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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15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15 Then Balak again sent leaders, more numerous and more distinguished than the former.
16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16 They came to Balaam and said to him, “Thus says Balak the son of Zippor, ‘Let nothing, I beg you, hinder you from coming to me;
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17 for I will indeed honor you richly, and I will do whatever you say to me. Please come then, curse this people for me.’ ”
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18 Balaam replied to the servants of Balak, “Though Balak were to give me his house full of silver and gold, I could not do anything, either small or great, contrary to the command of the Lord my God.
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19 “Now please, you also stay here tonight, and I will find out what else the Lord will speak to me.”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20 God came to Balaam at night and said to him, “If the men have come to call you, rise upandgo with them; but only the word which I speak to you shall you do.”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1 So Balaam arose in the morning, and saddled his donkey and went with the leaders of Moab.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2 But God was angry because he was going, and the angel of the Lord took his stand in the way as an adversary against him. Now he was riding on his donkey and his two servants were with him.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3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way with his drawn sword in his hand, the donkey turned off from the way and went into the field; but Balaam struck the donkey to turn her back into the way.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4 Then the angel of the Lord stood in a narrow path of the vineyards,witha wall on this side and a wall on that side.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5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he pressed herself to the wall and pressed Balaam’s foot against the wall, so he struck her again.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6 The angel of the Lord went further, and stood in a narrow place where there was no way to turn to the right hand or the left.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7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he lay down under Balaam; so Balaam was angry and struck the donkey with his stick.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8 And the Lord opened the mouth of the donkey, and she said to Balaam, “What have I done to you, that you have struck me these three times?”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29 Then Balaam said to the donkey, “Because you have made a mockery of me! If there had been a sword in my hand, I would have killed you by now.”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0 The donkey said to Balaam, “Am I not your donkey on which you have ridden all your life to this day? Have I ever been accustomed to do so to you?” And he said, “No.”
📖 본문 배경
0. 개요
오늘 본문 민수기 22장 15절부터 30절은 이방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과 세상의 유혹에 흔들려 결국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 본문은 고대 이스라엘 문학 가운데에서도 풍자적이고 상징적인 장면, 곧 말하는 나귀 사건을 통해 하나님 말씀 앞에서 불순종하는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 역사적 배경
앞선 1–14절에서 발락은 이스라엘의 위협에 두려워하며 이방 선지자 발람을 불러 저주하게 하려 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였기에 처음에는 사절단을 돌려보냈지만, 내면의 탐욕과 자기 명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발락은 더 높은 관직자들과 더 많은 보상을 제시하며 두 번째 사절단을 보냅니다.
이에 발람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척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응답을 듣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그를 가는 길에 내버려두시지만, 그 마음이 삐뚤어진 것을 보시고 진노하시며 천사를 보내 길을 막으십니다.
2. 문학적·서사적 배경
이 본문은 고대 근동 문학 속에서 유일하게 동물이 말을 하는 장면 중 하나로, 강력한 아이러니와 반전의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듣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는 오히려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눈먼 자로 전락합니다.
반면, 그의 당나귀는 천사의 출현을 보고, 세 번이나 피하고, 결국에는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인지합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더 무딜 수 있다는 이 장면은 고대 문학의 전형적 풍자 구조를 따르며, 불순종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간섭과 징계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합니다.
3. 신학적 배경
이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를 징계하시되, 끝까지 놓지 않으신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명확히 “가지 말라” 하신 뜻을 알았음에도, 두 번째 요청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길을 막고, 당나귀를 통해 말씀하심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는 징계와 경고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내와 회복의 기회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영적 사역자의 진정성에 대한 경고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영적 권위를 자기 욕망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선지자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마음은 이중적인 것을 보시고 눈먼 자로 만드십니다.
이는 오늘날의 교회와 사역자들에게도, 진심과 중심을 잃은 사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워주는 본문입니다.
📖 본문 요약
발락의 두 번째 사절단과 발람의 흔들림 (15–20절)
모압 왕 발락은 첫 번째 요청이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더 높은 귀족들과 더 큰 보상을 약속하며 다시 사신을 보냅니다.
발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 하신 말씀을 들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미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신들에게 하룻밤 더 머물라고 하며, 하나님께 다시 묻는 척합니다.
하나님은 그 밤에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되,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하라고 하십니다.
