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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1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12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13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14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7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19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20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21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 본문 배경
❖ 개요
민수기 35장 중반부에 해당하는 오늘의 본문(9–21절)은 도피성 제도의 본격적인 규범을 다루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도피성’을 세우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도피성은 살인죄에 대한 공의와 은혜, 복수와 회복 사이의 긴장을 품은 제도로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법률적 정의와 공동체 보존을 위한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형벌을 위한 제도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실수와 부주의로 인한 죽음의 문제 앞에서 공동체 전체가 균형 있게 대응할 수 있는 ‘회복의 공간’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특히 ‘부지중의 살인’과 ‘악의적 살인’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그에 따른 공동체의 판단과 처리를 세세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 배경
이 시점은 여전히 모압 평지, 요단 동편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은 곧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법과 질서를 갖춘 사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복 이후의 삶, 곧 정착 공동체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는 흔히 ‘가문의 명예’나 ‘혈통의 정의’ 차원에서 자행되었습니다. 특히 고엘(go’el, 구속자)이라 불리는 ‘보복자’는 죽임을 당한 자의 친족으로서 살해자를 추적해 죽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는 제도화된 사법체계가 없던 사회에서 일종의 질서 유지 장치로 기능했지만, 자칫 무고한 이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위험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공동체의 판단 아래 분명한 절차와 보호체계를 갖춘 ‘도피성’을 마련하라고 하셨고, 이는 정착 이후 공동체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필수적인 명령이었습니다.
❖ 문화적 배경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피의 복수(blood vengeance)가 일반적이었습니다. 한 가족이나 집안 사람이 살해당하면, 그 복수를 수행할 의무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제도는 ‘명예’와 ‘복수’라는 두 문화적 가치 아래에서 움직였고, 감정과 충동에 따라 과잉 복수가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경우, 이러한 문화적 관습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으시되, 그 안에 ‘질서’와 ‘공정함’, 그리고 ‘자비’의 제도를 삽입하십니다. 도피성은 단순히 ‘숨는 곳’이 아니라, 공의로운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생명을 보호하는 중립지대이며, 그 안에서 회중의 판단에 따라 참된 정의가 세워지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전역에 도피성을 고루 분포시켜, 누구든지 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셨고, 이방인이나 거류인도 포함됨으로써 공동체의 정의는 민족과 신분을 넘어서 확장되는 특징을 갖습니다.
❖ 신학적 배경
이 본문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의와 자비’를 균형 있게 세우시는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시며,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16–21절). 그러나 동시에 실수로 인한 죽음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시며, 공동체를 통해 판결받을 기회를 보장하십니다(12절).
이와 같은 이중적 강조는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구속의 원리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철저하되, 그 정의를 통해 자비가 흘러가게 하시는 것이 성경적 질서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도피처 되신 복음’을 예표하는 제도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죄인을 위한 ‘은혜의 도피성’이 되셔서, 누구든지 그분께 피하면 정죄함이 없도록 하셨습니다(롬 8:1). 본문의 도피성은 단지 사회법적 장치가 아니라, 죄와 사망 앞에 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제도인 것입니다.
📖 본문 요약
민수기 35장 9–21절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매우 독특하고도 중요한 사회제도, 바로 도피성 제도에 대한 명령입니다. 이는 단지 실정법의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가 맞닿는 자리를 설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여섯 개의 도피성을 지정하라고 명령하십니다(10–13절). 그 목적은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자가 복수자의 손에서 보호받기 위함이며, 회중 앞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기까지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12절). 이 성읍은 단지 은신처가 아니라, 정의가 지켜지는 공간, 공동체의 생명 보호 장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도피성을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타국인과 거류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하십니다(15절). 이는 이스라엘의 율법이 민족적 배타성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의와 생명 존중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6절부터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규정이 이어집니다. 철 연장, 돌, 나무 등 살인을 행할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16–18절). 이는 단순한 결과 중심이 아닌, 동기의 고의성과 도구의 치명성에 근거한 판단 원칙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19–21절에서는 피를 보복하는 자에 대한 규정이 주어집니다. 당시의 문화에서는 피해자 가족이 법적 복수의 권리를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복수조차도 개인 감정이 아닌 공동체적 판단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뤄지도록 설계하십니다. 특히 미워함, 기회 엿봄, 악의적 손해를 가한 경우 등, ‘동기’와 ‘태도’를 세밀하게 구분하여 명백한 살인으로 규정하십니다(20–21절).
