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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민수기ㅣ2025년

[생명의 삶] 민수기 22장 41절-23장 12절 _ 2025. 5. 15(목)

by LogosLab Steward 2025. 5. 15.

❖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배포]를 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

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41 Then it came about in the morning that Balak took Balaam and brought him up to athe high places of Baal, and he saw from there a portion of the people.

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1 Then Balaam said to Balak, “Build seven altars for me here, and prepare seven bulls and seven rams for me here.”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2 Balak did just as Balaam had spoken, and Balak and Balaam offered up a bull and a ram on each altar.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3 Then Balaam said to Balak, “Stand beside your burnt offering, and I will go; perhaps the Lord will come to meet me, and whatever He shows me I will tell you.” So he went to a bare hill. 

4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4 Now God met Balaam, and he said to Him, “I have set up the seven altars, and I have offered up a bull and a ram on each altar.” 

5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5 Then the Lord put a word in Balaam’s mouth and said, “Return to Balak, and you shall speak thus.” 

6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6 So he returned to him, and behold, he was standing beside his burnt offering, he and all the leaders of Moab.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7 He took up his discourse and said, “From Aram Balak has brought me, Moab’s king from the mountains of the East, ‘Come curse Jacob for me, And come, denounce Israel!’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8 “How shall I curse whom God has not cursed? And how can I denounce whom the Lord has not denounced?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9 “As I see him from the top of the rocks, And I look at him from the hills; Behold, a people who dwells apart, And will not be reckoned among the nations.

10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10 “Who can count the dust of Jacob, Or number the fourth part of Israel? Let me die the death of the upright, And let my end be like his!” 

11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11 Then Balak said to Balaam, “What have you done to me? I took you to curse my enemies, but behold, you have actually blessed them!” 

1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12 He replied, “Must I not be careful to speak what the Lord puts in my mouth?” 

 


📖 본문배경

0. 개요

 

오늘 본문은 발람과 발락의 본격적인 만남과 첫 번째 예언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는 의도로 발람을 불러들였지만,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을 통해 저주가 아닌 축복을 말씀하시게 하십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이 인간의 의도와 욕망을 어떻게 뛰어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특히, 발람이 보는 이스라엘의 진영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은

광야에서 무질서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는 아름답고 복된 공동체로 인정받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1.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은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요단강 동편에 진을 쳤으며,

이로 인해 모압과 미디안은 강한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영적 저주로 약화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발람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내면의 태도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정치적 명예를 얻으려는 이중적 욕망이 깔려 있었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이끌고 브암 바알이라는 산당으로 올라가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고,

거기서 발람에게 저주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만 말하겠다는 발람의 선언

인간의 계산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주권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2. 문학적·서사적 배경

 

이 본문은 구약의 대표적 ‘역전 구조’를 따릅니다.

처음에는 ‘저주’를 의도하고 산에 오르지만, 그 산 위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됩니다.

 

이는 구약의 반복적인 문학 장치, 즉 인간의 악한 의도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드러내는 대표적 구조입니다.

 

또한 발람의 입술이 하나님의 말로 통제되는 장면은,

그가 스스로 선지자라 자처했지만 진정한 선지자란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본문에는 ‘제단’, ‘제물’, ‘산당’, ‘축복’ 등의 상징이 교차되며,

이방 제의의 틀 안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가 선포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신학적 배경

 

이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호와 말씀의 능력을 세 가지 측면에서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의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압 왕은 정치적·종교적 수단을 동원해 저주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막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축복으로 바꾸십니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막을 수 없다.

발람은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통제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구를 가리지 않고 선포된다는 절대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인간의 판단을 초월한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보고 “이 백성은 홀로 거하는 민족이며 다른 민족들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된 백성, 복의 통로, 언약의 주체로 바라보고 계심을 보여주는 선언입니다.

 


📖 본문요약

바알의 산당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다 (22:41)

 

모압 왕 발락은 이튿날 아침, 발람을 바알의 산당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진영의 일부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이었으며,

영적 공격과 저주의 의식을 위한 상징적인 자리였습니다.

 

발락은 그곳에서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군사적 방법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스라엘을,

종교적·영적 저주를 통해 무너뜨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일곱 제단과 제물을 드리다 (23:1–6)

 

발람은 먼저 발락에게 일곱 개의 제단을 쌓게 하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바치게 합니다.

이는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라, 신적 계시를 구하기 위한

예언자적 준비 행위였습니다.