이 허락은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발람의 마음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천사의 등장 (21–23절)
발람은 이튿날 아침, 자신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의 귀족들과 함께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이 마음속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할 생각을 품은 것을 아시고 진노하십니다.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길을 막습니다.
놀랍게도 이 광경은 발람은 보지 못하고, 그의 나귀만이 세 차례에 걸쳐 이를 인지하고 반응합니다.
발람은 그저 나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며 때립니다.
나귀의 말과 하나님의 경고 (24–30절)
세 번째로 천사를 본 나귀는 결국 발람을 태운 채 길에 주저앉고, 발람은 분노하여 나귀를 때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고 말하게 하십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세 번이나 나를 때리느냐?” (28절)
발람은 나귀의 말에 화를 내며 대꾸합니다.
이 대화는 아이러니와 풍자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발람이 이제는 자신의 당나귀보다도 영적 감각이 무뎌진 상태임을 드러냅니다.
핵심 요약
이 본문은 선지자라는 외형을 지닌 자가 자기 탐욕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말 못하는 짐승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 경고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은 발람을 즉시 멸하시지 않으시고, 세 번의 막힘과 말하는 나귀라는 방법을 통해 끝까지 돌이키게 하시고, 말씀을 들으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이한 일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와 말씀 앞에서의 겸손을 요구하는 깊은 영적 교훈입니다.
📖 붙잡는 말씀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이 말씀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동물이 말을 하는 장면 중 하나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할 자가 무뎌졌을 때, 짐승의 입술을 통해서라도 진리를 드러내신다는 충격적인 메시지입니다.
발람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 속 탐욕과 타협은 그의 눈을 가렸고,
하나님의 천사가 길을 막고 있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여셨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결정판입니다.
“왜 나를 때리느냐?”
나귀의 이 단순한 질문은, 사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왜 너는 내가 막는 길을 계속 가려 하느냐?”
“왜 내가 너를 사랑해서 멈추게 하려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때로는 사람의 입이 아닌 상황과 환경, 작은 사건, 뜻밖의 목소리로도 들려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영적 민감함과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 단어 연구
1. 분노하다 (חָרָה / 하라, ḥārā)
❖ 뜻과 의미
히브리어 하라는 ‘타오르다’, ‘불붙다’, ‘분노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로 감정이 극에 달해 격렬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22절에서 하나님은 발람이 가는 것을 보고 진노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 곧 불순종에 대한 거룩한 반응을 뜻합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감정과 달리, 거룩함에서 기인한 정의의 발현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타협을 미워하시며, 순종을 외면할 때 분노로 경고하십니다.
이는 심판 이전에 주어지는 사랑의 징계입니다.
2. 여호와의 사자 (מַלְאַךְ יְהוָה / 말아크 아도나이, malʾāḵ YHWH)
❖ 뜻과 의미
히브리어 말아크는 ‘전령’, ‘사신’, ‘사자’를 뜻하고,
여호와와 결합될 때 ‘여호와의 사자’, 곧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22–27절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칼을 들고 발람의 길을 막습니다.
이 존재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구약의 여러 본문에서 '하나님의 현현'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 신학적 의미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고, 경계하시고, 보호하시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길에 천사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경고가 동시에 임했다는 표지입니다.
3. 나귀 (אָתוֹן / 아톤, ʾātôn)
❖ 뜻과 의미
히브리어 아톤은 ‘암당나귀’를 가리키는 명사로, 성경에서 비교적 자주 등장합니다.
작고 순한 짐승이지만, 사람을 태우고 길을 걷는 충성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발람이 타고 간 나귀는 세 번이나 천사의 칼을 피하며 반응하고,
결국 하나님이 그 입을 여시자 사람처럼 말하게 됩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자연적이지 않은 수단으로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나귀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대신한 도구이자,
하나님의 인내와 유머, 동시에 예언자의 어리석음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됩니다.
4. 눈을 가리우다 / 눈이 열리다 (גָּלָה עֵינַיִם / 갈라 에이나임, gālāh ʿênayim)
❖ 뜻과 의미
갈라는 ‘드러내다’, ‘벗기다’는 뜻이고, 에이나임은 ‘눈들’을 의미합니다.
직역하면 ‘눈을 열다’라는 표현으로, 영적 인식이 주어지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30절 이후 이어지는 장면에서 발람의 눈이 열려 비로소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됩니다.
