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개역개정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마음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리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어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에게 쓸 물건을 사라 하시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21 After he had said this, Jesus was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 “Very truly I tell you, one of you is going to betray me.”
22 His disciples stared at one another, at a loss to know which of them he meant.
23 One of them,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was reclining next to him.
24 Simon Peter motioned to this disciple and said, “Ask him which one he means.”
25 Leaning back against Jesus, he asked him, “Lord, who is it?”
26 Jesus answered, “It is the one to whom I will give this piece of bread when I have dipped it in the dish.” Then, dipping the piece of bread, he gave it to Judas, the son of Simon Iscariot.
27 As soon as Judas took the bread, Satan entered into him. So Jesus told him, “What you are about to do, do quickly.”
28 But no one at the meal understood why Jesus said this to him.
29 Since Judas had charge of the money, some thought Jesus was telling him to buy what was needed for the festival, or to give something to the poor.
30 As soon as Judas had taken the bread, he went out. And it was night.
📖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직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괴로워하시며 제자들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21절).
하지만 제자들은 누가 그 일을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합니다(22절).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서 식사하던 요한에게
배신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도록 요청합니다(24-25절).
예수님께서는 빵을 찍어 주는 사람이 배신자임을 알리셨고,
그 빵을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26절).
그 순간 사탄이 유다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했고,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돈궤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돈을 쓰러 나가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28-29절).
유다는 빵을 받은 후 곧바로 나갔고,
성경은 의미심장하게 “밤이러라”(30절)라는 표현을 덧붙이며
유다의 행동이 영적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암시합니다.
📖 오늘의 핵심 구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요 13:27)
이 구절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일이 단순한 인간적인 배신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3년을 함께했지만,
결국 예수님이 아닌 자신의 욕심과 사탄의 유혹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배신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떠난 결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스스로 예수님을 떠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 말씀 요약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중에,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며,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할 것인가? 모두가 의문을 품었지만,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22절).
그 가운데 베드로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기대어 있던 요한에게 신호를 보내어,
배신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합니다(23-24절).
요한이 조용히 예수님께 “주여, 누구니이까?”(25절)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한 조각을 찍어 주는 자가 그니라”(26절)라고 대답하시며,
직접 빵 한 조각을 찍어 가룟 유다에게 건네셨습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의 식사 관습에서 특별한 호의를 표시하는 행동이었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유다를 가리키는 중요한 표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빵을 받은 유다는 그것을 회개의 기회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사탄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고(27절),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해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가 명절을 준비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28-29절).
그러나 유다는 빵을 받은 후 곧 나갔고,
요한복음은 의미심장하게 “밤이러라”(30절)라고 기록하며 그의 내면과 영적 상태가 어둠에 휩싸였음을 암시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배신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을 막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욕심과 불순종 속에서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 절별 주해
21절: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선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마음이 극도로 괴로워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괴로워하다”(ἐταράχθη, etarachthē)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때가 다가올 때 겪으셨던 깊은 영적·정신적 고통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요 12:27; 14:1).
예수님은 단순히 배신당한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까운 제자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속의 계획을 거부하고,
죄악된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예수님을 더욱 괴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배신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예정되어 있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시 41: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2-25절: 제자들의 혼란과 요한의 질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서로를 바라보며 충격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성격상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식사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요한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23-24절).
요한복음은 요한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23절)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과 특별한 친밀함을 가졌음을 암시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식사 방식에서는 가장 친밀한 자가 주인의 옆자리에 앉았고, 요한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조용히 “주여, 누구니이까?”(25절)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26-27절: 유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와 사탄의 장악
예수님께서는 “내가 한 조각을 찍어 주는 자가 그니라”(26절)라고 말씀하신 후,
직접 빵 한 조각을 찍어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식사 문화에서 호스트(주인)가 특정한 사람에게 빵을 건네는 것은 특별한 친절과 존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은 단순한 환대가 아니라,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유다는 이 마지막 기회를 통해 회개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순간 사탄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27절)라고 기록하며,
유다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음을 강조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유다가 사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보며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다의 행동을 막지 않으시고,
그 일이 예정된 대로 진행되도록 허락하시는 뜻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악한 선택까지도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속에서 사용하신다는 점을 보게 됩니다.
28-30절: 유다의 선택과 영적 어둠
제자들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그에게 가난한 자를 돕거나 명절을 준비하라고 하셨다고 착각했습니다(28-29절).
그러나 유다는 그가 직접 선택한 길을 따라 나갔습니다.
요한복음은 의미심장하게 “밤이러라”(30절)라는 표현을 덧붙이며,
유다가 떠난 순간이 단순한 시간적인 밤이 아니라 영적 어둠 속으로 들어간 순간임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단순한 시간 개념을 넘어서,
죄와 배신, 하나님의 임재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됩니다(요 3:19, 요 9:4).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했던 빛을 떠나,
자신이 선택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죄가 사람을 어떻게 삼키는지, 그리고 영적으로 어두워진 마음이 얼마나 돌이키기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유다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예수님을 거부한 끝에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히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 원어 탐구
1. 배신 (παραδίδωμι, paradidōmi)
🔹 의미
• 헬라어 παραδίδωμι (paradidōmi)는 “넘겨주다”, “배신하다”, “내어주다”의 의미를 가집니다.
• 신약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배신을 넘어, 공식적으로 누구를 넘겨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예수님의 경우, 단순한 인간적 배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과정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 신학적 의미
• 예수님은 유다가 자발적으로 배신을 선택하도록 허락하셨으며, 그 선택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 사용되었습니다(행 2:23).
• paradidōmi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셨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롬 8:32).