이 본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단순한 혈연이나 법적 질서에 기반한 사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공의의 기준을 따라 움직이는 거룩한 공동체임을 선포합니다. 또한 도피성이라는 제도는 ‘은혜와 정의’가 균형을 이루는 하나님의 통치를 잘 드러내며, 인간의 실수와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며, 보호하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죄 지을 수 있으나, 예수님 안에서 은혜의 도피처를 발견하고, 동시에 그분 앞에서 공의의 판단도 받게 됩니다. 이 도피성 제도는 인간 공동체 안에 반드시 필요한 ‘정의의 온기’와 ‘자비의 원리’가 성경 속에서도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 붙잡는 말씀
12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얼마나 정밀하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오늘 본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동시에, 정의를 실현하는 제도를 세우십니다. 도피성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정의의 공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실수를 대하시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되, 그 생명의 경중을 제대로 따져 공정하게 판단하십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게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시는 하나님. 그분의 공의는 무자비한 심판이 아니라, 반드시 진실을 드러내고 회복을 이끄는 판결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 도피성 제도는 공동체 전체가 정의와 자비를 함께 세워가는 구조입니다. 피를 보복하는 자가 법 밖에서 분노로 움직이지 않도록, 공동체는 도피성을 세우고 보호해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감정과 반응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질서를 유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사회, 그리고 신앙 공동체 안에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함께 붙들고 있는가?”
“회복의 기회를 허락하는 공의, 생명을 보호하는 질서를 세우고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언제든 도피할 수 있는 영원한 성읍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그 ‘도피성’이 되어주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정죄보다 회복의 길을 열어주고, 고의가 아닌 실족의 상황 속에 있는 자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누군가에게 도피성이 되게 하소서.
공의와 자비가 흐르는 자리, 생명을 품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 가운데, 도피성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을 따라 정의와 자비가 함께 흐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 단어 연구
❖ 도피성 (עִיר מִקְלָט / 이르 미클랏)
✦ 뜻과 의미
‘이르 미클랏(עִיר מִקְלָט)’은 히브리어로 ‘도시’(이르)와 ‘피난처’(미클랏)의 합성어입니다. ‘미클랏’은 동사 ‘칼라트’(קלָט, 피하다, 피신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보호받기 위해 피하는 장소를 뜻합니다. 이는 고의가 아닌 우발적 행위로 인해 위협을 받게 된 자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피난처로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민수기 35장에서 도피성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자가 피할 수 있는 법적 공간으로 제도화됩니다(11절). 회중의 판결 이전에 복수자의 보복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보호처이며, 총 6개 성읍이 지정됩니다(13–15절). 이는 단순히 은신처가 아닌 ‘공적 심판 전까지의 보호권역’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 신학적 의미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피난처를 예표합니다. 히브리서 6:18은 “우리가 피하여 앞에 놓인 소망을 잡으려고 하는 자”라고 표현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보호를 도피성과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회중의 판결로 실현되고, 그 전에 자비는 생명 보호의 장치를 통해 보장됩니다. 이는 신약 성도들에게 ‘심판 이전의 은혜의 피난처’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묵상하게 합니다.