 

그 후 발람은 하나님을 뵈기 위해 홀로 산 위에 올라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만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입에 말을 두었으니 가서 그대로 말할지니라.” (23:5)

 

하나님은 발람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도록 입을 주장하십니다.


발람의 첫 번째 예언 – 하나님의 시선으로 본 이스라엘 (23:7–10)

 

발람은 마침내 입을 열어 예언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입에서는 발락이 기대했던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가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23:8)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 백성은 홀로 거하는 민족이며,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된 언약 백성으로 인정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그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고,

그들 가운데서도 의인들의 죽음이 복되다고 말하는 발람의 입술은

하나님의 시선이 이 백성에게 어떻게 머물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발락의 분노와 발람의 고백 (23:11–12)

 

발락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외칩니다.

 

“내가 너를 데려온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게 하려 함이거늘,

네가 오히려 축복만 하였도다.” (23:11)

 

발람은 이에 대해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23:12)

 

이 짧은 한마디는

발람이 더 이상 사람의 명령이나 보상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겠다는 선지자적 결단의 표현이 됩니다.


요약 정리

 

이 본문은 저주를 기대했던 사람의 뜻과,

그것을 정면으로 꺾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냅니다.

 

발락은 정치적 불안 속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통해 오히려 축복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발람은 스스로 예언의 권위와 명예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 입에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을 두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의 방황 중이었지만,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는 구별된 백성, 복된 공동체, 언약의 중심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로, 누구의 관점으로, 누구의 뜻을 따라 걷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할 때 진짜입니다.

 


📖 붙잡는 말씀

1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이 구절은 발람 이야기 전체에서 사명과 중심이 분명히 바뀌는 전환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발람에게 말씀하셨고, 그 입에 자신의 말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발락은 여전히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정치적 기대와 유혹으로 발람을 흔듭니다.

 

그때 발람의 입에서 이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신 말씀만 말할 뿐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방어가 아닙니다.

자기 욕망과 세상의 유혹을 넘어선 결단의 고백입니다.

 

이전까지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자기 욕심과 명예에 시선을 빼앗긴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 말씀보다 자신의 해석과 욕망을 앞세운 자였습니다.

 

그 결과, 그의 입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기대를 담으려 했고, 그의 사명은 점점 흐려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입을 주장하셨고, 그의 말에 하나님의 말씀만 담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징계이면서 회복입니다.

말씀의 통제이자, 선지자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말하고 있는가?

내 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사람의 기대와 내 욕망을 포장한 말들로 채워져 있는가?

 

참 선지자는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 말하는 사람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사람입니다.

 


📖 단어 연구

1. 말씀 / 말하다 (דָּבָר / dābār)

 

뜻과 의미

‘다바르’는 히브리어에서 ‘말하다, 말씀, 선언하다, 계시’ 등을 포괄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단순한 언어의 전달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말, 특히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에 자주 사용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고 하실 때 사용된 단어가 다바르입니다(23:5).

이는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적 말씀만을 선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학적 의미

‘다바르’는 창조(창 1:3), 계시(출 20장), 구속(신 8:3)의 순간마다 핵심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정보가 아닌 실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발람의 입에 주어진 ‘말씀’은 선지자의 권위가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의해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축복하다 (בָּרַךְ / bāraḵ)

 

뜻과 의미

‘바라크’는 ‘축복하다, 복을 빌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할 때도,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할 때도 쓰입니다. 존경, 번영, 평안의 선언이 포함된 단어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히려 축복을 선포하게 됩니다(23:8).

이는 ‘바라크’의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사용입니다. 발람은 자의로 복을 빌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입술을 통해 복을 흘려보내셨습니다.

 

신학적 의미

‘바라크’는 하나님의 복이 특정한 사람과 민족에게 머무는 언약적 확증입니다.

창세기 12:3의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라는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가 여기서 반복됩니다.

즉, 하나님이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대상은 인간이 함부로 저주할 수 없습니다.


3. 저주하다 (קָבַב / qābab)

 

뜻과 의미

‘카바브’는 히브리어로 ‘저주하다, 해를 끼치다, 파괴하다’는 뜻이며,

일반적 저주보다 의도적이고 계획된 파괴나 해악의 의도를 내포한 단어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발락이 발람에게 요청한 것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것이며(22:41),

발람은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랴”라고 응수합니다(23:8).

여기서 ‘카바브’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사람의 말로 해악을 선포하려는 시도를 나타냅니다.

