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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민수기ㅣ2025년

[생명의 삶] 민수기 35장 22절-34절 _ 2025. 6. 10(화)

by LogosLab Steward 2025. 6. 10.

❖ 이 자료는 개인적인 말씀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목회자의 설교 준비][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 그리고 [말씀묵상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본 자료의 모든 저작권은 작성자인 LogosLab Steward에게 있으며, 자유롭게 사용 및 참고하시되 출처를 밝혀주시고, [무단 복제 배포]를 합니다. 이 자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

22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26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27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29 이는 너희의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하는 규례라 
30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32 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3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 본문 배경

❖ 개요

 

민수기 35장 후반부(22–34절)는 앞서 언급된 도피성 제도의 연속으로, 보다 세부적인 규정이 명시됩니다. 핵심은 ‘부지중의 살인’과 ‘고의적 살인’의 구별, 그리고 도피성에 거주해야 할 기간과 그 조건에 대한 조항입니다. 하나님은 고의 없이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해 도피성에서의 피신을 허락하시되, 그 기간을 ‘대제사장의 죽음’까지로 정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법적 조치 이상의 속죄와 공동체 질서의 회복, 그리고 영적 의미를 포함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아울러, 본문은 증인의 역할, 속전(생명값)의 허용 여부, 그리고 땅의 거룩성에 대해 엄중하게 언급하며, 도피성과 연결된 규례들이 이스라엘의 공동체 전체를 향한 영적 기준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 배경

 

이 말씀은 여전히 모세의 설교 담화 중 마지막 시기, 즉 가나안 땅 입성 직전에 주어진 법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곧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사회 체계를 세우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정의의 질서를 미리 정리하고 계십니다.

이 시기 고대 근동에서는 제도화된 재판 체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피해자의 가족이 보복을 직접 수행하는 ‘피의 복수(blood avenger)’ 관습이 만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단지 복수를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개입해 정의와 자비를 분별할 수 있는 체계를 도입하십니다.

특히 “대제사장이 죽기까지”라는 규정은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속죄 제도 전체와 연결된 공동체 신학의 정점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연결하는 중보자였으며, 그의 죽음은 일종의 국가적 속죄의 전환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 문화적 배경

 

이스라엘 외의 고대 근동 사회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보호 도시(Refuge Cities) 혹은 안전지대가 존재했지만, 그 기준이나 적용 방식은 극히 자의적이었으며, 신분과 부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는 불의한 구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도피성 제도는 철저히 공적 회중의 판단, 다수 증인의 증언, 속전 수용의 불가 등으로 법적 정의를 견고히 하고자 한 장치입니다.

특히 속전 제도의 금지(31–32절)는 매우 특징적인데, 부자일수록 책임을 피하는 것을 막고, 사람의 생명이 어떤 대가로도 대신될 수 없다는 하나님의 기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 신학적 배경

 

이 본문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정의(justice)자비(mercy), 그리고 거룩함(holiness)이라는 세 가지 본질적 속성이 법과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22–24절에서는 실수로 인한 죽음에 대한 구제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자비를 보이시는 한편, 30–31절에서는 고의적 살인에 대해 생명을 속전으로 바꾸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시며 정의를 지키십니다. 이러한 양면적 구조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충돌 없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또한 “땅을 더럽히지 말라”(33–34절)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로 한 땅—곧 그분의 임재가 있는 곳—이 정의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강조입니다. 이는 단지 법률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거룩과 임재를 보전하기 위한 언약적 요구입니다.

더불어,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도피자의 죄가 실질적으로 해소되는 방식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구속과 명백히 연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도피성이자 대제사장이며,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히 6:18; 롬 8:1).

따라서 이 본문은 율법의 틀 속에 예비된 복음의 초상이자, 인간의 정의와 복수, 속죄와 구원의 구조를 신학적으로 아우르는 심오한 계시입니다.

