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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Story】/[생명의 삶] 요한복음ㅣ2025년

[생명의 삶] 사도행전 6장 1절-7절 _ 2023. 7. 1(토)

by LogosLab Steward 2023. 7. 1.

▣ 본문

이 무렵 제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때 그들 가운데 그리스파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 사람들에 대해 불평이 생겼습니다. 매일 음식을 분배받는 일에서 그리스파 유대 사람 과부들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열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분배하는 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사역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알려진 사람 일곱 명을 뽑으십시오. 그러면 이 임무는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유대교로 개종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고 사도들은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널리 퍼져 나갔으며 이로써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도 많이 늘었고 더욱이 수많은 제사장들도 이 믿음에 순종하게 됐습니다. [v. 1-7, 우리말성경]

▣ 본문내용 요약

   헬라파(그리스파) 유대인들이 구제 문제의 갈등으로 인해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합니다. 열두 사도는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칭찬받는 일곱 사람을 택하여 접대하는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이에 스데반을 비롯해 일곱 사람을 세워 안수하고 이로 인해 갈등은 해소되고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지고 제자가 더 많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 본문주해

1절 헬라파와 히브리파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함으로 ‘제자’가 더 많아지게 됩니다. 이들은 사도들처럼 예수님의 지상 사역 시기에 따르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순절 이후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도 일컫습니다. ‘제자’라는 용어는 사도행전에서 이곳에 처음 등장하지만 이후 27번이나 더 사용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독특한 공동체였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재산과 소유를 모아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쓰는(2:42-46) 경제저 일치를 실현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헌금을 받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역할도 사도들의 몫이었습니다(4:35).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도들의 역량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어떤 사람들은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매일의 구제에서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요인 하나가 상황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그것은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갈등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 교회의 회원은 모두 유대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일상생활에서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헬라파'라고 칭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디아스포라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팔레스타인에서만 생활했고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히브리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식량 배분에서 누락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헬라파 과부들이었습니다. 이 일로 헬라파는 그들 가운데 불만이 생겨났고,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2~4절 지도자를 세우자고 제안함

     열두 사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제자를 모았습니다. 공동체의 재정과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말씀 가르치는 일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구조적 문제를 풀기 위해 재정과 살림을 섬길 사람 일곱 명을 세우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도들이 일방적으로 지명하는 대신 회중이 어떤 조건에 의해 '택'하도록 했습니다. 여기 쓰인 헬라어 동사 έπισκέπτομαι(에피스켑토마이)는 '잘 살펴 찾다'라는 뜻인데 택하는 조건 중 하나로 지도자는 우선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자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만 충만해서도 안되고, 지혜만 뛰어나서도 안됩니다. 상호 보완적인 두 자질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으로 '성령 그리고 지혜'의 순서입니다. 지혜가 먼저가 아니라 성령이 가장 먼저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기준은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몇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많은 사람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되고 검증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대중의 인정과 인기만으로 지도자를 뽑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또한 대중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지도자의 모습도 곤란합니다. 

     그렇게 사도들은 택하여진 일곱 명의 지도자들에게 '봉사' - διακονία(디아코니아) - 맡기고,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게 될 것입니다(4절). 사실 헬라어로 이 둘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역'이라고 번역된 단어로 원문으로는 διακονία(디아코니아)다. 봉사의 내용이 다를 뿐, 두 단어 모두 봉사라는 뜻을 가졌고, 동사로 쓰입니다. διακονία(디아코니아)를 담당할 일곱 사람 뒤에 '집사'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 않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어디에도 스데반이나 빌립을 '집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사실 21장 8절에 '일곱 집사'라는 번역은 원문에 '집사'에 상응하는 말이 없기 때문에 오역이 됩니다. 그 구절에서 빌립은 '전도자' - εύαγγελιστής(유앙겔리스테스) - 로 불리는데. 이 명칭은 신약 다른 곳에서 교회의 공적 직분의 하나로 간주됩니다(엡 4:11; 딤후 4:5).

 

5절 일곱 지도자의 이름

     사도들의 말을 '무리'는 좋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무리가 뽑은 일곱 사람의 명단을 보면, 스데반이 첫째고 니골라가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헬라어로 보면,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는 단수형으로 스데반을 단독으로 수식합니다. 이어 나오는 여섯 명도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문법적으로 그 서술은 스데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참고할 사항입니다.

     또한 선발된 일곱 지도자의 이름은 하나같이 헬라식입니다. 브로고로와 디몬을 제외하고 다섯 명은 당시 헬라인들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 그들이 헬라파를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유대인 중 헬라파이든 아니든 헬라식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헬라파의 불평이었던 만큼, 그 해법으로 헬라파 일곱 사람을 선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니골라에 대해서는 본래 안디옥 출신(이방인)이었다가 유대교로 '입교(개종)'했다는 서술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다른 여섯 명은 혈통적, 종교적으로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6절 일곱 지도자에게 안수하다

     무리는 사도들 앞에 일곱 사람을 세웠습니다. 동사 '기도하다'와 '안수하다'의 주어가 사도들인지 무리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후자로 보는 것이 헬라어 구문 구조상 더 자연스럽습니다.

     '안수'를 고위 직분자들의 독점적 권한으로 보는 관점은 휴대 교리의 산물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한 것을 보면 안디옥 교회 전체였습니다(13:3). 

 

7절 제자의 수가 많아지다

     안팎으로 닥친 위기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는 양적으로 더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수적 증가를 언급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그만큼 예수 공동체의 흡인력이 강했음을 시사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 본문의 메시지

    예루살렘 교회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동안 공동체는 외적인 압박과 내적인 위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양적,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위기는 어디까지나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생겨나고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공동체는 지리적, 민족적 범위를 한 단계 더 넓혀 유대 전역과 사마리아 지역의 헬라화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확장 국면의 단초가 된 이야기, 즉 일곱 지도자가 세워진 경위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의 긴장은 유대 사회에 오랫동안 상존하던 현상이었습니다. 포로기와 하스모니아 왕조를 거치면서 많은 유대인이 지중해 전역으로 흩어졌고,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헬레니즘과 대립하거나 타협하면서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디아스포라 본토 유대인들 사이에 교류와 소통은 계속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예루살렘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생겨났을 때, 그 안에는 갈릴리와 유대 출신의 제자와 새로 가입한 디아스포라 출신의 제자들이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르며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그룹의 견제는 지금껏 성령의 은혜를 통해 가려져 있었는지 모릅니다. 갑자기 커져 버린 공동체의 필요를 열두 사도가 모두 섬기지 못하자, 두 그룹의 그간의 묵은 긴장이 불평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문제 앞에 사도들은 사람을 세우기로 하고 동역함으로 공동체에 존재하던 갈등의 깊은 골을 메워 나갔습니다. 이제 그들은 한 주님을 모시는 한 몸 된 제자 공동체로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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