 19:19).
유대 지도자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달라고 요청했지만,
빌라도는 단호히 “내가 쓸 것을 썼다”라고 했습니다(요 19:22).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신학적 의미
예수님은 단순히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 유대인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왕국을 선포하셨습니다(요 18:36).
• 빌라도는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술을 통해 진리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빌 2:10-11).
• 예수님은 십자가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계 19:16).
해골의 곳 (Γολγοθᾶ, Golgotha)
▣ 뜻, 의미
‘골고다’(Γολγοθᾶ, Golgotha)는 ‘해골의 곳’이라는 뜻입니다.
아람어 ‘굴굴타’에서 유래된 단어로, 유대인들이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였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요 19:17).
이곳은 죄인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장소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구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 신학적 의미
• 저주의 장소에서 구원이 이루어짐: 골고다는 저주의 장소였지만, 그곳에서 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갈 3:13).
•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 예수님은 죄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에서 죽으셨습니다(벧전 2:24).
•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시작: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고전 15:3-4).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σταυρωθήτω, staurōthētō)
▣ 뜻, 의미
‘σταυρωθήτω (staurōthētō)’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형 동사로, 극형을 선고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습니다(요 19:15).
이는 군중 심리와 종교적 질투가 합쳐진 결과였습니다.
▣ 신학적 의미
•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사 53:3-5).
•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고후 5:21).
•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만나는 곳입니다(롬 3:25-26).
📖 절별주해
4절 | 빌라도의 최종 판결과 유월절의 의미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기면서도
마지막까지 조롱하듯 “보라 너희 왕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유월절 준비일’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날짜 설명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월절에는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해방될 때 어린 양의 피로 보호받았던 사건을 기념하는데(출 12장),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순간이 유월절과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요 1:29).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단순한 순교자가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희생양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15절 | “우리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면서,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로마 황제(가이사)를 왕으로 인정합니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하고
사람의 왕을 요구했던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삼상 8:7).
예수님은 참된 메시아 왕이셨지만, 유대인들은 눈앞의 현실과 자신들의 정치적 유익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외면하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게 됩니다.
16-17절 |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넘겨줍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십니다.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들은 보통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가로목을 직접 지고 형장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이는 극도의 수치와 고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장면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 구속의 과정을 상징합니다(사 53:4-5).
이 길은 단순한 처형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며, 우리를 위한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골고다(해골의 곳)는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처형 장소로,
죄인들이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 밖으로 나가셨다는 것은 죄인으로 간주되어 버림받으셨음을 의미하며(히 13:12),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는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상징합니다.
18절 |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로마의 처형 방식이 아니라,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의 고난과 구원의 성취였습니다(사 53:12, 눅 22:37).
십자가의 중앙에 예수님을 달리게 한 것은 로마 군병들의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이 구원의 중심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분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구원의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19-20절 | “유대인의 왕”이라 쓰인 명패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였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표현이었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참된 왕이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명패는 히브리어(유대인들을 위한 언어), 라틴어(로마인들을 위한 공식 언어), 헬라어(당시 세계 공용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조롱조차도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빌라도는 조롱하려 했지만,
그가 쓴 명패는 오히려 예수님의 왕 되심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21-22절 | 유대 지도자들의 항의와 빌라도의 거절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유대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으며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바꾸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명패조차도 바꾸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이러니한 점은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면서도
이 부분만큼은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치적 판단을 넘어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의 왕 되심이 드러나도록 하신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의 명패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히 드러내는 결정적인 선언이 되었고,
이는 온 세상이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알게 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 묵상
빌라도는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였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참된 왕 되심을 선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순교자가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왕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며 오히려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빌라도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군중들은 여론에 휩쓸려 십자가형을 외쳤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신앙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유대 지도자들처럼 신앙적인 열심은 있지만, 정작 예수님을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십자가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신앙은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권력자들 앞에서 조롱당하시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고, 그 십자가가 결국 구원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나의 신앙은 어떤가?
나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내 삶의 선택 속에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고 있는가?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그분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진리를 외면하는 빌라도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살아갈 것인가?
오늘 하루,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왕 되심을 내 삶으로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말씀 _ "십자가에 새겨진 예수님의 왕 되심"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왕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그분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달았지만, 그것은 조롱의 의미였지 신앙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오히려 가이사를 왕으로 섬긴다고 선언하며 예수님을 거부했고,
군중들은 여론에 휩쓸려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외쳤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바라보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열심은 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거부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분위기에 따라 쉽게 신앙이 흔들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 위에서 왕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분을 진정한 왕으로 고백하는 삶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보이는 세 가지 태도
1)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빌라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신문하며 여러 번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요 19:4,6).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유대인 지도자들의 압박과 정치적 부담 속에서 진리를 외면하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겼습니다.
빌라도는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 선택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였지만, 그것이 조롱의 의미였지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빌라도처럼 신앙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불편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진리를 알면서도 세상의 편안함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종교적 열심은 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 지도자들
유대 지도자들은 율법을 지키고, 종교적 열심을 가졌지만 정작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를 왕으로 인정한다고 말하며(요 19:15),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겼습니다.
이는 겉으로는 신앙적인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세상의 권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 행동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적인 행위를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다면, 우리의 삶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3) 여론과 분위기에 휩쓸려 흔들리는 군중들
군중들은 예수님을 “호산나!” 하며 환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며칠 후,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쉽게 흔들렸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종종 군중들의 모습과 닮아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세상에서는 그 신앙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과 상황에 따라 신앙이 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고백하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사람,
유대 지도자들처럼 종교적 열심은 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
그리고 군중처럼 분위기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사람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어떤 태도로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왕의 모습을 보이셨고, 우리에게 그분을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빌라도처럼 머뭇거리거나, 유대 지도자들처럼 종교적인 열심으로만 만족하거나,
군중들처럼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신앙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따르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며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서 왕이신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부인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왜곡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주님, 우리는 종종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평가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담대하게 주님의 진리를 따를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신앙이 유대 지도자들처럼 형식적이지 않게 하옵소서.
겉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보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더 따르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삶의 모든 자리에서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군중들처럼 감정과 분위기에 휩쓸리는 연약한 신앙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흐름과 가치관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변함없는 신앙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붙들어 주시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의 모든 순간이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을 따르는 결단을 하게 하옵소서.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며,
그분의 통치를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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