 


📖 본문 요약

민수기 35장 22–34절은 도피성 제도에 관한 두 번째 단락으로, ‘우발적 살인’에 대한 정교한 규정과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에 대한 엄중한 기준을 드러냅니다. 앞서 9–21절에서는 도피성 설치의 목적과 기본적인 구조가 소개되었다면, 본 단락은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판결 절차와 도피성 거주의 한계, 그리고 땅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22–23절에서 하나님은 살인이 고의가 아닌 경우, 예를 들어 미움 없이 실수로 사람을 밀치거나 보지 못한 채 던진 물건이 사망에 이르게 된 상황을 언급하십니다. 이는 법의 적용에 있어 동기와 우발성을 세밀하게 구분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주며, 무고한 피의 희생을 막기 위한 공의로운 구조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회중이 보복자와 살인자 사이에 서서 판결을 내려야 하며(24절), 그 살인자는 피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도피성으로 돌아가 거주해야 합니다(25절). 하지만 도피성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며, 대제사장이 죽기까지라는 명확한 기간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고의적이지 않은 죄에 대한 ‘잠정적인 보호’이자, 대제사장의 죽음이라는 속죄의 상징을 통해 자유가 허락된다는 점에서 구속사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26–28절은 도피성의 한계와 규칙을 명확히 설정합니다. 대제사장이 죽기 전까지 도피성 밖으로 나간 살인자가 보복자에게 살해될 경우, 그 피에 대한 죄책은 복수자에게 돌려지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 거하는 한에서만 보호가 보장되는, 조건부 은혜의 공간인 셈입니다.

 

29–30절에서는 도피성 관련 규례가 단지 당시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스라엘 전역과 후대까지 적용될 불변의 규정임을 선포하며, 살인 판결에 있어서도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엄정한 사법 원칙을 천명합니다.

 

31–32절은 매우 단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고의 살인에 대해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라 하십니다. 도피성에 피한 자 역시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귀향할 수 없습니다. 이는 생명을 값으로 환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절대적 생명 가치 선언이며, 공동체 정의를 세우는 데 있어 타협이 없어야 함을 경고하십니다.

 

마지막 33–34절은 이 모든 규정이 단지 개인 간의 문제나 공동체 내부의 질서를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피는 땅을 더럽힌다”고 선언하시며, 죄의 결과가 공동체 전체와 거주하는 땅에까지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이며, 그 거룩을 지키는 것이 곧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재 목적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 본문은 고대의 도피성 제도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는 죄와 실수 가운데 때로 피할 곳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어그러짐 속에서도 공의와 자비가 조화되는 구조를 마련하셨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현된 도피성입니다.

 

그리스도는 실수한 자에게 은혜를, 악의를 품은 자에게는 회개를, 죄책을 가진 자에게는 참 속죄를 제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 ‘피할 곳’을 찾을 뿐 아니라, ‘속죄의 죽음’ 이후 다시 회복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규례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도피성은 단지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동체를 정의와 거룩으로 지키시기 위해 허락하신 구속사의 한 조각이며, 오늘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초대하시는 회복의 질서입니다.

 


📖 붙잡는 말씀

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이 말씀은 도피성 제도의 결론부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신 선언이며, 본문의 정점에 해당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사회 질서의 유지나 생명의 보호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규례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도피성과 그 안에서의 규례, 대제사장의 죽음, 속전 금지, 정결함에 대한 기준—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존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피 흘림은 단지 인간의 범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행위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공동체는 그 거룩함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그 피 흘림은 속함을 받을 수 없다”(33절)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25, 28, 32절)

 

이 모든 규정의 밑바탕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공의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 공의는 철저하며, 임의로 타협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그 공의는 실수한 자에게 회복의 길을 마련하신 하나님의 자비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거주하는 땅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는가?”

“너희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그분의 성품을 따라 살고 있는가?”

 

우리의 일상,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가정은 과연 하나님이 임재하시기에 합당한 땅입니까? 혹시 우리는 속전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거나, 정의를 감정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나 복된 소식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듯,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도피성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죽으신 대제사장이 계시고,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리는 자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 거룩을 지켜야 할 사명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땅’이 되도록, 정의와 자비가 흐르는 일상의 도피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사는 땅, 일하는 곳,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주의 거룩함이 머물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 받은 자로서, 정의를 실천하고 자비를 흘려보내는 도피성 같은 존재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거하시는 그 땅에, 우리가 함께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정의로 정결케 하시고, 자비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오늘도 거룩한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단어 연구

❖ 피 (דָּם / 담)

 

뜻과 의미

히브리어 ‘담(דָּם)’은 문자 그대로 ‘피’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생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생명력의 근원으로 간주되며(레 17:11), 동시에 죄, 죽음, 심판, 구속의 표징으로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피는 고대 사회에서 제의적, 법적, 도덕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습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민수기 35장에서는 ‘피 흘림’과 ‘피를 흘린 자’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도피성 제도와 피의 정결함이 직접 연결됩니다(33–34절). 본문에 따르면, 피를 흘린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피’가 단순한 생물학적 요소가 아니라, 거룩한 땅과 공동체 전체를 더럽힐 수 있는 영적 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신학적 의미

성경 전체에서 ‘피’는 구속의 상징입니다. 구약에서는 속죄를 위해 반드시 피를 흘려야 했고(레 17:11),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인류의 죄를 속하는 능력으로 등장합니다(히 9:22, 엡 1:7). 민수기의 이 규례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불의가 씻겨짐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아래, 피는 심판의 도구인 동시에 구속의 표징입니다.


