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개역개정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15 Simon Peter and another disciple were following Jesus. Because this disciple was known to the high priest, he went with Jesus into the high priest’s courtyard,
16 but Peter had to wait outside at the door. The other disciple, who was known to the high priest, came back, and spoke to the servant girl on duty there and brought Peter in.
17 “You aren’t one of this man’s disciples too, are you?” she asked Peter. He replied, “I am not.”
18 It was cold, and the servants and officials stood around a fire they had made to keep warm. Peter also was standing with them, warming himself.
19 Meanwhile, the high priest questioned Jesus about his disciples and his teaching.
20 “I have spoken openly to the world,” Jesus replied. “I always taught in synagogues or at the temple, where all the Jews come together. I said nothing in secret.
21 Why question me? Ask those who heard me. Surely they know what I said.”
22 When Jesus said this, one of the officials nearby slapped him in the face. “Is this the way you answer the high priest?” he demanded.
23 “If I said something wrong,” Jesus replied, “testify as to what is wrong. But if I spoke the truth, why did you strike me?”
24 Then Annas sent him bound to Caiaphas the high priest.
25 Meanwhile, Simon Peter was still standing there warming himself. So they asked him, “You aren’t one of his disciples too, are you?” He denied it, saying, “I am not.”
26 One of the high priest’s servants, a relative of the man whose ear Peter had cut off, challenged him, “Didn’t I see you with him in the garden?”
27 Again Peter denied it, and at that moment a rooster began to crow.
📖 들어가는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섭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는 장면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주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며 두려움 속에서 무너졌지만,
예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때때로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뒷걸음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임을 인정하며,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부인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힘을 주시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이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대제사장의 법정으로 가시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던 제자였고,
예수님께 “나는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마 26:33)라고 장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나는 아니다”라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베드로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신앙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려운 순간에는 신앙을 감추려 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신앙인이 겪을 수 있는 두려움과 갈등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한,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신문을 받으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담대히 진리를 증언하셨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모욕과 폭력을 당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신실하심과 베드로의 연약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셨지만,
베드로는 작은 두려움에도 신앙을 부인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신앙의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신실하게 믿음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베드로처럼 두려움에 빠져 뒷걸음칠 것인가?
이 질문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대제사장의 법정으로 끌려가 심문받으시는 장면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신실하심과 베드로의 연약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안나스 앞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제자들에 대해 묻지만,
예수님은 “나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가르쳤다.”(요 18:2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대답은 폭력뿐이었습니다.
곁에 있던 하속 하나가 예수님의 얼굴을 때리며,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요 18:22)라고 책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조롱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내가 말을 잘못하였다면 그 잘못을 증언하라.
바르게 말했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 18:23)라고 말씀하시며,
진리를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반면,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님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시는 동안,
베드로는 멀리서 예수님을 따라갔고,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불을 쬐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종이 그에게 다가와
“너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요 18:17)라고 묻자,
베드로는 즉시 “나는 아니다.”라고 부인합니다.
그 후에도 두 번 더 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그는 끝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세 번째 부인을 하자마자 닭이 울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고난 속에서도 신실하셨지만,
베드로는 두려움 속에서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둘째, 베드로의 부인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모든 신앙인이 겪을 수 있는 연약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 붙잡는 말씀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였고,
“나는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작은 질문 하나에도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어려운 상황이 되면 신앙을 감추려 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혹은 관계 속에서
“당신은 예수님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에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은 거창한 상황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을 고백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부인했던 베드로조차도 후에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왔듯이,
우리도 믿음을 회복할 기회가 있습니다.
📖 핵심단어 연구
부인하다 (ἀρνέομαι, arneomai)
▣ 뜻, 의미
‘ἀρνέομαι (arneomai)’는 거부하다, 부인하다, 인정하지 않다는 뜻을 가집니다.
신약에서는 주로 신앙을 거부하거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부정보다는 강한 거절과 단절의 의미를 내포하며,
스스로와의 관계를 끊는 것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베드로가 여종의 질문을 받고
“나는 아니다”라고 답하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했을 때,
이 단어 ‘ἀρνέομαι’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단순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는 강한 거절을 의미합니다.
즉,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부인했습니다.
