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REBUILD MINISTRY
【Bible'Story】/[생명의 삶] 요한복음ㅣ2025년

[생명의 삶] 사도행전 6장 8절-15절 _ 2023. 7. 2(주일)

by LogosLab Steward 2023. 7. 3.

▣ 본문

8 스데반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 사람들 가운데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9 그런데 그때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와 아시아 등지에서 온 유대 사람들로 구성된 이른바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스데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스데반과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지만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모두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11 그러자 그들은 돈을 주고 몇몇 사람을 시켜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들었다”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12 그들은 이렇게 백성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을 선동해 스데반을 붙잡아 공회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13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거짓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 거룩한 곳과 율법에 대해 험담을 그치지 않고 계속해 왔습니다. 
14 우리는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무너뜨리고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관습들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공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했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 8-15절, 우리말성경]

 

▣ 본문내용요약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해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자유민 중 어떤 이들이 그와 논쟁하기 시작합니다.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당해 내지 못하자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하기 시작합니다.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은 이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 본문주해

8절 은혜와 권능의 사람 스데반

     내용일곱 중 한 사람인 '그'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했습니다. '은혜와 권능'은 여기서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은혜(κσρισ,카리스)'의 용례와 의미는 매우 다채롭지만, 여기서는 그것과 같은 어원을 가지는 '은사(καρισμα, 카리스마)'에 가까워 보입니다.

'권능'은 기적을 행하는 '신적능력'이라는 의미로 사도행전에 여러 번 나옵니다. 사도들과 동일하게 스데반도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씁니다.

 

9~10절 스데반의 논쟁 상대자들

     스데반의 복음 사역을 비판하고 대적한 세력은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두 그룹이 있었는데, 하나는 '자유민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길리기아와 아시아 출신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자유민은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들을 일컫는데, 로마시대 자유민 중에는 유명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황제나 원로원 의원의 소속으로 있던 노예들은 해방될 때 많은 재산과 시민권, 공직까지 부여받곤 했습니다. 

9절의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은 북 아프리카 지역 출신 사람들을 뜻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그 지역에서 노예로 있다가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반면 하반절의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신분을 지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 네 그룹은 예루살렘에 그들만의 예배와 신앙생활을 위한 회당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1913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테오도시오스 비문'은 그러한 회당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75cm X 41cm 크기의 직사각형 석회암 돌판에 새겨진 열 줄의 그리스어 문장에는 회당을 건축하는 데 기음을 출연한 테오도시우스 베테누스라는 사람이 언급된다. 그 건물 안에는 외국에서 방문한 사람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토착 유대인들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오히려 스데반을 공격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헬라화된 유대인 중 보수적인 유대교 신앙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11절 모세와 하나님을 모욕한 혐의

     자유민 출신의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매수했습니다. '매수하다'라고 번역된 동사 ύποβάλλειν(휘포발레인)은 '은밀하게 부추기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스데반에게 덮어씌우려는 혐의는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함'입니다. 이어지는 스데반의 설교(7장)를 살펴보면 이 혐의에 대한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한다는 비난을 받고 했습니다.

 

12절 공회에 세워진 스데반

     이 문장의 주어도 11절처럼 자유민들의 회당에 속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συγκινειν, 슁키네인)'했습니다. 이 단어는 11절의 ύποβάλλειν(휘포발레인)보다 더 노골적이고 본격적인, 대규모 선동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까지 동원해 스데반을 체포하고 공회에 세웠다. 이것도 역시 에수님이 체포당하시고 심문받으신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입니다. 

 

13~14절 두 가지 혐의

     예수님이 재판받으실 때처럼 스데반을 고소하기 위해 '거짓 증인들'이 나섭니다. 그들은 스데반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나사렛예수가 성전을 허물고 모세의 규례를 변경할 것이라고 스데반이 말했다는 것인데, 일단 예수님이 그렇게 주장하신 적이 있는가? 볼 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감람산 강화'를 통해 성전 파괴를 예고하셨습니다. 그 파괴는 이방인 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 예수님 자신이 성전을 허물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성전파괴를 모의한 죄로 고소당하셨는데(마 26:61) 거짓 증언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모세 율법을 바꾸려고 했다는 혐의는 어떤가? 율법의 몇몇 개별조항들에 대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전통적 해석과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정결례에 관한 과격한 주장이 한 군데에 나오지만(막 7:14) 누가는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죠. 반면 안식일 준수에 대해 예수님은 기존 해석을 깨뜨리는 대안적 입장을 가르치셨습니다(눅 6:1~11; 13:10~17; 14:1~6). 예수님의 의도는 율법 폐지가 아니라 완성에 있었습니다 (마 5:17). 즉 모세 율법을 바르게 해석함으로써 율법의 궁극적 수여자인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내세워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피력했을까? 그는 모세 율법에 대해 어떤 비판적, 부정적 관점도 피력하지 않았습니다(7장). 오히려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지 않은 이스라엘의 과오를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성전에 대한 스데반의 입장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경배했던 금송아지처럼, 성전도 손으로 지은 것(7:41, 48)에 불과하다고 스데반은 말합니다. 즉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독점적, 배타적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5절 천사의 얼굴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한 사람들에게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창 33:10; 출 34:29-35). 스데반은 공회 앞에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미 천사의 얼굴과 같은 광채를 띠었고, 설교를 마쳤을 때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7:55). 하지만 공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이를 목도하면서도 감동을 받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의 메시지

     앞 단락에서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 일곱 지도자를 뽑아 봉사에 전담하게 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 중 하나였던 스데반은 사도들과 거의 같은 활동을 하면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일곱 지도자들이라고 해서 사도들처럼 기도와 말씀 사역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고자 한 것이지, 다른 이들에게 기도와 말씀 사역을 금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사도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음으로써 어느 사도보다 앞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체포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처럼 스데반도 너무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지혜와 성령의 힘을 당해낼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논리나 말솜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던 것처럼, 스데반에게는 성령의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결국 그들은 스데반을 잡기 위해 거짓 증언과 선동을 동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길 때도 그리하였지요. 결국 거짓증언은 활개를 쳤고 군중은 선동당했습니다.

     스데반이 받은 혐의는 종교적 전통과 권위를 거슬러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이든 성전이든 화석화된 의식과 제도, 상진은 그저 유지하고 명맥을 잇는데 의의를 찾는 초라한 껍데기가 되고 맙니다. 공회는 공정한 재판과 법 집행을 제쳐 두고 스데반을 처형하기 위해 일부 헬라파 유대인들과 합세합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는 발상은 타락한 권력과 종교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병증입니다. 결국 그들은 목적을 이루게 되겠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부당하게 재판받아 죽어 간 스데반의 순교를 받으셔서 구원 역사의 놀라운 반전의 전기로 삼으십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