❖ 지경 밖 (מִחוּץ לִגְבוּל / 미후츠 리그불)

 

뜻과 의미

‘미후츠’(מִחוּץ)는 ‘밖에’, ‘경계 바깥에’를 뜻하고, ‘리그불’(לִגְבוּל)은 ‘경계’, ‘영역’을 의미합니다. 합쳐서 ‘지경 밖’ 또는 ‘경계 밖’이라는 뜻으로, 법적·공간적 보호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에서는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는 행위가 살인자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명확히 말합니다(26–27절). 대제사장이 죽기 전 도피성의 지경 밖으로 나간 살인자는 복수자의 손에 죽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즉, 도피성 안은 생명을 보호받는 ‘법적 울타리’이지만, 지경 밖은 그러한 보호가 무효화되는 경계입니다.

 

신학적 의미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구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도피처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심판과 죽음 아래 놓이게 됩니다(롬 8:1–2). ‘지경 밖’은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언약과 보호를 벗어난 영역이며, 그 안에 머무는 것이 곧 생명을 유지하는 길임을 경고합니다.


❖ 대제사장 (הַכֹּהֵן הַגָּדוֹל / 하코헨 하가돌)

 

뜻과 의미

‘하코헨’(הַכֹּהֵן)은 ‘제사장’을, ‘하가돌’(הַגָּדוֹל)은 ‘위대한’, ‘큰’을 의미합니다. 즉 ‘대제사장’은 ‘가장 높은 제사장’으로, 이스라엘의 제의와 속죄 사역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에서 도피한 자가 원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대제사장의 죽음’입니다(25, 28, 32절). 이는 대제사장의 죽음이 어떤 상징적 전환점을 이룬다는 것을 암시하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과거의 죄나 피의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공동체적 용납을 반영합니다.

 

신학적 의미

히브리서 9장과 10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선언합니다. 그분은 한 번 죽으심으로 모든 죄인을 위한 속죄를 완성하셨고, 이제 누구든지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 속 대제사장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자이며, 도피성에서 진정한 해방은 그분의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 속전 (כֹּפֶר / 코페르)

 

뜻과 의미

‘코페르(כֹּפֶר)’는 ‘속전’, ‘대가’, 또는 ‘보상’을 의미합니다. 원형 동사 ‘카파르’(כָּפַר)는 ‘덮다’, ‘속죄하다’는 뜻으로, 누군가의 죄나 잘못을 덮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민수기 35:31–32은 명백하게 ‘살인자에 대해서는 속전을 받지 말라’고 명시합니다. 이는 생명의 무게를 돈이나 다른 보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생명 윤리를 보여줍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며, 도피한 자라도 대제사장 이전에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신학적 의미

이는 복음의 본질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죄는 그 어떤 인간적 방법이나 대가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즉 ‘영원한 속전’만이 유효한 구속의 길입니다(마 20:28, 딤전 2:6). 인간이 만든 제도나 보상은 죄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한 속전이 됩니다.


❖ 더럽히다 (טָמֵא / 타메)

 

뜻과 의미

‘타메(טָמֵא)’는 ‘부정하게 하다’, ‘더럽히다’는 뜻으로, 주로 의식적·종교적 정결 상태를 잃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청결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상태, 곧 ‘속된 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33–34절). 이는 피 흘림이 곧 그 땅을 부정하게 만들며, 그 부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땅에 거하실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그분의 백성 또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죄는 공동체뿐 아니라 그 삶의 자리마저 더럽힙니다. 따라서 성도는 일상 속에서도 영적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보혈로만이 진정한 정결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요일 1:7). 타락과 무분별한 행동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게 만들며, 공동체는 정결을 회복하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 절별 주해

❖ 22–23절 │ 실수로 인한 죽음, 고의와 구별되는 생명의 무게

 