이 전환은 영적 감각의 회복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묘사입니다.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음성을 외면할 때,
하나님은 자비로 눈을 열어 진리를 보게 하십니다.
5. 때리다 / 치다 (נָכָה / 나카, nāḵāh)
❖ 뜻과 의미
히브리어 나카는 ‘치다’, ‘때리다’, ‘상하게 하다’는 뜻을 가지며,
전쟁, 형벌, 분노의 발현 등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발람은 자신의 나귀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세 번이나 때립니다(27절).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강행하려는 폭력의 표현입니다.
❖ 신학적 의미
‘나카’는 성경에서 인간의 분노, 심판, 징벌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 ‘때림, 치는’ 행위 속에서,
우리가 정말 누구를 때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이 단어는 결국, 자기 중심성의 폭력을 돌아보게 하는 회개의 시작점이 됩니다.
📖 절별 주해
15–17절 │ 더 높은 사신, 더 큰 유혹
❖ 해설
발락은 더 높은 귀족들과 더 많은 보상을 들려 보냅니다.
이는 발람의 내면에 있던 명예욕과 물질욕을 자극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발락이 단순히 영적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치 목적을 위해 선지자를 사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 적용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을 시험할 때 더 큰 유혹과 더 교묘한 조건으로 다가옵니다.
이럴 때 진짜 믿음은,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바를 붙잡고 다시 묻지 않는 것입니다.
18–20절 │ 발람의 경건한 척, 그리고 하나님의 허용
❖ 해설
발람은 “은금 한 집을 가득 준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들을 머물게 하고 다시 여호와께 묻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욕망에 따라 다른 길을 찾으려는 위선적 경건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기를 허락하시되, 그 말은 하나님의 명령만 말하라고 조건을 다십니다.
❖ 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고집을 허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교훈과 징계가 따릅니다.
말씀을 이미 받았다면, 더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순종입니다.
21–23절 │ 진노하신 하나님, 보지 못하는 발람
❖ 해설
발람은 나귀를 타고 출발합니다.
그의 발걸음은 허락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고,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천사를 보내 그의 길을 막으십니다.
그러나 발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나귀만 반응합니다.
❖ 적용
가끔 우리는 “길이 열렸으니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지만,
열렸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향한 내 마음이 누구를 향해 있는가입니다.
24–27절 │ 나귀의 세 번의 막힘, 세 번의 인내
❖ 해설
나귀는 세 번에 걸쳐 천사의 칼을 피해 멈추거나 옆으로 돌아섭니다.
이 반복은 하나님의 경고가 점점 강해짐을 상징하며,
또한 말하지 못하는 짐승이 보이는 것을, 선지자인 발람은 전혀 보지 못하는 영적 역설을 드러냅니다.
❖ 적용
하나님은 때로는 짐승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멈추게 하십니다.
우리 삶의 반복되는 막힘과 어긋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돌이키게 하시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무조건 밀고 가지 말고, 잠시 멈추어 들어야 할 때입니다.
28–30절 │ 나귀의 말, 사람의 침묵
❖ 해설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십니다.
“왜 나를 세 번이나 때렸느냐?”
이 말은 단지 나귀의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책망입니다.
놀랍게도 발람은 말하는 나귀에 놀라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화를 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이 자신을 책망하시는 줄도 모릅니다.
❖ 적용
때로 우리는 분노와 감정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경고의 음성조차도 듣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부드럽게, 때론 놀랍게, 그러나 반드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 못할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되기를 구합시다.
📖 묵상
우리는 종종 나의 눈으로 보는 것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람을 잘 보는 눈이 있다고,
어떠한 상황을 만났을 때 그 상황을 꿰뚫어본다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모든 “본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가장 반전 있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말했던 선지자 발람.
그는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와 함께 걷던 나귀만이, 하나님의 천사를 보고 반응합니다.
세 번이나 막힙니다.
길이 좁아지고, 벽에 다리를 부딪치고, 결국은 땅에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러자 발람은 나귀를 세 번이나 때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길이 막힌 것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나귀 때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길이 막힐 때,
사람 탓을 합니다.
환경 탓을 합니다.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건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은
잊어버린채 고집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막힘의 순간,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곁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죽을까 하여,
우리가 돌아서지 않으면 망할까 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길을 막으십니다.