• 즉,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2. 괴로워하다 (ἐταράχθη, etarachthē)
🔹 의미
• 헬라어 ἐταράχθη (etarachthē)는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다”, “두려워하다”, “고통스럽다”는 뜻을 가집니다.
•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 극도의 심적·영적 고통을 경험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 요한복음에서의 사용
• 예수님은 이전에도 etarachthē를 사용하셨습니다(요 12:27).
•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이 때에서 면하게 하옵소서”
→ 이는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깊은 고통을 나타냅니다.
• 예수님의 괴로움은 단순한 인간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영적 부담과 고난의 예고를 포함합니다.
🔹 신학적 의미
• 예수님은 인간적인 연약함을 경험하시면서도, 그분의 사명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히 4:15).
3. 사탄이 들어가다 (εἰσῆλθεν εἰς αὐτόν, eisēlthen eis auton)
🔹 의미
• 헬라어 εἰσέρχομαι (eiserchomai)는 “들어가다”를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 일반적으로 장소적 개념에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영적 지배를 의미합니다.
• 즉,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사탄이 유다를 완전히 지배하게 된 순간을 나타냅니다.
🔹 신학적 의미
• 이 표현은 신약에서 매우 강한 의미를 가지며, 사탄이 어떤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아, 그의 행동과 선택을 조종할 때 사용됩니다.
• 누가복음 22:3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라 부르는 자에게 들어가니”
• 즉, 유다는 단순한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도구로 완전히 전락한 것입니다.
• 그러나 중요한 점은, 사탄이 유다를 강제로 점령한 것이 아니라, 유다가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한 결과로 사탄에게 문을 연 것입니다.
4. 속히 하라 (ποίησον τάχιον, poiēson tachion)
🔹 의미
• 헬라어 ποίησον (poiēson)은 “행하다”, “실행하다”라는 의미의 명령형 동사입니다.
• τάχιον (tachion)은 “더 빠르게”, “속히”라는 뜻을 가집니다.
• 따라서 poiēson tachion은 **“즉시 실행하라”, “빨리 하라”**라는 강한 명령을 뜻합니다.
🔹 신학적 의미
•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무엇을 할지 아셨지만, 그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 오히려 그 일이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십자가 사명이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 즉, 유다의 배신이 예수님을 조종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그 일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5. 밤이러라 (νὺξ ἦν, nyx ēn)
🔹 의미
• 헬라어 νὺξ (nyx)는 “밤”을 의미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단순한 시간 개념을 넘어서 영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 요한복음 3:19에서 예수님께서는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nyx는 단순히 하루의 밤이 아니라, 죄와 사탄의 지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상징합니다.
🔹 신학적 의미
• 유다는 예수님을 떠나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빛과 어둠의 대비로 강조하며, 유다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본문 해설
1. 예수님의 배신 예고: 제자들의 혼란과 반응 (21-25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자리에서,
마음이 괴로워하시며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누가 그런 일을 할 것인가?”(22절) 고민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직접 묻지 못하고,
예수님과 가까이 앉아 있던 요한에게 신호를 보내어 질문하게 합니다(23-24절).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조용히 “주여, 누구니이까?”(25절)라고 묻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고,
단순한 배신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배신이 단순한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 이루어질 일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2. 가룟 유다의 배신과 마지막 기회 (26-27절)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으시고,
“내가 한 조각을 찍어 주는 자가 그니라”(26절)라고 말씀하시며
빵 한 조각을 가룟 유다에게 건네십니다.
유대인의 식사 문화에서 빵 한 조각을 찍어 주는 행위는 친밀함과 존중을 의미했지만,
이 순간에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공개적으로 지목하시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순간 회개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탄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습니다(27절).
요한은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라고 기록하며,
유다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탄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절)고 말씀하시며,
유다가 선택한 길을 그대로 가도록 허락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주도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심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 유다의 최종 선택과 영적 어둠 (28-30절)
제자들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명절을 준비하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하러 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28-29절).
그러나 유다는 빵을 받은 후 곧 나갔고,
요한복음은 의미심장하게 “밤이러라”(30절)라고 기록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시간적 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영적인 어둠 속으로 들어갔음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종종 죄, 심판, 사탄의 지배를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됩니다(요 3:19, 요 9:4).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탐욕과 불순종으로 인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는 빛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선택이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경고하며,
우리가 매 순간 예수님을 향한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줍니다.
📖 말씀 _ “어둠 속으로 떠난 유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느 날 한 사람이 내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을 따라다닌 유다도 결국 배신했잖아요.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가요?”
나는 그 질문에 깊이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예수님을 떠나 있었어요.”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신앙을 보장해 준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예수님이 아닌 돈과 권력,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빵을 건네셨을 때,
그것은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빵을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그 순간 사탄에게 마음을 내어주었고,
결국 그는 “밤” 속으로 떠나갔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그가 나갔다라고 기록하지 않고,
“밤이러라”(30절)라고 의미심장하게 기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이제 더 이상 빛 가운데 있지 않고,
완전히 어둠 속에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빛 가운데 있는가, 아니면 어둠 속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유다처럼 그 기회를 거부할 수도 있고,
베드로처럼 실패했지만 다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지만,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는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빛 가운데 있는가, 아니면 어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도 유다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마음은 다른 것을 향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자신의 이익을 따라가려는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둠 속으로 가려 하지 않게 하소서.
유다가 선택한 길을 따르지 않고,
베드로처럼 실패하더라도 주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우리 안에 탐욕과 욕심,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에게 빵을 건네실 때,
그 사랑의 초대를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고,
빛 가운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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