❖ 살인자 (רֹצֵחַ / 로체아흐)
✦ 뜻과 의미
‘로체아흐(רֹצֵחַ)’는 히브리어로 ‘살인자’, 즉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뜻하며, 주로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사용됩니다. 이는 ‘라차흐’(רָצַח, 살해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며, 의도적 혹은 의도하지 않은 경우 모두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은 살인을 저지른 자를 구체적으로 구분합니다. 철 연장, 돌, 나무 등으로 사람을 죽인 경우(16–18절), 혹은 미움이나 악의를 품고 죽였을 경우(20–21절), 모두 ‘살인자’로 규정되며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행위의 결과가 아닌 의도와 맥락에 따라 판단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 신학적 의미
성경은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권자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죄이며, 반드시 심판받아야 합니다(창 9:6).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는 무고한 피를 흘리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시며, 공동체는 그 공의를 실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정의와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영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 회중 (עֵדָה / 에다)
✦ 뜻과 의미
‘에다(עֵדָה)’는 히브리어로 ‘회중’, ‘집단’, 또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모인 백성의 모임으로, 성경 전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에서 회중은 도피성에 피한 자의 사건을 판단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12절). 회중은 단순한 다수의 집단이 아니라 공적인 판단권을 가진 공동체적 재판 기관입니다. 이들은 도피자의 살인이 우발적이었는지, 고의적이었는지를 심사합니다.
✦ 신학적 의미
이스라엘 공동체는 단순한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 아래 사는 백성의 공동체를 의미하며, 신약의 ‘에클레시아’—즉 교회와 연결됩니다. 회중이 판단하는 일은 단순히 사회적 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리하여 집행하는 영적 사명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진리와 사랑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치유할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 복수할 자 (גֹּאֵל הַדָּם / 고엘 하담)
✦ 뜻과 의미
‘고엘 하담(גֹּאֵל הַדָּם)’은 직역하면 ‘피를 위한 구속자’이며, 보통 ‘피의 복수자’로 번역됩니다. ‘고엘’(גֹּאֵל)은 ‘속량자’, ‘구속자’라는 뜻으로, 친족이 가문의 권리나 생명을 회복하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하담’은 ‘그 피’로서, 피 흘림에 대한 책임을 가리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본문에서는 살인자가 도피하지 못한 경우, 또는 고의적 살인으로 판명된 경우에 복수할 자, 곧 고엘 하담이 그를 죽일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19절, 21절). 이는 당시 사회에서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 가문 차원의 정의 구현 방식이었습니다.
✦ 신학적 의미
신학적으로 ‘고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피값을 갚으시는 구속자의 역할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 보아스는 룻을 위한 고엘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신 참된 고엘 하담이 되십니다(사 63:4 참조). 본문은 복수의 권한이 함부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전제하며, 결국 그 판단은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 판결 (מִשְׁפָּט / 미쉬파트)
✦ 뜻과 의미
‘미쉬파트(מִשְׁפָּט)’는 ‘재판’, ‘정의’, ‘법적인 판단’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공의롭게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율법과 연결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살인자가 도피성에 들어갔다 해도 회중 앞에서의 판결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명시합니다(12절). 이는 도피성의 보호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님을 뜻하며, 판단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와 율법에 근거한 판단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 신학적 의미
‘미쉬파트’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중심 가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고 정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며(시 9:8), 공동체도 그 정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의한 재판에서 고난을 받으셨지만, 동시에 최후의 심판주로서 모든 영혼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판결 기준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 절별 주해
❖ 9절 │ 다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정의를 위한 계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민수기 전반부와 동일한 계시 패턴으로, 모세를 통해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시점은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으로, 땅의 분배뿐 아니라 사회 정의와 생명의 보호 원칙까지 완성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반영됩니다. 하나님은 공동체의 정치적 질서뿐 아니라, 법적 정의까지도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 10–11절 │ 도피성 제도,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구현하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도피성을 마련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도시 설계가 아니라,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땅에서 살인과 보복이 난무하지 않도록, 공정한 판결과 중재의 공간을 반드시 갖추라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가 조화롭게 만나는 장소입니다.