말 못할 나귀를 통해서도,
이상한 현상, 실패 같은 상황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모든 장면 가운데,
문제는 항상 ‘보지 못하는 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혹시 지금 내 앞에 있는 막힘이,
‘왜 이러지?’ 싶은 돌발 상황이
사실은 하나님의 천사가 서 있는 자리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방해하려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때리느냐?” (민 22:28)
하나님보다 더 많이 말하고,
하나님보다 먼저 판단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욕심이 앞서갈 때,
우리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무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시 들을 수 있도록, 다시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해
길을 막으시고, 입을 여십니다.
오늘도 그 말씀 앞에, 멈춰 서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소서.
막히는 이 길 속에서 당신을 먼저 보게 하소서.”
📖 말씀 _ "보지 못한 자, 말하는 나귀에게 배우다"
서론 │ 나는 지금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 정도면 잘 살고 있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영적 행위 가운데
정작 하나님이 지금 내 삶에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이 막으시는 길을 애써 밀어붙이며 걷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저 또한 이러한 영적 어두움 가운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새로운 계획이 생겼고, 여러 기회가 한 번에 열렸습니다.
그 길이 마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문처럼 보였고, 저는 신중하게 기도한다고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싶어하는 강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하나님의 도장을 받아내기 위한 절차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마다 막혔습니다.
일정이 틀어지고, 사람의 반응도 좋지 않고, 예기치 못한 지출이 생기고…
그제야 저는 그제야,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던 그 사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이유 없는 막힘”처럼 느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속 발람은 자신의 나귀가 세 번 길을 멈췄음에도
그 이유를 찾지 않고, 오히려 때리고 화를 냅니다.
하나님이 막고 계신데, 그걸 모릅니다.
그가 선지자인데도 보지 못하고, 말 못하는 짐승이 먼저 반응합니다.
이 아이러니는 결코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를 세 번이나 막았는데, 너는 왜 멈추지 않느냐?”
본론 │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경고
1.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묻는 것은 신앙의 위선입니다. (15–20절)
발락은 첫 번째 사절단이 거절당하자, 더 높고 존귀한 귀족들을 보냅니다.
이번에는 더욱 화려한 조건과 권위, 그리고 정치적 명분을 덧붙여 발람을 유혹합니다.
발람은 처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은금으로 집 가득 준다 해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지 못한다.” (18절)
얼핏 보면 신실한 태도 같지만, 이 말은 발람의 겉과 속이 다름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말씀이 주어졌는데도, 그는 다시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위선적인 신앙의 가장 위험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내 욕심에 맞는 다른 대답을 기대하며 기도를 반복하는 것.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는 말 속에는
‘이번엔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겠지’라는
내 뜻을 관철시키려는 정서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의 반복적인 묻기에 결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20절)
이 허용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그의 욕망을 막지 않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래, 원한다면 해봐라”라는 하나님의 방임적 허락이었고,
그 길에 징계와 훈련이 따를 것이라는 암시였습니다.
이 장면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원리와 연결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마음의 원대로 행하게 하사,
그 영혼을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도다.” (시 81:12)
말씀을 듣고도 묻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의심입니다.
믿음은 “이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 뜻에 하나님의 도장을 받고 싶은 것인지.
진짜 신앙은 내가 원하는 답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은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2. 선지자는 보지 못하고, 나귀가 봅니다. (21–27절)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사신들과 함께 떠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허락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복종이 아닌 자기 욕망의 승인을 받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그 길을 가고 있는지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그의 길을 막으시고, 그를 징계하시되 곧바로 치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의 나귀를 통해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귀는 사람이 보기에는 가장 어리석고, 판단력이 없으며, 말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피합니다.
첫 번째는 밭으로 피했고,
두 번째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의 담으로,
마지막으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이 엎드러짐으로.
그리고 그때마다 발람은 화를 냅니다.
왜 말을 듣지 않느냐며, 왜 나아가지 않느냐며 세 번을 때립니다.
여러분, 이 장면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말 못하는 짐승을 사용하여,
말 잘하는 선지자의 눈먼 신앙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발람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길만 보려는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반면, 나귀는 하나님의 뜻을 인지했고,
그 뜻에 따라 길을 멈추는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때때로 말 못하는 존재, 낮은 자리, 예기치 않은 상황을 통해
가장 깊은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치십니다.
