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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요한복음ㅣ2025년

[생명의 삶] 요한복음 19장 31절-42절 _ 2025. 3. 10(월)

by LogosLab Steward 2025. 3. 9.

📖 본문

개역개정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31 Then the Jews, because it was the day of preparation, so that the bodies would not remain on the cross on the Sabbath (for that Sabbath was a high day), asked Pilate that their legs might be broken, and that they might be taken away. 
32 So the soldiers came, and broke the legs of the first man and of the other who was crucified with Him; 
33 but coming to Jesus, when they saw that He was already dead, they did not break His legs. 
34 But one of the soldiers pierced His side with a spear, and immediately blood and water came out. 
35 And he who has seen has testified, and his testimony is true; and he knows that he is telling the truth, so that you also may believe. 
36 For these things came to pass to fulfill the Scripture, “Not a bone of Him shall be broken.” 
37 And again another Scripture says, “They shall look on Him whom they pierced.” 
38 After these things Joseph of Arimathea, being a disciple of Jesus, but a secret one for fear of the Jews, asked Pilate that he might take away the body of Jesus; and Pilate granted permission. So he came and took away His body. 
39 Nicodemus, who had first come to Him by night, also came, bringing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 hundred pounds weight. 
40 So they took the body of Jesus and bound it in linen wrappings with the spices, as is the burial custom of the Jews. 
41 Now in the place where He was crucified there was a garden, and in the garden a new tomb in which no one had yet been laid. 
42 Therefore because of the Jewish day of preparation, since the tomb was nearby, they laid Jesus there. 

📖 들어가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되심을 묵상하며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구원의 완성을 기억하며,

우리의 마음이 더욱 깊이 주님께 향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피와 물을 흘리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씻으시고 구속하셨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가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음을 더 견고히 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결단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배경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앞두고 시신을 서둘러 수습하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십자가에 그대로 두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신 21:22-23).

그들은 군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이들의 다리를 꺾어 빨리 죽게 하도록 요청합니다.

 

로마에서는 십자가형을 받은 죄인들의 죽음을 빠르게 하기 위해 다리를 부러뜨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르렀을 때, 이미 돌아가신 것을 보고 군인들은 그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온전한 희생이었음을 증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지만, 기존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신앙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그들은 더 이상 숨지 않고, 그분을 위해 공개적으로 행동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아직 아무도 사용한 적 없는 새 무덤에 안치되며, 그분이 다시 살아나실 부활의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장례 절차를 넘어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는 구약의 예언을 이루었으며(출 12:46, 시 34:20, 슥 12:10),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 본문요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다가옴에 따라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시신을 신속히 처리하려 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시체가 안식일에 십자가에 걸려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앞당겼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운명하셨기에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출애굽기 12:46, 시편 34:20)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한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분의 희생을 통해 인류에게 새 생명이 주어졌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고, 물은 우리를 새롭게 하는 성령의 사역을 예표하는 중요한 장면입니다(요한복음 7:38-39).

 

이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여 공개적으로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였고,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니고데모는 많은 향품을 준비해 예수님의 몸에 바르고, 그들은 예수님을 아직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양으로서 단 한 마디의 뼈도 꺾이지 않으셨으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생명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행동은 예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이 어떻게 삶 속에서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 붙잡는 말씀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구속의 완성을 이루신 순간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피와 물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으며,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는 이 놀라운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주님께서 흘리신 피와 물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 핵심단어 연구

창으로 찌르다 (ἐκκεντέω, ekkenteō)


 뜻, 의미

‘ἐκκεντέω’는 “창으로 찌르다, 관통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신체를 깊이 찌르는 행위를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매우 강한 물리적 힘을 의미하며,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군인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찌른 것은 예수님께서 확실히 돌아가셨음을 증명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이며, 부활의 기초가 되는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신학적 의미

스가랴 12:10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입니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볼 것이며…”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필연적인 사건임을 의미합니다.


피와 물 (αἷμα καὶ ὕδωρ, haima kai hydōr)


 뜻, 의미

‘αἷμα’(haima)는 “피”를, ‘ὕδωρ’(hydōr)는 “물”을 의미하며,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본질적인 요소를 나타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의 죽음 이후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은 그분이 완전히 죽으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속죄와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신학적 의미

피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속죄를 의미하며(히 9:22), 물은 성령과 말씀을 통한 정결함과 새 생명을 의미합니다(엡 5:26).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구원의 완성임을 나타냅니다.


세마포 (σινδών, sindōn)


 뜻, 의미

‘σινδών’(sindōn)은 고급 천으로 만든 옷감을 의미하며, 주로 왕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던 고급 직물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할 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사용한 세마포는 예수님의 존귀함을 나타냅니다.


 신학적 의미

예수님의 장례가 급하게 진행되었지만, 단순한 죄인의 장례가 아닌 왕으로서의 장례였음을 강조합니다.


무덤 (μνημεῖον, mnēmeion)


 뜻, 의미

‘μνημεῖον’(mnēmeion)은 “기억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무덤, 묘지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이는 그분이 부활할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구약의 예언(사 53:9)을 성취하는 장면입니다.

 

 신학적 의미

예수님의 무덤은 단순한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부활의 시작점입니다.