 

신학적 의미

‘카바브’는 하나님께서 명확히 금하신 말과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의 주권자이시며, 인간이 그 권한을 넘보는 것을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영적 공격에 대한 하나님의 방어와 주권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4. 선포하다 / 선언하다 (נָשָׂא מָשָׁל / nāśāʾ māšāl)

 

뜻과 의미

‘마샬’은 속담이나 비유, 선언, 격언을 의미하며, 공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로 무언가를 알릴 때 쓰입니다.

‘나사 마샬’은 직역하면 “비유를 들어 말하다” 또는 “선언을 높이 들어 말하다”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발람이 예언을 할 때마다 성경은 “그가 비유를 들어 말하여 이르되”라고 기록합니다(23:7).

이는 발람의 예언이 단지 통찰이 아니라 공적 선포, 권위 있는 선언임을 보여줍니다.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예언, 때로 비유, 때로 격언처럼 표현됩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언제나 진리의 전달이며,

선포는 그 진리가 공적으로, 강력하게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방식입니다.

발람의 선언은 비록 그가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5. 구별된 민족 / 따로 거하다 (בָּדָד / bāḏāḏ)

 

뜻과 의미

‘바다드’는 ‘혼자, 따로, 고립되게’라는 의미지만,

문맥에 따라 ‘구별됨’, ‘고상함’, ‘특별한 정체성’을 암시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발람은 이스라엘에 대해 “이 백성은 홀로 거하는 민족이며, 다른 민족과 함께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합니다(23:9).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정체성과 언약 백성으로서의 분리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방 중에서 구별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레 20:26).

‘바다드’는 이스라엘의 고립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구별의 자리입니다.

이는 신약의 교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15:19)

 


📖 절별 주해

41절 │ 바알의 산당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다

 

❖ 해설

이튿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바알의 산당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진영이 보이는 높은 지대로, 발락은 이 자리를 통해 영적 저주를 실행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발람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 만남은 저주를 위한 무대가 준비된 장면입니다.

 

❖ 적용

세상은 자주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무대를 만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할 때,

우리도 입을 닫고 기다림과 분별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2절 │ 일곱 제단과 제물 준비

 

❖ 해설

발람은 일곱 개의 제단을 쌓고, 각 제단 위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게 합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전통적 제의 행위였으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외형상 진지한 준비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는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계산에 근거한 제사였습니다.

 

❖ 적용

겉으로는 예배의 형식을 갖추었더라도,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그 모든 열심은 사람을 위한 종교 행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마음을 원하십니다.


3–6절 │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

 

❖ 해설

발람이 하나님을 뵙기 위해 따로 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그의 입에 말씀을 두십니다.

이는 발람의 자율적 예언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적 통제를 받는 입술로의 전환입니다.

발람은 자신이 보낸 자들 앞에서 오직 들은 말씀만을 전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 적용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뜻이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말보다, 진실한 순종의 말씀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7–8절 │ 발람의 첫 예언 – 축복의 반전

 

❖ 해설

발람은 예언을 시작하며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발락이 기대했던 저주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의 선포였습니다.

그는 단호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랴?”

 

❖ 적용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자를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습니다.

사람의 판단과 평가는 때로 틀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결코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를 두려움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9–10절 │ 구별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 해설

발람은 이스라엘을 “홀로 거하는 민족”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고립된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따로 구별된 정체성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들을 누가 능히 헤아릴 수 있으랴”는 표현은

그 수효가 크고, 하나님의 복이 그들 위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 적용

세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롭다 느낄 수 있지만,

그 다름은 거룩함이며 언약의 표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11절 │ 발락의 분노와 오해

 

❖ 해설

자신이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자, 발락은 노골적으로 발람을 책망합니다.

그는 발람이 원수를 축복했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흐름을 사람의 실패로 돌립니다.

그러나 발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요구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적용

사람은 자기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를 경험할 때,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상황을 왜곡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2절 │ 발람의 중심 고백

 

❖ 해설

발람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고백은 그가 단지 예언자 역할을 수행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 적용

우리의 말과 행동, 결정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오늘 나의 입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가,

아니면 내 욕망의 언어만 담겨 있는가?

발람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묵상

가끔 우리는 말이 많아집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싶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더 많은 말들로 나를 지켜내려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만나는 발람은 그 모든 말을 내려놓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민 23:12)

 

이 말은 단순한 절제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의 삶의 중심이 바뀌었다는 선언입니다.