❖ 12절 │ 회중의 판결 전, 복수자의 손에서 생명을 보호하라
도피성의 첫 목적은 복수자의 손에 의해 무고하게 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가족 복수권(go’el ha-dam)이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전제하며, 하나님은 충동적 복수를 막고 공적 판결을 우선하게 하십니다. 이는 정의의 실현이 단순 감정이나 보복이 아닌, 공동체 내의 합법적이고 신중한 판결을 통해 이뤄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로우시며, 무고한 피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 13–15절 │ 여섯 도피성, 전 이스라엘을 위한 자비의 균형
하나님은 여섯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시고, 그 가운데 세 곳은 요단 동편, 나머지 세 곳은 서편에 두게 하십니다. 이는 공간적 형평성을 고려한 사회 구조 설계이며,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가까운 위치에 자비의 피난처가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특히 이 제도는 이방인과 나그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 정의임을 드러냅니다.
❖ 16–18절 │ 고의적 살인의 기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
하나님은 철 연장, 돌, 나무 등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해 사람을 죽인 경우를 모두 살인죄로 규정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결과만이 아닌, 살인의 의도와 수단에 따라 판단해야 할 법적 원칙을 보여줍니다. 고의적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한 범죄이며, 사회 전체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매우 소중히 여기시며, 생명에 대한 존중은 공동체 질서의 근간임을 가르치십니다.
❖ 19절 │ 복수자의 권한과 공적 정의의 충돌
본문은 ‘피를 보복할 자’—즉, 고엘 하담—가 살인자를 죽일 수 있다고 밝힙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의 복수 관습을 하나님이 용인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전제는 반드시 ‘회중의 판결’ 이후입니다. 하나님은 공적 절차를 통해서만 정의가 실행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며, 무질서한 복수는 금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정의의 실현은 공동체적 책임 속에서 다뤄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 20–21절 │ 살인의 동기, 마음의 미움까지 판단하시는 하나님
이 절에서는 살인의 도구보다도 마음의 상태와 동기를 중심으로 살인 여부를 판단하십니다. 미움, 앙심, 적개심 등이 행동의 뿌리가 될 경우, 그 살인은 고의적이며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이 아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단지 범죄의 결과뿐 아니라 그 행위가 비롯된 내면의 동기까지도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하신 말씀(요한일서 3:15)과도 연결됩니다.
📖 묵상
도피성, 그곳은 실수로 사람을 해친 이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허락된 임시의 피난처였습니다.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을 때, 복수자의 손에서 그를 지켜주는 장소.
단지 몸을 숨기는 곳이 아니라, 심판과 책임 사이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잠시 보존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이 제도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가족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도,
고의적인 죄와는 분명히 선을 그을 수도 없는 제도였기에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한계 속에서도 인간의 분노와 상처가 더 커지지 않도록
정의와 자비가 충돌하는 그 접점에서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도피성의 그림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죄를 피해 숨는 임시방편의 성이 아니라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완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숨을 수 있습니다.
죄의 무게에 짓눌릴 때도, 억울한 일에 마음이 터질 것 같을 때도, 사람의 손가락질과 내 안의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도
예수님은 “이리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이십니다.
심판으로부터, 정죄로부터,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고 싶은 우리를 위해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도피성이 되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숨을 곳은 그 어디도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다시 회복을 향해, 은혜를 따라 걸어가야 할 우리 모두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 말씀 _ "피할 성, 머무를 은혜"
서론 │ 불안한 마음에 피할 곳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도망친다는 말이 꼭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가끔은 너무 무거운 책임 앞에서, 너무 복잡한 갈등 속에서,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앞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마음을 돌볼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실수를 인정하기도 어렵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분위기도 잘 보이지 않죠.
공동체는 점점 더 빠른 판단과 단호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움츠러들고,
“어디로 피해야 하나요?” 묻고 싶어집니다.
오늘 본문인 민수기 35장 9절에서 21절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발적으로 죄를 지은 자, 살인을 저질렀으나 의도하지 않았던 자들을 위해 도피성을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따뜻한 그림입니다.
죄를 보시되, 그 죄인을 정죄 이전에 보호하시는 하나님.
판단을 유보하고, 진실을 들을 공간을 마련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이 도피성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궁극적 피난처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의탁한 자들, 회피가 아닌 회복을 위한 피난,
은혜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
오늘 그 자리에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함께 듣고자 합니다.
