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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요한복음ㅣ2025년

[생명의 삶] 요한복음 20장 1절-10절 _ 2025. 3. 11(화)

by LogosLab Steward 2025. 3. 10.

📖 본문

개역개정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1 Now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Mary Magdalene *came early to the tomb, while it *was still dark, and *saw the stone already taken away from the tomb. 
2 So she *ran and *came to Simon Peter and to the other disciple whom Jesus loved, and *said to them, “They have taken away the Lord out of the tomb, and we do not know where they have laid Him.” 
3 So Peter and the other disciple went forth, and they were going to the tomb. 
4 The two were running together; and the other disciple ran ahead faster than Peter and came to the tomb first; 
5 and stooping and looking in, he *saw the linen wrappings lying there; but he did not go in. 
6 And so Simon Peter also *came, following him, and entered the tomb; and he *saw the linen wrappings lying there, 
7 and the face-cloth which had been on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wrappings, but rolled up in a place by itself. 
8 So the other disciple who had first come to the tomb then also entered, and he saw and believed. 
9 For as yet they did not understand the Scripture, that He must rise again from the dead. 
10 So the disciples went away again to their own homes.

 

📖 들어가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기쁨의 소식을 듣고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던 제자들처럼,

저 역시 때로는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부활의 소망을 새롭게 붙잡기를 원합니다.

 

주님, 때때로 인생의 무덤과 같은 어둠의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주저앉을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살아 계심을 의심하며, 문제 속에 갇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돌아보시고

그러함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말씀이 저의 삶에 깊이 새겨지게 하시고,

죽어져 가던 저의 영이 무덤이 아닌 주님이 승리하신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마음을 주시고,

성령님께서 저를 온전히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모든 말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영원한 왕,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배경 및 요약

요한복음 20장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장례 관습에 따라 무덤에 안치되었고,

그 무덤은 큰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지난 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왔을 때

무덤의 돌이 옮겨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을 증거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부활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아 역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리기보다는 “누군가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은 이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요한은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베드로가 뒤이어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세마포와 머리를 감쌌던 수건을 보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암시하는 장면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신 부활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9절).

 

이처럼 오늘 본문은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과 믿음의 성장 과정을 보여 줍니다.

모두가 처음에는 당황하고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활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깨닫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붙잡는 말씀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v.8)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새벽, 돌로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무덤의 문이 열려 있었고,

안치되어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지고 빈 자리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빈 무덤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시신이 도난당했다고 생각했고, 베드로는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갔습니다.

요한은 들어가지 못하다가 “보고 믿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들의 믿음은 아직 온전한 부활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언된 부활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보고 믿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라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신앙의 여정에서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납니다.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명확히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향한 ‘작은 믿음’이라도 붙잡는 것입니다.

빈 무덤을 본 요한이 완전한 이해 없이도 믿음의 걸음을 내디뎠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얼마나 깊이 믿고 있는가? 내 삶 속에서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가?

빈 무덤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결단합시다.


📖 핵심단어 연구

부활 (ἀνάστασις, anastasis)

 

▣ 뜻, 의미

‘ἀνάστασις (anastasis)’는 헬라어에서 “일어남”, “다시 서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죽은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에서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믿는 자들의 부활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요한복음 20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선포됩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들의 소망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 신학적 의미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의 확증 –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고전 15:17).

2. 믿는 자들의 부활의 보증 –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도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롬 8:11).

3. 새 창조의 시작 – 부활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의미합니다(고후 5:17).


무덤 (μνημεῖον, mnēmeion)

 

▣ 뜻, 의미

‘μνημεῖον (mnēmeion)’은 “기억하다”라는 뜻의 뿌리 단어 ‘μιμνήσκω (mimnēskō)’에서 유래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죽은 자를 안치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요한복음 20장에서 빈 무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이 무덤은 돌로 봉인되어 있었지만,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 신학적 의미

무덤은 원래 ‘죽음의 자리’이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빈 무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증거로 남아 있으며,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보았다 (εἶδεν, eiden)

 

▣ 뜻, 의미

‘εἶδεν (eiden)’은 헬라어 동사 ‘ὁράω (horaō)’의 과거형으로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요한복음 20:8에서 요한이 ‘보고 믿었다’고 기록된 이 단어는 단순히 빈 무덤을 시각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영적 의미를 받아들였음을 나타냅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에서 ‘보다’는 단어는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마 13:16-17).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요한은 빈 무덤을 보며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믿었다 (ἐπίστευσεν, episteusen)

 

▣ 뜻, 의미

‘ἐπίστευσεν (episteusen)’은 ‘πιστεύω (pisteuō)’의 과거형으로, “신뢰하다, 의지하다, 믿다”는 뜻을 가집니다.

헬라어에서 믿음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요한은 빈 무덤을 보고 ‘믿었다’고 기록됩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부활의 모든 의미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요 20:9).

그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점진적으로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 신학적 의미

1. 믿음은 과정이다 – 요한이 ‘믿었다’는 것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2. 믿음은 부활의 증거를 통해 자란다 – 이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더욱 확신을 갖게 됩니다.

3.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의 부활 – 믿음의 핵심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요 11:25-26).


달려갔다 (ἔτρεχεν, etrechen)

 

▣ 뜻, 의미

‘ἔτρεχεν (etrechen)’은 헬라어 동사 ‘τρέχω (trechō)’의 미완료형으로, “달리다, 급히 가다”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강한 열정과 급박한 행동을 의미할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습니다(요 20:4).

이는 그들의 놀라움과 기대감을 반영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나타냅니다.