▣ 신학적 의미
신약 성경에서는 신앙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강한 경고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베드로처럼 연약함으로 인해 부인하더라도,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을 허락하신다는 소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순간의 두려움으로 신앙을 부인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며,
혹시 넘어졌다면 다시 주님께 돌아갈 길이 열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닭 울음 (ἀλέκτωρ φωνέω, alektōr phōneō)
▣ 뜻, 의미
‘ἀλέκτωρ (alektōr)’는 닭,
‘φωνέω (phōneō)’는 소리를 내다, 울다라는 의미입니다.
합쳐서 닭이 우는 것을 의미하며,
신약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닭이 우는 장면에서 사용되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베드로가 세 번째로 예수님을 부인한 직후,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닭이 울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신앙을 부인한 순간이
예수님의 예언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장면입니다.
닭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베드로에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하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베드로가 닭 울음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통곡하며 회개했다고 기록합니다(눅 22:61-62).
▣ 신학적 의미
닭 울음은 우리의 신앙이 때로는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신다는 상징입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고,
훗날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에서 넘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제사장 (ἀρχιερεύς, archiereus)
▣ 뜻, 의미
‘ἀρχιερεύς (archiereus)’는 대제사장, 성전의 최고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대제사장은 유대교에서 최고의 종교적 권위를 가지며,
이스라엘의 신앙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예수님은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앞에서 신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모욕하며, 십자가에 넘겨주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지식과 참된 믿음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신학적 의미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그들 스스로의 권력과 종교 체계에만 집착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형식적인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심문하다 (ἐπερωτάω, eperōtaō)
▣ 뜻, 의미
‘ἐπερωτάω (eperōtaō)’는 질문하다, 심문하다, 캐묻다라는 뜻입니다.
보통 누군가를 시험하거나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질문할 때 사용됩니다.
▣ 본문에서의 의미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너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대해 말해보라”고 심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은 항상 공개적으로 가르쳤으며,
숨긴 것이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즉, 대제사장의 질문은 진리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정죄하고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신학적 의미
이 장면은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진리는 세상에서 환영받기보다, 오히려 공격받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도 신앙을 지키는 과정에서 비난과 심문을 받을 수 있지만,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진리를 증거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 절별주해
15-16절 |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가다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까지 갔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제자”가 누구인지 성경은 명확히 밝히지 않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기에,
예수님이 심문받는 자리까지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문지기 여종과 이야기하여
베드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긴 했지만,
어떤 두려움 속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7절 | 첫 번째 부인 - “나는 아니다”
베드로가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지키던 여종이 질문합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여종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베드로는 자신이 위험해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나는 아니다”라고 부인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두려움 앞에서 순간적으로 신앙을 감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앞서 “나는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마 26:33)라고 했지만,
작은 질문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8절 | 불을 쬐는 베드로 – 세상의 온기에 기대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종들과 하속들이 피운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불을 쬐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이 장면은 영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왔지만,
결국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온기에 의지하며,
점점 더 믿음을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가?
아니면 베드로처럼 세상의 따뜻함을 의지하고 있는가?
19-21절 | 예수님, 대제사장 앞에서 담대히 증언하다
대제사장 안나스는 예수님께
그의 가르침과 제자들에 대해 심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나는 항상 공개적으로 가르쳤다”라고 답하십니다.
즉, 자신이 은밀하게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라,
항상 성전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쳤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를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요 18:21)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당히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베드로의 연약함과 강하게 대비됩니다.
예수님은 신실하게 말씀을 전하셨지만,
베드로는 작은 질문에도 믿음을 부인했습니다.
22-23절 | 예수님을 때린 하속 –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
예수님의 대답을 듣던 하속 중 하나가
갑자기 예수님의 얼굴을 때리며 말합니다.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요 18:22)
이는 예수님의 대답이 불손하다는 의미였지만,
사실 예수님은 정당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잘못 말했다면 증언하라.
바른 말을 했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 18:23)라고 반문하십니다.
이 장면은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보다 폭력으로 반응했습니다.
오늘날도 진리를 외칠 때 핍박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서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24절 | 안나스에게서 가야바에게로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 공식적인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냅니다.
안나스는 대제사장이었지만, 당시 실제 대제사장의 자리는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맡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조직적으로 움직였는지 보여줍니다.
25-27절 | 두 번째, 세 번째 부인 – 닭 울음의 순간
베드로가 다시 불을 쬐고 있을 때,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요 18:25)
그러나 베드로는 두 번째로 “나는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의 한 종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동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않았느냐?”(요 18:26)
이때 베드로는 세 번째로 부인합니다.