 

이전까지의 발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명예와 유익, 사람의 기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욕망을 따라 말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입을 주장하십니다.

그가 말하려 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 입에 말씀을 두십니다.

 

그제야 발람은 깨닫습니다.

“아, 내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여야 하겠구나.”

 

그 순간 발람의 말은 바뀝니다.

세상을 설득하려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입술이 됩니다.

 

이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한 도전이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하고 있는가?

내 입에 담긴 말은 내 계산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사람을 위한 소리인가, 하나님 앞에서 떨며 드리는 고백인가?

 

어쩌면 오늘 우리의 입도 너무 많고, 우리의 말도 너무 가볍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에 당신의 말씀을 담으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도록

말을 줄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말씀을 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감정보다 말씀을 따르고,
내 논리보다 진리를 선포하고,
내 계획보다 순종을 담아내는 입술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선지자적 정체성입니다.

 


📖 말씀 _ "나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만"

서론 │ 말의 힘, 그리고 신앙의 중심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비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의 진짜 무게는 ‘누가 그 말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은 사회를 뒤흔들고,
사랑하는 이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울리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한 이방 선지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던져지려는 ‘저주의 말’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막으시고,
오히려 ‘축복의 말씀’으로 바꾸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발람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너의 입에 머무는 말은 누구의 말인가?
너의 입술은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는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입술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담길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함께 말씀을 나누어보겠습니다.

 

 

본론 │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는 사람

 

1. 바알의 산당 위, 세상의 시선에서 보는 하나님의 백성 (22:41–23:6)

 

본문은 발락이 발람을 데리고 ‘바알의 산당’에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끝까지 보이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물리적인 시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통제하고 저주하기 위한 전략적 관찰, 계산적인 시선이 깔려 있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이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보지 못합니다.
오직 위협적인 숫자, 그의 왕권을 위협할 힘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힘을 꺾기 위해 영적 전쟁의 방식으로 ‘저주’를 선택합니다.
제물을 드리고, 발람을 불러내며, 영적 무기처럼 ‘말’을 사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여러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외모, 성과, 학력, 재산.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보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세상이 부여한 가치로 나를 해석하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2. 발람의 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23:7-12)

 

발람은 본래 거짓된 예언자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보다 보상과 명예가 더 큰 동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조차도 사용하십니다.
단지 그를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술을 주장하여 말씀을 심으십니다.

 

23장 12절은 본문의 핵심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 외에 어찌 말할 수 있으리요?”

 

이것은 단순한 명령의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완전히 굴복한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발람은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입은 하나님께 붙들린 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기준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입을 자신이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입술의 습관이 아니라, 마음의 주권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오늘 어떤 말들을 하고 있는가?

내 감정대로 내뱉는 말인가?

나의 논리와 생각으로 포장한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진 말인가?

 

하나님은 단지 ‘말조심’ 정도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입의 통제가 아니라 마음의 통치를 원하십니다.

말은 마음의 넘침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마 12:34).

 

 

결론 │ 그 말, 주님이 주신 말씀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말은 곧 생명입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고, 상하게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은 우리의 중심을 드러냅니다.

 

발람이 달라졌던 이유는,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제 입에 주님의 말씀만을 두소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고백을 하게 하소서.”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이 세상을 밝히는 진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글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 앞에 저희의 마음을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입술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고백합니다.

사람의 말에 흔들리고, 사람의 기대에 맞추려 말하며,

하나님의 뜻보다 먼저 말한 적이 많았습니다.

 

주님, 저희도 발람처럼 겉으로는 순종하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보상의 기대, 사람의 시선,

내 뜻을 이루고 싶은 욕심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의 중심을 아십니다.

감추어진 탐욕도, 미묘한 타협도,

겉과 속이 다른 우리의 마음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늘도 말씀을 들려주시며

다시 주의 말씀을 저희 입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의 입술을 주장해 주옵소서.

사람을 살리는 말,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말,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말씀만 하게 하옵소서.

 

아무리 분위기가 그렇다 해도,

아무리 손해 보는 말이라 해도,

주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말하게 하옵소서.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뜻만을 말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감정으로 말하기보다, 기도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혹시 지금 저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길이라면,

부디 말씀으로 그 길을 막아 주시고,

영적인 눈을 열어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말로 누군가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말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믿음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자리에까지 흘러가게 하시고,

그 말씀 따라 사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입에 두신 말씀만을 말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 은혜를 오늘도 저희 모두에게 덧입혀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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