 

▣ 신학적 의미

1. 신앙은 열정을 동반한다 –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2. 믿음은 확인하려는 태도를 포함한다 – 단순히 소식을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며 신앙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3. 복음은 기다릴 수 없는 소식이다 – 그들이 급히 달려간 것처럼, 우리도 복음의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지 말고, 기쁜 소식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절별주해

1-2절 | 빈 무덤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안식 후 첫날(일요일)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마태복음 28:1, 마가복음 16:1, 누가복음 24:1에 따르면, 마리아 외에도 다른 여인들이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요한복음은 마리아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그녀는 무덤의 돌이 이미 굴려져 있는 것을 보았고, 즉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그녀의 반응에서 우리는 부활의 기쁨보다는 당혹감과 두려움을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부활을 떠올리기보다는 “누군가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해가 아직 온전히 자리 잡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부활을 즉시 떠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이 장면은 믿음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3-5절 |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은 곧바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요한이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들여다보았고,

베드로는 뒤늦게 도착했으나 곧바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장면은 두 제자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요한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향을 보인 반면, 베드로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무덤 안으로 들어간 것은 그의 성향을 반영하며, 그는 예수님을 향한 열정과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때때로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요한복음 13:37, 마태복음 14:28-29).

 

또한 요한이 먼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않고 기다린 것은 당시 유대인의 정결법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장소에 들어가는 것은 부정해질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행동했을 수 있습니다(민수기 19:11).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보다 예수님을 향한 애정과 충성심이 더 컸기에 즉각적으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접하는 신앙의 과정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신중했고, 베드로는 즉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둘 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각기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6-7절 | 무덤 안에 남겨진 세마포와 수건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ὀθόνιον, othónion)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머리를 감쌌던 수건(σουδάριον, soudarion)이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유대 장례 풍습에서는 시신을 세마포로 감싼 후, 얼굴을 따로 수건으로 덮었습니다(요 11:44, 나사로의 부활 사건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사용됨). 그런데 무덤 안의 광경은 도둑이 시신을 훔쳐 갔다면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도둑이라면 급히 시신을 가져갔을 것이고, 정성스럽게 수건을 개켜 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세밀한 기록은 예수님의 부활이 혼란스럽거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세상에서 죽음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셨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채로 떠나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부활이 초자연적인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8-9절 | 믿기 시작한 요한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 무덤 안의 정돈된 모습을 보고, “믿었다”(ἐπίστευσεν, episteusen)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깨달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에 가까웠습니다.

 

요한과 베드로는 여전히 성경이 예언한 예수님의 부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9에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성경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된 것이 이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시편 16:10에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라고 예언하였고, 이사야 53:10-12에서는 메시아가 죽음을 당한 후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구약의 예언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마 16:21, 막 9:31).

 

이 장면은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요한은 눈으로 본 현실을 통해 믿기 시작했지만, 아직 말씀을 통해 부활의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10절 | 집으로 돌아간 제자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을 목격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것이 부활의 성취라는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혼란과 함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부활의 약속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부활을 완전히 깨닫는 과정은 즉각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점진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임을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써 그들의 믿음이 확증되며,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 묵상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오늘 본문에서는 부활의 첫 순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새벽 일찍 무덤을 찾아갔지만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며 슬퍼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그들 역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부활을 맞닥뜨린 우리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의심과 혼란 속에 머무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지만, 우리의 신앙이 아직 온전히 자라지 않았을 때는 그분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요한이 빈 무덤을 보고 ‘믿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부활의 완전한 의미를 깨달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점차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여정을 걸으며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절망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고, 베드로처럼 실수하고도 다시 주님께 돌아가며, 요한처럼 신앙이 자라가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집니다. 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며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능력을 경험하고 있는가?

 

오늘 하루, 부활의 능력이 나의 삶 가운데 실제적인 믿음으로 자리 잡도록 결단해 봅시다.

 


📖 말씀 _ "부활의 여정, 믿음의 여정"

부활절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깊은 슬픔을 안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했습니다. 돌문이 굴려져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이 장면은 부활을 처음 맞이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놀랍고도 혼란스러운 순간. 하지만 어쩌면 우리도 신앙의 여정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부활의 능력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부활을 단순한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우리는 부활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를 살펴보며,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부활 앞에서의 반응

 

1.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주님을 찾는 신앙

 

막달라 마리아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주님을 향한 갈망을 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찾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도 신앙이 흔들릴 때, 주님께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증거를 보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신앙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요한은 먼저 도착했지만 망설였고, 베드로는 과감히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단순한 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와 neatly folded 된 수건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앞의 증거를 보았지만, 부활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요한은 “믿었다”고 기록되었지만, 그것은 부활을 온전히 이해한 믿음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많은 증거들을 보면서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신으로 연결 짓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부활은 단순히 빈 무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빈 무덤을 통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순한 지식이나 감정적인 순간을 넘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확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완전한 이해 없이도 믿음을 선택하는 신앙

 

제자들은 여전히 “성경에 예수님이 부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한 후에야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을 선택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점점 더 확신을 주십니다.

 

믿음은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결단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신다는 사실만큼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고 살아내는 삶

 

부활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슬픔 속에서도 주님을 찾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의심 속에서도 주님께 나아가며,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부활의 능력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진리임을 믿으며,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을 선택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과 소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때로는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찾게 하시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증거를 보면서도 의심하는 연약함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부활의 빈 무덤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부활의 증거가 되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에 눌리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고난이 찾아올 때,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시고,

절망이 찾아올 때,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을 신뢰하며,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원하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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