죽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 절별주해

31-32절 | 안식일을 앞둔 유대인들의 요청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다가오자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십자가에 달린 이들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앞당기고, 시신을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신명기 21:22-23의 율법에 따라 저주받은 자의 시신이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려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날은 ‘큰 날’(μεγάλη ἡμέρα, megalē hēmera)이라고 표현되는데, 이는 유월절 다음 날인 안식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로마의 십자가형은 보통 며칠 동안 생존할 수도 있는 고통스러운 처형 방식이었으므로, 다리를 꺾는 행위(crurifragium)는 고통을 빠르게 끝내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면 지탱할 힘을 잃고 질식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 잔인한 방법을 요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가장 큰 불법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33-34절 |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군병

 

군인들이 예수님께 와보니 이미 운명하셨기에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군병이 창(λόγχη, logchē)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확실히 죽으셨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구약의 예언 성취 –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12:46, 시편 34:20)는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2. 속죄와 새 생명 – 피는 죄 사함을, 물은 성령과 새 생명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요한복음 7:38-3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단순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생명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35절 | 눈으로 본 증인의 증언

 

요한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을 기록하며,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복음서에서 중요한 신학적 진술로,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신앙을 위한 결정적인 증거임을 의미합니다.


36-37절 | 뼈가 꺾이지 않고 창에 찔린 예수님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것은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의 예표를 완성한 것이며, 옆구리가 찔린 것은 스가랴 12:10의 예언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12:46)

“그들이 자기들이 찌른 자를 바라보리라”(스가랴 12:10)

 

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순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구속의 중심 인물임을 나타냅니다.


38절 |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 있는 신앙 고백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 지도자였지만,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공개적으로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그는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신앙을 드러낸 중요한 순간이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39절 | 니고데모의 등장과 예수님의 장례 준비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던 유대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죽음 이후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장례를 준비하는 데 동참합니다.

 

그는 몰약과 침향(약 34kg)을 가져왔는데, 이는 엄청난 양으로 왕의 장례에 사용될 만큼 많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향한 그의 신앙이 완전히 변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40-42절 | 예수님의 장례와 새 무덤

 

예수님의 장례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향품을 넣고 세마포로 감싸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셔진 무덤은 아직 누구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는데,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결국 존귀하게 장례를 치르시며, 이는 예수님의 신분과 죽음이 단순한 처형이 아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속 사역의 일부였음을 나타냅니다.


📖 묵상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할 때, 우리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완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세상의 억울한 희생자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온전해야 하듯이, 예수님께서도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체적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기고,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얻는다는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요 7:38-39).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행보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랐지만, 두려워 공개적으로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그들은 더 이상 숨어있지 않고 믿음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나는 과연 예수님의 죽음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가요?

 

오늘 우리는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단순히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우리는 세 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첫째, 유대 지도자들처럼 자신을 정당화하며 진리를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정당화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종종 신앙을 명목상으로만 지키면서, 실제로는 세상의 가치관을 따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요?

 

둘째,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고도 두려움에 떠밀려 선택을 미룰 수도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군중과 로마 황제의 눈치를 보며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자리에서 세상의 시선과 현실적인 손해를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결정을 미루지는 않습니까?

 

셋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용기를 내어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까지 숨어 있었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계기로 신앙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우리의 믿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십자가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이 나의 죄를 위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 말씀 _ "십자가의 죽음,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며,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요한복음 19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과 장례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며, 십자가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사랑의 절정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십자가 앞에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했고, 군병들은 단순한 절차로 여겼으며,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오히려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십자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며,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을 붙잡고 있던 사람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이끈 장본인들이었으며, 그분의 죽음을 기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라도를 찾아갑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자들의 시신이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빨리 그들의 다리를 꺾어 죽게 하고 시신을 내리라고 요청합니다(요 19:31).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는 거리낌이 없었던 그들이 정작 율법을 지키는 데에는 철저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이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지만, 정작 내 삶에서 예수님을 외면하는 모습은 없는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도 자신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여겼습니다. 혹시 우리도 신앙을 행위로만 여기면서 진정한 관계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무관심과 타협 속에 살던 사람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담당했던 로마 군인들과 빌라도의 태도도 흥미롭습니다. 군인들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이었고, 그들에게 예수님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해 제비를 뽑으며(요 19:23-24), 그분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 정도로 여겼습니다.

 

빌라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압박에 의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겼습니다. 또한,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달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왕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조롱에 불과했습니다(요 19:19-22).

 

군인들과 빌라도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신앙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가벼이 여기거나, 신앙과 세상의 기대 사이에서 타협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세상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나는 신앙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신앙을 선택할 때마다 세상의 기준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믿음을 실천한 사람들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원이었지만,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이전까지는 두려워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후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요 19:38). 니고데모 역시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이었지만(요 3:1-2), 이제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품을 준비하며 그분을 따르는 신앙을 결단했습니다(요 19:39).

 

이들의 행동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나는 내 신앙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혹시 내 믿음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순간, 많은 제자들은 두려워 도망쳤지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용기를 내어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신앙을 형식적으로만 지키며 예수님을 외면했던 유대 지도자들,

예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무관심하거나 타협했던 군인들과 빌라도,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우리는 이들 중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우리가 삶 속에서 붙잡아야 할 가장 중요한 믿음의 기준입니다.

 

오늘도 십자가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믿음의 결단을 내릴 것인가?

 

이 질문을 깊이 묵상하며, 십자가 앞에서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수치와 고통을 감당하시며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이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형식적으로 지키며, 유대 지도자들처럼 외식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빌라도처럼 신앙을 타협하고, 때로는 군중처럼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십자가 앞에서 다시금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우리도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게 하시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십자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구원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의 유혹과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까지도 주님께 맡겨드리오니,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더욱 굳건한 믿음 위에 서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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