그리고 즉시 닭이 울었습니다.(요 18:27)
누가복음에서는 이 순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고 기록합니다(눅 22:61).
베드로는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신앙의 연약함을 경고하는 동시에,
회개의 길도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훗날 예수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금 신실한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질 때도,
예수님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 묵상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는 “나는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지만,
실제 위기의 순간이 오자 두려움에 빠져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부인한 상대는 강한 군인이나 높은 권력자가 아니라,
단순한 하녀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큰 위기 앞에서만 시험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도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보며 “나는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베드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예수님을 믿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거리낌 없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혹은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불리할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예수님은 대제사장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조롱과 모욕을 받으셨지만,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신앙을 부인하며 점점 더 주님을 멀리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제사장의 뜰에 서 있었지만,
결국 불을 쬐며 세상의 온기에 기대는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신앙을 멀리하게 만드는 작은 타협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을 부끄러워하거나, 손해를 감수하기 어려워할 때,
그 순간 우리는 베드로처럼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실패가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고,
결국 회개하며 다시 주님께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예수님을 드러내기보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한 발짝 물러서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다시금 일어나 믿음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히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적용과 결단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다시 회복시키셨고,
그는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여전히 회복의 길을 열어두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나는 신앙이 흔들릴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실패했을 때 주님께 돌아가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믿음을 멀리하는가?
오늘 나는 결단합니다.
베드로처럼 넘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주님께로 나아가겠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신앙을 숨기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당당히 증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혹시 두려워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에도 예수님을 기억하며
담대히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 말씀 _ "믿음의 시험 앞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순간들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위해 목숨도 내어놓겠다고 고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 보다 주님을 향한 신실하고 진실한 고백을 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를 위협한 것은 강한 군대도, 대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한 하녀의 단순한 질문 하나에 베드로의 믿음은 흔들렸고,
그는 신앙을 감추기 위해 “나는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때때로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순간들을 만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 안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회적 시선과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신앙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믿음의 시험 앞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1)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들
베드로는 단순한 호기심 어린 질문에도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배척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 삶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신앙을 이야기할 때,
“너무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 침묵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할까 봐 조용히 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다를 바 없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단순한 개인적인 가치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마 5:13-16).
어둠 속에서 빛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밝게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시험 앞에서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신실하심과 우리의 회복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그가 끝까지 예수님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를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때로는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고,
그를 다시 사도로 세우셨습니다(요 21:15-17).
우리는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3)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32).
이는 신앙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담대히 드러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부끄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자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교회에서만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 속에서 신앙을 증거할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과연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
베드로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고, 결국 회복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났고,
이후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지만,
주님은 다시 우리를 세우십니다.
오늘 하루, 이렇게 다짐하고 결단해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작은 순간 속에서도 예수님을 인정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혹여 두려움이 찾아오더라도 그 순간에도 주님을 기억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겠습니다."
지근 나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믿음의 시험 앞에서,
예수님과 함께 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올려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위기의 순간마다 두려움과 주저함 속에 믿음을 감추려 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베드로가 작은 질문 앞에서도 믿음을 부인했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순간마다 침묵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던 순간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시고 그를 신실한 사도로 세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다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세상의 따뜻함과 안정에 기대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베드로가 불을 쬐며 세상의 온기에 기대었지만,
그 자리에서 신앙이 무너졌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유혹과 편안함 속에서 믿음을 타협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조롱과 모욕 앞에서도 신실하게 진리를 증거하셨듯이,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혹여 우리가 연약하여 다시 넘어질지라도
닭 울음 소리를 듣고 통곡하며 회개했던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실패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모습조차도 주님께서 사용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더욱 강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작은 순간 속에서도 신앙을 드러내고, 예수님과 함께 서는 용기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Bible'Story】 > [생명의 삶] 요한복음ㅣ2025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삶] 요한복음 19장 1절-13절 _ 2025. 3. 7(금) (0) | 2025.03.06 |
---|---|
[생명의 삶] 요한복음 18장 28절-40절 _ 2025. 3. 6(목) (0) | 2025.03.05 |
[생명의 삶] 요한복음 18장 1절-14절 _ 2025. 3. 4(화) (0) | 2025.03.03 |
[생명의 삶] 요한복음 17장 20절-26절 _ 2025. 3. 3(월) (4) | 2025.03.03 |
[생명의 삶] 요한복음 17장 9절-19절 _ 2025. 3. 2(주일) (4) | 2025.03.02 |