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v. 22-24]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v. 25-28]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v. 29-33]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v. 34-36]
▣ 본문내용 요약
하나님은 정하신 뜻대로 예수님을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예언처럼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높이시니,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제자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 본문주해
22~24절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행하신 역사
이 세 구절은 나사렛 예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서술하는데, 세 문장의 주어는 모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기사와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드러내셨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셨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려 내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공간에서 일어난 사실로만 예수님을 안다면 절반만 아는 것입니다. 역사의 뒤편에서 하나님이 이 일에 뜻을 정하고 이루어 오셨습니다. 베드로가 설교 서두에 예수님을 내세우면서도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한 이유는 청중이 유대인들임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야말로 유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확고한 신앙적 전제입니다.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연 다음, 본격적인 복음 선포로 나아갈 것입니다.
본문 내용만 보면, 베드로의 기독론은 원시적이고 초보적입니다.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재(pre-existence나 기적적 탄생, 신적 능력에 대해 듣습니다. 반면 베드로의 설교에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동태는 곧 '나사렛 예수'의 수동태를 만듭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느 수순에 따라 예수님이 증언되고, 내어 준 바 되어 죽임 당하고, 사망으로 풀려나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교에서 우리는 고 기독론의 토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 즉 신적 승귀의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25~28절 시편에 예언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25~34절은 24절의 부연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망에서 풀어내신 일의 성경적 근거로 시편 16편 8절~12절을 인용합니다(25~28절).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은 70인역으로, 히브리어 본문의 어휘와 구문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둘을 비교하기 위해 히브리어 본문을 대본으로 삼은 개역개정의 시편 본문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의 정황에서 '나'는 다윗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시를 예수님에 관한 예언으로 간주했으므로 사도행전의 정황에서 '나'는 예수님이 됩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모든 동사가 미래 시제인 반면, 이레인역은 과거 혹은 현재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일어나기로 된 일이 이미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시편에 '예언'된 내용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주장합니다. 히브리어와 70인역 본문 사이에 다른 차이들도 보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나의 영'이 70인역에 '나의 혀'로 번역되었고, 히브리어 '스올'은 그리스어 '하데스(음부)'로 번역되었습니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멸망'이 70인역에서 '썩음'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27절 상반절에서 '음부에 버려둠'을 당하지 않은 것이 '영혼'이었다면, 27절 하반절의 '썩음'은 영혼보다는 몸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성서적으로 설명합니다.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매장된 예수님은 부패해 소멸하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29~33절 다윗 예언의 성취이신 예수님
이제 베드로는 인용했던 시편 말씀을 주석합니다. 예수님 부활의 사실성과 필연성을 증명하기 위해 세 가지 논증을 시도합니다.
첫째, 이 시가 '나'의 부활을 예언했는데, 그 '나'가 다윗은 아니다.
둘째, 다윗이 아니라면 그의 자손 중 한 사람, 메시아여야 한다.
셋째, 그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다.
먼저 베드로는 다윗을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조상'과 '선지자'로 규정합니다. 부활에 있어서 그의 역할을 부각하기 위해 다른 각도에서 그의 신학적 역할을 조명한 것입니다. 다윗을 유대인들의 '조상'으로 부른 사례는 성경에서 이곳이 유일합니다. AD 1세기에 다윗의 묘가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사실은 요세푸스를 비롯한 여러 문헌을 통해 증명됩니다. 명백하게 다윗은 죽었고, 지금까지 죽은 채로 있습니다. 그러니 '썩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다윗일 수는 없습니다.
구약에서 다윗이 '선지자'로 불린 적은 없지만, 신약시대 문헌인 쿰란 문서와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그렇게 나옵니다. 그는 선지자 나단을 통해 전달된 신탁을 '알았습니다'(30절). 그에게 약속된 자손이 '나사렛 예수'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더라도, 부활이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 장차 자신의 후손이 왕위에 오를 메시아의 운명을 가졌음은 알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선지자로서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31절).
또한 본문에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즉 열둘과 거기 모인 120명이 빈 무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32절).
둘재,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아버지께 받은 약속대로 성령을 부어 주신 사건을 '너희', 즉 예루살렘 주민들이 목격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다른 방언'을 말한 기적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34~36절 논증의 요약과 선포
베드로는 이제까지 이어 온 논증을 부연하고 요약합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고, 33절에서 말하듯 '승천'은 '부활'의 논리적 귀결이 됩니다. 다윗은 부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약속이 시편 110편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하나님이 '내 주' 메시아에게 말씀하셨다. '너' 메시아는 죽음에서 일으킴 받고 하늘로 들림 받아 '나'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 이 메시아, 이 주님을 '너희' 이스라엘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
▣ 본문의 메시지
본문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베드로의 설교 중 두 번째 부분입니다. 본문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베드로는 시편 16편과 110편, 그리고 사무엘상 7장을 주석하는 성서적 논증을 펼칩니다. 베드로의 시편 16편 주석 방식은 독특합니다. 이 시에서 '나'는 당연히 저자 다윗이므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 역시 다윗에 대한 내용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다윗이 이미 죽어 그 무덤이 예루살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유대인의 한 '조상'이라고 불립니다. 무덤이라는 증거 때문에 다윗이 시편의 본문에서 '나'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면, 부활의 예언이 적용될 '나'는 누구일까요?
이 퍼즐은 예수님과 다윗의 관계를 통해 풀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번에 '선지자'로 불립니다. 사무엘하 7장 말씀에 따라, 선지자 다윗은 자기 자손 중 한 사람이 자기 위에 앉을 것을 '알고 미리 보았'습니다. 유대적 세계관에서 영생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자손들을 통해 실현된다고 믿어졌고, 그런 의미에서 자손은 곧 자신의 다른 존재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시편 16편의 '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승천을 설명합니다. 시편110편에서 '내 주'는 그의 "원수로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주'의 우편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왕 다윗이 곧 '내 주'인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그는 무덤에 묻혀 하늘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목격한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자 기름 부음 받아 그 위에 앉으실 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내 주'가 되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와 역사적, 정황적 증거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산거, 이 세 가지를 절묘하게 연결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논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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