이 절에서는 사람이 도구 없이, 또는 원한이나 미움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 경우에 대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는 앞선 16–21절에서 다룬 고의적인 살인과 명확히 대비되는 규정입니다. 특히 ‘미워함이 없이’, ‘우연히’, ‘보지 못하고’라는 표현은 율법이 죄의 동기와 의도를 철저히 구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행위의 결과만을 보지 않으시고, 그 동기와 마음의 상태까지 보시는 분이시며, 그만큼 정의는 섬세하고 균형 있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 절은 인간의 연약함과 실수를 전제로 한 자비로운 율법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 24–25절 │ 회중의 판결, 공동체 정의의 실현

 

회중은 도피성으로 도망한 자의 사건을 재판하여, 그가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면 복수자에게 넘기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야 한다는 규정이 주어집니다. 이 규정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회중의 판결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리하는 판단으로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도구입니다. 둘째, 대제사장의 죽음은 일종의 ‘속죄적 기한’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사건의 종료’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시간표로 제시됩니다.


❖ 26–28절 │ 성읍을 떠나는 자, 보호의 경계를 넘는 위험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자가 그 성읍의 경계를 벗어나면, 복수자가 그를 죽여도 죄가 없다는 규정이 나옵니다. 이는 도피성이 단순한 피신처가 아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제한된 공간’임을 강조합니다. 도피성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 질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 생명의 위협을 자초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그 경계를 지킬 것을 명하심으로써 질서 안에 거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십니다. 이는 곧 은혜의 경계 안에 머무는 삶,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영적 태도를 예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 29–30절 │ 판결의 원칙, 두 증인의 엄격한 기준

 

살인죄에 대한 형벌은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정할 수 없으며,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당시 고대 근동의 법률과는 구별되는 이스라엘 율법의 엄격성과 정의 추구의 원칙을 보여줍니다. 이는 무고한 자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공정한 장치이며,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연약하고 오류 가능성이 많은지를 전제한 조치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원칙은 신중한 판단과 정당한 증거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 31절 │ 생명의 속전은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은 살인자에 대해 어떤 속전(보상금)도 받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인간 생명의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기에, 그 어떠한 대가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현대의 생명 경시 풍조 속에서 다시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중요한 가치관을 제시합니다. 죄에 대한 값은 단지 대가를 치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공의로 다뤄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 32절 │ 거주지를 떠날 수 없는 이유, 회복을 위한 기다림

 

이 절은 도피성에 피신한 자가 대제사장이 죽기 전까지 속전을 내고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회복이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과 시기를 따라 이뤄져야 함을 뜻합니다. 도피성에 머무는 시간은 단순히 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정화와 반성,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의 질서 회복을 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때’를 정하시고, 그 안에서 회복의 질서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 33절 │ 더럽혀진 땅, 피로 인한 오염

 

하나님은 무죄한 피가 그 땅을 더럽힌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윤리적이며 영적인 현실을 포함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땅은 거룩해야 하며, 피 흘림은 그 거룩함을 해치는 범죄입니다. ‘피를 흘린 자의 피’로만 그 땅이 속죄될 수 있다는 말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기준과, 동시에 공의로운 회복의 길을 제시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흘리신 피가 모든 죄를 덮은 사건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 34절 │ 내가 거하는 땅, 거룩함의 기준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은 그 땅에 자신이 거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며, 그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민족의 윤리 수준을 높이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과 함께 사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 문화, 법과 질서 모두가 거룩해야 하며, 이는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언제나 거룩해야 합니다.

 


📖 묵상

본문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위한 도피성 제도, 그리고 그 안에서 보호받는 방식과 경계, 그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고의적 살인은 반드시 죄로 다뤄져야 하지만, 뜻하지 않게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생명을 보존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제도 안에는 인간의 연약함을 품으시되,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섬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도피성에 들어간 자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의 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전제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다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도피성 안에서의 기다림은 벌이 아니라 은혜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회복의 때를 준비하십니다.

 

도피성 밖으로 나간 자에게는 보호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질서 밖으로 나가는 자에게 생명 보호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 울타리 안에 거해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에게 이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실수와 죄로 인해 어그러진 우리 인생이, 도망쳐 숨을 곳이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품,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안에 숨은 사람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질서와 경계를 지키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복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은 자답게 다시 살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은 왜 대제사장의 죽음을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는 죄에서 풀려났고, 더 이상 그 죄 때문에 도망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조심스럽지만 담대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그분이 너의 도피성이시며, 너의 안전한 울타리다.”

 

그리고 묻습니다.