이 세 번의 막힘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돌이키게 하시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 기회를 분노로 받아치고,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겼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계획이 어그러질 때,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반복적으로 방해가 찾아올 때,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칼을 들고 막고 있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지금 이 막힘이 주님이 저를 살리시려는 사인이라면
저는 멈추겠습니다.
나의 뜻보다, 주님의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나귀의 침묵 속에,
작은 일상의 반복 속에, 막힘이라는 이름의 사인 속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귀와 분별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말 못하는 나귀의 입도 여십니다. (28–30절)
당나귀의 입이 열렸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짐승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지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이나 때리느냐?” (28절)
이 질문은 사실,
하나님이 발람에게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내가 너를 막은 이유가 무엇인지 넌 알고 있느냐?”
“왜 너는 멈추지 않는 것이냐?”
“왜 너는, 내가 지금 너를 살리기 위해 이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막으십니다.
그리고 그 막으심은 사랑의 울타리입니다.
우리는 때로
일이 꼬일 때, 기회가 무너질 때, 관계가 틀어질 때,
‘왜 이런 일이 생기지?’ 하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네가 가면 안 되는 길이다.
내가 널 사랑하기에,
그 길을 지금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막히는 길,
그 불편한 상황,
나의 가족, 친구, 동료와 같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눈을 열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인을 먼저 읽고 반응했던 나귀는
결국 생명을 지킨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의 막힘을 주십니다.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 회개의 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그 순간 멈출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엎드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 │ 하나님은 막으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본문은 참으로 부끄럽고도 위로가 되는 장면입니다.
부끄러운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을 외면했다는 사실 때문이고,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런 발람조차 하나님은 끝까지 붙들어 돌이키게 하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초리로 치지 않고, 나귀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온유하시고, 그만큼 자비로우시며, 그만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삶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 ‘막힘’이 있습니까?
그 길은 처음엔 열리는 듯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반복되는 불편함, 좌절, 오해, 갈등 속에 놓여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주님, 이 막힘 가운데 말씀하시고 계신가요?”
“혹시 지금이 멈추어야 할 때인가요?”
한 걸음 물러서십시오.
그 자리가 하나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기다리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지금이라도 멈추겠습니다.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다시, 순종의 길로 걸어가겠습니다.”
그 고백 위에 하나님의 음성이 임할 것입니다.
당나귀보다 더 느린 나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충분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괜찮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눈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보게 하십니다.
때로는 막힘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로,
때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의 경고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막힘은 멸망의 신호가 아니라,
회복의 이정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 앞에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길은 보이지 않아도 안전하고,
막혀 보여도 결국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시선이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말씀하시고, 경고하시고,
결국 돌이키게 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오늘도 제게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 저는 발람의 모습을 제 안에서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면서도 다시 묻는 척하며,
내 욕심의 길을 열어달라고 조르고,
결국 그 길을 밀어붙이려는
제 안의 이기심과 위선을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은 그 길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칼을 든 천사를 보내어 막으셨습니다.
당나귀가 멈추고, 옆으로 피하고,
결국은 주저앉은 그 자리에
저도 오늘 멈추어 서고 싶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 삶 가운데 막히는 길이 있다면,
그 안에 담긴 주님의 메시지를 듣게 하소서.
나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상황들 속에
주님이 서 계셨음을 알게 하소서.
제가 본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보지 못하고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제가 영적으로 민감하다고 여겼지만,
말 못하는 나귀보다 더 무지한 존재였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를 향해 말씀하시는 당신의 음성 앞에
제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말씀의 경고가 들릴 때,
겸손히 엎드릴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하나님, 당신은 막으심으로 저를 보호하시고,
돌이키게 하심으로 저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막힘이, 그 중단이, 그 기다림이
나를 위한 은혜였음을
더디게라도 알아듣게 하소서.
저는 자주 실수하고,
제 뜻대로 하려 하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나귀의 입을 여시듯
주변의 작은 소리, 예기치 않은 사건,
묵상의 말씀을 통해
저를 깨우치고 계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겠습니다.
문이 닫혔다면 기다리겠습니다.
길이 막혔다면 엎드리겠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 혹 이 길이 다시 열릴 때에는
제가 욕심으로 걷지 않고 말씀으로, 은혜로, 절제로
그 길을 걷게 하소서.
발람처럼 쓰임받기를 원하지만
발람처럼 넘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막으시는 손길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자 되게 하소서.
오늘도 그 사랑으로
저를 살려주시고, 말씀해주시고,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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