본론 │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은혜
1. 부지중의 넘어짐에서 은혜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 (9–1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도피성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이들이 복수자의 손에 죽지 않도록 피할 수 있는 성읍을 마련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이며 정의와 공의가 어우러진 율법의 질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를 주고, 무너뜨리고, 때로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부지중에 저지른 죄는 우리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 처한 자에게도 ‘회복의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도피성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제도입니다.
정죄하고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도피성이 결코 죄의 면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곳은 회피가 아니라 진실앞에 나아가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도망쳐 숨어들라는 말씀이 아니라 회개하고 회복되라는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피난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죄와 실수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피하여 새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품은 회피의 장소가 아니라 회복의 장소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나약함을 대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입니다.
2. 살인의 책임, 죄의 무게를 잊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16–18절)
하나님은 동시에 ‘살인자의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철 연장으로, 돌로, 나무 도구로 사람을 쳐죽인 경우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명백한 고의적 살인에 대한 엄중한 하나님의 판결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생명에 대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 소중함은 하나님이 직접 보호하시는 영역입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고의로 빼앗는 일은 단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간주됩니다.
이 말씀은 단지 옛 율법의 엄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죄를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고 그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옮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3. 악의를 품은 행동, 마음의 죄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 (19-21절)
본문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악의를 품고 저지른 행위들에 대해 엄격하게 말씀하십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밀치거나, 기회를 엿보아 해를 끼치거나, 손으로 때려 죽이는 행위는 모두 살인으로 간주됩니다.
눈에 보이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 동기와 태도까지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욕하는 자마다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마 5:22)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미움과 시기, 판단과 악의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숨길 수 없는 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내면은 치유되고, 죄의 뿌리는 뽑히며, 악의는 은혜로 다스려집니다.
도피성은 단지 외적인 피신처가 아니라, 마음까지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품을 상징합니다.
결론 │ 도망이 아닌 회복의 길로
우리는 인생을 살다 보면 피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실수 앞에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 앞에서
혹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결과 앞에서 우리는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도망의 길’을 여신 것이 아니라 ‘회복의 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도피성은 죄를 숨기는 곳이 아니라, 정직하게 마주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품은 회피의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품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히브리서 6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앞에 있는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신한 자로서 큰 위안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이 되셨습니다.
죄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분, 상한 마음으로 살 길을 찾는 자들이 안식할 수 있는 참된 피난처.
우리가 진정으로 도망쳐야 할 곳은 그분의 십자가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은혜를 입으며 다시 살아나는 새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도망친 그곳에서 우리는 오히려 새롭게 살아납니다.
정죄의 소리가 멈추고, 복수의 위협이 사라지고, 거기에서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외면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품어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오늘도 부지중에 상처를 준 일로 마음이 무거운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께로 피하십시오.
그분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도피는 실패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서서 나의 연약함과 죄악을 마주합니다.
부지중에, 의도하지 않게,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준 적이 많았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도 누군가를 넘어뜨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피할 길을 열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도피성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묵상합니다.
정죄보다 회복을, 심판보다 자비를 먼저 생각하신 그 사랑 앞에 무릎 꿇습니다.
죄를 은폐하려는 자가 아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 되게 하소서.
상처를 숨기려는 자가 아니라, 상처를 주 앞에 드러내고 치료받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당신이 나의 도피성이 되어주셨음을 믿습니다.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내가 주께 달려갈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지금도 세상은 잘못을 저지른 자를 비난하며 끝까지 몰아붙이지만,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주님, 제가 다시 주께로 도망하겠습니다.
죄책감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으로 피신하겠습니다.
도피성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처럼,
저도 주의 품 안에서 다시 회복되고, 다시 사랑하며, 다시 살아가는 자 되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도 주변에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의 은혜를 전하는 피난처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도망치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신 주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셨던 주님,
이제 다시는 숨지 않고, 다시는 피하지 않고
주의 품 안에서 다시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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