“혹시 그 보호의 경계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며,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방법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회복의 길도, 때도, 방법도 이미 준비해두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안에 머물며 기다릴 수 있는가, 혹은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제 방식대로 움직이려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머무는 은혜의 삶이 얼마나 복된지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회피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기다림, 도망이 아니라 은혜 안에 숨는 삶.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길입니다.

 


📖 말씀 _ "하나님의 품으심"

서론 │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뉴스로 가득합니다.

누군가가 실수를 하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 따라오고,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단 한 번의 실패로 요약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실수’라는 단어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회복’이라는 단어는 현실 속에서 낭만처럼 들립니다.

그저 “잘못했으면 책임져야지”라는 말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시대,

정의와 공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돌들이 날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민수기 35장 22–34절은 전혀 다른 시선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 피할 길을 마련하시고,

공동체가 감정을 앞세우지 않도록 ‘회중의 판결’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자비 사이의 긴장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그 사이에 공동체의 책임과 하나님의 은혜를 놓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가?”

라는 질문을 깊이 있게 다루어 보려 합니다.


본론 │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있는 은혜’의 구조

 

1. 죄의 결과와 마음의 동기를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22–25절)

 

본문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고, 도구가 손에서 날아갔고, 함께 있던 이가 죽었습니다.

문제는 죽음이 발생했다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만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죽음이 악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회중’이 판단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엄격하시면서도,

그 죄의 동기와 내면을 반드시 함께 들여다보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판결은 종종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보시되, 그 죄인을 그저 벌하지 않으시고,

그 마음속의 진실까지 함께 보십니다.

 

도피성은 그런 자를 위해 마련된 공간입니다.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그 생명을 보호하고 회복을 준비하게 하는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를 함께 들어야 합니다.

 

2. 은혜 아래 머물며, 책임을 배워야 합니다. (26–28절)

 

도피성으로 피한 사람은 판결 이후에도 일정 기간 그곳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 머무름은 은혜의 공간이자, 동시에 책임의 시간입니다.

도피성 밖으로 무단 이탈하면 다시 복수자의 손에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은혜조차도 질서 안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은혜는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유’가 아니라,

머물러야 할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는 책임으로 주어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 안에 머문다는 것은 단지 죄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를 넘어서,

이제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과정에 있다는 뜻입니다.

은혜 안에서 우리는 ‘기다림’을 배우고, ‘자기 성찰’을 배우고,

‘내 실수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3. 죄는 땅을 더럽히지만 예수님의 피는 정결케 합니다. (29–34절)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굉장히 무겁습니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피는 땅을 더럽힌다.”

그리고 “피 흘림은 피로써만 속할 수 있다.”(33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무겁고,

그 죄가 공동체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죄를 개인적인 실패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가 땅을 더럽히고, 공동체를 혼란케 하며,

그분의 거룩한 임재조차 거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도피성과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죄가 정결케 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흘려야 할 피를

자신이 대신 흘리신 분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도피성이 되며,

그분의 피가 땅을, 사람을, 공동체를 정결케 하십니다.


결론 │ 내가 누군가에게 도피성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에서 실수를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실수는 너무 커서 돌아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피하라. 내가 너를 품고 회복시키겠다.”

 

하나님은 도망치는 자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되돌아올 길을 마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누군가의 도피성이 되어줄 수 있겠니?”

 

우리 공동체 안에 실수한 이들이 있다면,

넘어진 자들, 말 한마디로 무너져 내린 자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를 남긴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향해 정죄의 돌을 던지기보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도피성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셨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곳에 진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입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부족한 저를 말씀 앞에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니, 제 안에도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제 자신도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죄책과 기억 앞에서 저는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제게 정죄의 손을 내미시지 않고,

‘도피성’이라는 은혜의 피난처를 먼저 마련해두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곳은 숨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자리임을 믿습니다.

 

주님, 저도 모르게 어지럽혀진 마음과 삶의 자리를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소서.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주님의 공의 앞에 머물게 하시고

자비 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도피성 되신 예수님,

주님의 죽으심이 저를 위한 대제사장의 희생이었음을 믿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 아래 오늘도 피하오니,

저를 품어주시고, 다시금 삶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간절히 소망하오니,

제가 누군가의 도피성이 되게 하소서.

정죄보다 품어주는 사랑, 몰아세움보다 회복을 돕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오늘 제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누군가에게 피난처가 되게 하시고

제 삶이 은혜의 성읍이 되게 하옵소서.

 

죄를 다루되, 사랑으로 회복시키시는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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